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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WINTER

 

 

w. 조약돌

 

*
“좋아해,
민윤기,”

 

손이 덜덜 떨려왔다. 물론 추운 날씨 탓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더욱이 그랬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내 얼굴은 점점 홍당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제발 아무 말이라도 해줘. 거절도 좋으니깐 제발 아무 말이라도…

이 맥없는 어색함이 너무나도 싫었다. 무슨 말이라도 들어서 얼른 이 맥없는 분위기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때 피식하고 기분 좋게 웃는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나도 좋아해 박지민”

 

질끈 하고 감아버렸던 눈에 점점 힘이 풀렸다. 뭐라고…….? 순간 머리가 무언가에 맞은 듯이 띵해졌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눈동자를 드르륵 하고 굴리던 중에 차가운 그의 손이 내 손을 맞잡아 왔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볼에 가져가댄 채로 말을 이었다.

 

“좋아한다고, 너를,
너, 박지민을,”

 

눈가에서 눈물이 비집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과분한 이 사람을 내가 책임져도 될까 하는 생각과 너무 기뻐서 흘러 나온 눈물이었다. 그리고는 그를 꽈악 껴안았다. 이제는 내가 짝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닌 나만의 애인이 된 그를.
겨울에는 사랑이 아프게 끝난다는 소리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차디찬 겨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살을 에는 듯한 날씨 속에서 우리는 따듯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
오후 내내 이것저것 작업을 하느라 너무 힘이 들어 오랜만에 낮잠을 자기로 했다. 따듯한 물로 샤워하고 나온 뒤 하품을 하며 침대에 몸을 던진 후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거리며 들어가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캄캄한 어둠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깜빡여보면서 이 상황을 부정하고 있었다. 

“누구 없어요…….?”

두려움에 잠긴 채 소리쳐 봤지만 들려오는 건 내가 내뱉은 소리일 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길을 찾아 다녔지만 가는 곳 마다 막혀 있을 뿐,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달렸다. 이 곳의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벗어나고 싶었다. 이 무시무시한 곳에서 그저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때 ‘빠앙’ 하고 울리는 큰 경적소리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움직여야 하는데, 이 곳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제발 움직여줘,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지만 그런 내 바람은 무참히 짓밟혀버리고 말았다. 그 큰 트럭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와 나를 치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살을 파고 들어오는 듯한 고통에 숨을 제대로 내뱉고 쉴 수 없었고 내 눈 앞은 점점 캄캄해 져갔다.
 
제발 이 끝없는 고통 속에서 누군가 날 좀 구원해줘
.
.
.
점점 가려져 가는 시야 속 밝은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헉 하며 숨을 내쉬면서 이불을 걷어차면서 일어났다. 온 몸이 뒤틀려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뒤숭숭한 꿈까지 꿨으니 어딘가 꽤 불편했다. 우선 천천히 숨을 들었다 내쉬었다를 반복하면서 쿵쾅 거리며 재빨리 뛰고 있는 내 심장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이마를 스윽 하고 훔쳐보니 식은 땀이 흥건하게 묻어져 나왔다. 
진짜 그건 무슨 꿈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빤히 쳐다보았다. 밖에는 하얀 겨울 달빛이 내 창문을 어슴푸레 비춰주고 있었다. 시간은 저녁 7시 20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걸어가고 있었다.

좋아 오늘은 밤 산책이다

하며 조금은 불편한 꿈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아, 윤기형이랑 같이 산책이나 할까 해서 전화를 걸어봤다.
신호음이 두세 번 정도 가다가 달칵하고 전화를 받았다.

 

“형, 저랑 오늘 밖에서 저녁 산책 하실래요?”

 

설레는 마음으로 물어봤지만 5초가 지나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전화 받은 거 맞나 하고 확인을 하고 있는데 전화기 너머 조금은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그래 30분 뒤에 그 가로등 앞에서 만나자”

 

알겠다고 말을 하고 신나게 옷장으로 뛰어가서 무슨 옷을 입을지 행복하게 고민을 하고 열 번 넘게 고민을 하다가 고른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한 번 웃어 본 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직 형이랑 만나려면 15분 정도 남았지만 그래도 빨리 나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어서 빨리 나왔다. 
가로등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집 앞에 있는 한 신호등을 건너야 해서 신호등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머리 위로 하나 둘씩 새하얀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손에 내려앉은 하얀 눈 결정체를 보면서 영락없이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윤기 형도, 눈 좋아하는데 그럼 형 만나면 눈이나 좀 감상이나 할까?

행복한 고민에 실실거리면서 웃다가 그제서야 신호가 바꿔져서 한발 한발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측면에서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 쪽을 보던 중 그것은 아까 꿈에서 봤던 트럭이었다.

나에게 이것도 꿈이라고 해줘 제발

빌고 또 빌었다. 나를 향해 덮쳐오고 있는 그것이 그저 내 앞에서 멈추기를, 꿈에서의 일과 똑같이 일어나지 않기를,
하지만 빌고 또 빌었던 내 소망은 보란 듯이 짓밟혀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저 순식간에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을 그저 순응할 수 밖에 없었다. 

 

“콜록”

 

메마른 기침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와 함께 붉은색 선혈도 같이 흘러나와 입가에 걸쳐져 있었다.

아 윤기형, 보고, 싶네,

마지막으로 형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더듬어가며 내 입을 찾아봤지만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순간 머리 속으로 지나간 하나의 문장
‘겨울에는 사랑이 아프게 끝난다’
이게 이런 말이었구나 하는 배신감에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그래도 이번 생에서 윤기형이랑 한번 쯤 사랑해봤으니 그걸로 만족하면서 눈을 감았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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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아까부터 길거리에 누워있던 소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트럭에서 문이 열리고 새하얀 사람이 차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앞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 소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다. 덜덜거리는 손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소년의 뺨을 어루만진다.

 

“내가 미안해 지만아,,,,,,,내, 가,,,,,,, 어쩔 수 없었어 미, 안해,,,”

 

 

 

 


-FIN-
 

© 2018 by SUJIM Four Seasons, presented by @EPILOGUE_sj & @Love_maze_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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