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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멀리서 바다가 들려

 

w. 마을

 

무더운 여름이었다. 100년 만에 최고 기온이라 하는. 햇빛이 온 곳을 쪼아댔고 사람들은 죽어가려고 했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고, 휴대용 선풍기를 가져온 아이들은 부러움을 받았다. 친구들은 그들에게 한 번 좀 써보자며 하이에나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렇게나 더운 날씨였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


그런 날씨에 체육을 했다. 웃기게도 땡볕에서 움직이는 우리와 다르게 체육선생님께서는 그늘에 앉아 계셨다. 평소에 말 없던 선우도 도통 욕하는 걸 본 적 없는 남준이도 —나는 걔가 그렇게 욕을 잘 하는 줄 몰랐다—내 제일 친한 친구 지민이도 나 김태형도 하나같이 체육선생님 욕을 했다.


끝나고 힘겹게 교실에 도착했는데 또다시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에어컨이 안 틀어져있었던 것이다.

 

 


“누가 에어컨 껐어!”


“진짜 누구야!”

 

 


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였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갈 때 에어컨을 끄라고 한 담임선생님 때문이었다. 평소엔 잘 듣지도 않던 선생님의 말씀을 왜 쓸데없이 들었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군거리던 아이들은 나라는 것을 마침내 밝혀냈다.

 

 


“야 김태형!”


“미안 미안.”

 

 


친구들은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살벌하게 말했다. 장난인데도 더워서 그런지 약간 무서웠다. 에어컨이 꺼져있는 걸 발견하자마자 틀어서 교실은 시원해지는 중이었다.

 

 

 

 

 

 

 

 


체육을 하고 힘겹게 한 교시를 더 한 뒤 점심시간이었다. 급식실에 가기 위해 줄을 서있는 와중에 그는 담임선생님과 불쑥 나타났다. 선생님께서는 회장이 챙겨주라는 말을 남기시고 사라지셨다. 아, 그니까 전학생이었다. 교복을 아직 못 받았는지 사복을 입고 있었다.


회장이라면 남준이었다. 그러면 우리랑 같이 밥을 먹게 될 것이다. 임시로든 계속이든. 나는 그 전학생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가 오는 것을 귀띔도 해주지 않아서 지금 알게 되었다.

 

 


“왜 오는 거 말 안 했어!”


“굳이 얘기 안 해도 알게 되는데 뭐.”

 

 


전학생 윤기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친구이다.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내가 이사를 갔지만 연락도 자주 하고 최근에는 못 만나긴 했는데 가끔 만나서 놀기도 했다. 원래 쟤가 무심한 성격이긴 하지만 미리 말해주면 뭐 덧나나 싶다.


종례시간에는 앞에 나와 정식으로 소개를 했다. 전학생에 대한 폭발적 관심으로 이미 모두 알고 있지만 말이다.

 


“안녕, 나는 민윤기야. 앞으로 잘 부탁해.”

 


역시 윤기답게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간단하게 소개를 마쳤다.

 

 

 

 

 


윤기는 내 친구들이 워낙 친화력이 좋아서 그런지 금방 친해졌다. 반의 다른 애들은 무심하고 관심을 안 주는 윤기를 어려워하는 듯했다. 성격이 저래서 그렇지 어색함을 안 타는 애라 상대가 마음을 열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자신이 먼저 친해지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윤기가 전학 오기 전에는 6명이서 친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동수업 같을 때는 어쩌다 보니 두 명씩 갔다. 나랑 지민이, 호석이 정국이, 남준이 석진이. 아무튼 윤기는 자연스럽게 나랑 지민이와 다니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그 이상한 느낌을 받고서부터 나는 맨날 눈치를 봤다.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윤기와 도통 어울리지를 못하는 지민. 지민이는 누구든지 두루두루 어울리고 친해지는데 이상하게도 윤기와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받았던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윤기가 전학 온 지 2주 정도 됐을 때였다. 지민이는 그러한 행동을 계속 했지만 계속 지속되어서 이제서야 나는 알게 됐다.

 

 


지민이는 윤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역시 나만 이런 생각이 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아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석이가 윤기랑 지민이랑 싸웠냐고 물어보기도 하였고 석진이는 무슨 일 있었냐고 했다. 나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도 없으니 직접 물어보는 게 낫다는 결론을 지었다.


애들이 다 가고 난 뒤의 빈 교실이었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더운 공기가 들어왔고, 선풍기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정적 속에 내가 지민이게 말을 했다.

 

 


“지민아, 윤기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런데 왜 걔한테 그래.”


“그냥... 싫어서.”


“......”


“나 간다.”

 

 


지민은 내가 애매하게 한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일이 터졌다.


“나도 너 싫어.”


각자 할 일을 하다 그 말에 모두 돌아봤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표정으로 윤기는 지민이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


방학식을 하는 날이다. 여전히 둘의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였다. 애들은 방학 계획을 말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말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어디 놀러가자니까. 바다? 계곡? 어때.”


“2박3일 쯤으로 가자. 당일치기는 너무 아쉽다.”


“다 가는 걸로?”


“나는 돼.”


“나도.”

 

 


그렇게 7명 전원이 2박 3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름인 만큼 물놀이를 하자고 계곡, 바다 중에 가자는 이야기에 모두 찬성해 투표를 했다.

 


-
계곡: 3표
바다: 4표
-

 


그렇게 바다에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지민이가 윤기와 함께 간다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걸 모든 애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둘이 친해지게 만들 궁리를 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윤기를 싫어하는 지민과 싫어해도 별신경을 안 쓰는 것 같은 윤기는 친해질 수 있을까?

 

 


방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러가는 날이 되었다. 갈 때 부모님이 데려다 주신다는 석진의 말에 교통비는 아꼈다. 조수석에는 석진이 그 뒤쪽에는 남준과 정국, 호석. 또 그 뒤에는 나와 지민, 윤기가 앉았다. 다들 졸렸는지 하나둘씩 잠에 들었고, 나도 잠이 쏟아져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깼을 때는 거의 다 와있었다. 도착하고 나서 차에 내리니 지민이는 투덜댔다.

 

 


“다 자고 윤기랑 나만 깨어있어서 심심했잖아.”


“자지 그랬어.”


“잠이 안 왔단 말이야.”

 

 


그래도 계속 대화하면서 가던데. 윤기가 지민에게 말을 거는 것을 잠결에 들어 알고 있었다. 썩 좋아하지 않는 지민의 모습이 상상됐다. 툴툴거리는 듯했지만 그래도 말하는 건 다 받아주더라.


숙소는 크고 깨끗해 만족스러웠다. 짐을 숙소에 풀고 나서 방을 정하기로 했다. 사실상 잠자기만 할 방이다. 방 2개에 거실이 있는데 거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듯했다. 가장 공정한 방법(?)인 가위바위보로 정하였다.

 

 


“가위 바위 보!”


“예~”

 

 


좋아하는 것조차 영혼 없는 윤기가 1등을 했다.그가 우리 모두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나는 1번 방. 거실 가위바위보 해. 진 사람 두명.”


“가위 바위 보!”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은 나와 호석이었다. 그렇게 거실에 당첨이 되었고.

 

 


“그리고 박지민.”


“......”


“나랑 같은 방. 그리고 석진, 남준, 정국 2번 방.”


“????”

 

 


지민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모두 놀랐다. 지민이 자신을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그랬다는 것이 놀랄만 했다. 싫어해서 골탕 먹이려는 건지 뭔지. 아무튼 충격의 방 정하기가—하지만 친해지지 않을까 싶어 좋다—끝나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간 곳은 마트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사지 못한 신선식품들과 부족할 듯한 과자들을 사기 위해서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걸어서 갔다. 윤기는 애들과 이야기하기 바빴고, 지민이는 멍한 표정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 없었다.


마트에 도착해서 살 것을 고르고 있을 때는 윤기와 지민이가 사라져 있었다. 잠시 뒤 둘을 발견했지만 심각해 보여 그냥 놔두었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걸까? 나중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 관두었다.

 

 


"야, 너네 둘이 어디 갔다 왔어!"


"그냥 얘기 좀 하다 왔어."


"무슨 얘기~ 비밀 얘기?"


"뭐래ㅋㅋㅋㅋ"

 

 


마트를 갔다 온 이후로 지민이가 이상했다. 나사가 빠진 것 같았고 정신을 못 차렸다. 그리고 윤기를 더 피하는 느낌이었다. 그 전과 다른 의미로.

 

 


다음날, 바다에서 지민이의 얼굴은 마치 토마토처럼 빨개져 있었다.

 

 

 

 

 

 

 

 

 

 

 


***

 

 


나는 민윤기가 싫다. 그리고 새로움과 변화도. 그래서 싫어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가장 친한 친구 김태형의 나보다도 훨씬 오래된 친구, 민윤기. 그의 등장이 친구 관계를 위협한다고 느낀 걸까?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질투’였다.


싫어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윤기는 나를 싫어하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싫어했다.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윤기에게 괜히 툭툭거렸다. 그랬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화를 낸다든지 같은.


아, 한 번 화낸 적이 있었다. 태형이가 윤기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은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그래서 사과를 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윤기의 ‘나도 너 싫어.’ 한 마디에 우리가 싸우는지도 몰랐던 친구들이 돌아봤다.


윤기가 한 그 말이 진심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윤기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랬다.


그날 이후로는 툭툭거리지 않았고 당연스럽게 말도 안 했다. 여전히 싫어했지만 미안함도 가득 차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안함이라…

 

 


그렇게 방학이 오고 윤기도 함께 놀러 갔다. 가는 차 안, 모두 자고 윤기와 나만 깨어 있어 심심했다. 심지어 옆자리였다. 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윤기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어색해 단답으로 대답했다.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당황스러운 일이 또 일어났다. 윤기가 룸메이트로 나를 뽑은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이 모두 놀랐고 오직 윤기만 아무렇지 않아 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식재료와 간식을 사러 마트에 갔다. 숙소 방 이야기를 해야겠다 해서 윤기를 불러냈다.

 


“왜.”


“왜 룸메 나 골랐어?”


“이유가 있어서 고르나.”


“나 골탕 먹이려고 그런 거지?”


“아쉽게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이지.”

 


아까는 이유 없다더니. 그런데 반대라는 게 무슨 소리일까.

 


“뭔데.”


“됐어~ 말해도 화만 내고 안 믿겠지.”


“믿을게!”

 


자신에게 차가운 모습만 보여주던 사람이 저러니까 웃겼는지 피식 웃었다.

 


“너 좋아해서.”

 


귓속말하듯 속삭이고 윤기는 가버렸다. 아니… 지금 쟤가 무슨 소리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못 믿겠다 아니 안 믿는다.


더웠다. 왜 그런 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냥 이 여름이 너무 더워서라고 믿고 싶었다.


그때 이후로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잠을 잘 때 같은 방이니 나란히, 조금 멀리 떨어져 잤는데 심장은 왜 이리 뛰는지 너 때문에 빠르게 뛴다는 걸 들킬까 걱정됐다.


사실, 너도 그랬는지 네가 잠을 못 자고 뒤척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박 3일의 둘째 날, 이곳에 온 목적인 바다에 갔다. 하나둘씩 들어가기 시작했고, 윤기와 나만 들어가지 않고 모래사장에 앉아있었다. 이곳에서 벗어나 얼른 들어가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민아, 바다 안 들어가?”


“......”


“......”


“나 사실 물 무서워해.”

 

 


얘한테 왜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말한 김에 그냥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젠가는 극복하고 싶어서 가기로 한 거고. 계속 미루다 보면 결국 이 상태잖아. 이거 아는 사람도 없어, 사실.”

 

 


윤기는 놀란 듯했다.

 

 


“누구한테 도와달라 하려 했는데 다 가서 놀고 있으니까 혼자 갈 엄두가 안 나서… 이러고 있어.”

 

 


사실 윤기에게 말하고 싶었다. 네가 도와주면 안 되냐고. 그런데 걔가 아무리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한 짓이 있는데 염치없게 부탁할 수는 없기도 했고 싫어하는 감정이 없어졌어도 자존심은 아직도 남아있는지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윤기가 먼저 제안을 했다.

 

 


“내가 도와줄까?”


“응?”


“가자.”

 

 


윤기는 나의 손목을 살짝 잡고 일으켜 바다 쪽으로 이끌었다. 발만 살짝 담가보라고 했다. 사아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쳤다. 발목이 잠겼다 잠기지 않았다가 했다. 시원했다.

 

 


“괜찮아?”


“응.”

 

 


들릴까 두려운 심장소리를 안고서 천천히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살짝이라도 담기 싫었던 물에 있었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그저, 윤기의 손을 잡고 뒷모습을 보며 따라가는 데에 집중했을 뿐이었다. 혹시라도 무서워할까 조심히 가는 그의 세심함이 좋았다.


물이 무릎쯤 찼을 때였을까? 윤기는 멈춰 섰다. 그러고 나서 걔는 잡은 손을 꼭 쥐었다.

 

 


“이 정도까지만 들어갈까?”


“... 아니.”

 

 


깊어질수록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더 있고 싶었다. 내가 널 그렇게 싫어했는데 이 감정은 뭘까?


앞으로 나아가면서 윤기의 손이 나의 손목에서 손으로 옮겨졌지만 둘 다 물에서 나오고 나서야 눈치챘다.

 

 


“윤기야, 손...”


“어… 미안.”

 

 


윤기가 잡은 손을 놓았다. 약간 어색했고 두근거렸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민윤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 2018 by SUJIM Four Seasons, presented by @EPILOGUE_sj & @Love_maze_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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