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 SEASONS
OF LOVE
태초에 신이 있었다. 그 신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햇귀처럼 뻗쳐나갔다. 그는 암흑인 동시에 찬란한 빛이였다. 혹은 불처럼 타올랐고 가을의 단풍처럼 스러졌다. 끈질기게 중독시켰고 사람들을 유혹의 아가리에서 끌고 나왔다. 가없었고, 죽음을 관장했으며 삶을 송두리채 쥐고 흔들었다. 그는 신이였다. 절대적인 신이였다.
그리고 그는 가을의 어느 날에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 당했다.
구원의 의무
w. 기무여
엉엉 울었다. 비극적이고 참혹한 운명 앞에서 엉엉 울었다. 신이 있다면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제발 날 무시하지 말아달라고 흐느꼈다. 그의 표독스러움에 슬슬 질려갈 때 즈음, 고독이 쓰디쓴 입안으로 들어왔다. 존나게 게워내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준다.
나는 가을이다. 춥지만 더웠다. 중간 따위라는 수식어는 없었다. 가을은 죽었다.
훼파해진 믿음에 깨져버린 신앙에, 죽은 가을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고요히 헤집으며 끈적이는 장판 위에 쓰러졌다. 다음에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지 말길.
신은 뒤졌어. 신은 뒤졌어. 신은 뒤졌다고. 씨발 좆같은 새끼. 내 얘기가 안 들려? 진짜 죽었어? 신이 죽을리가. 그렇지, 그렇게 존엄하신 분이 돌아가실리 없지. 설마 죽었을까. 아니 죽었나? 죽은 건가? 살아있으면 대답 좀 쳐해봐요. 있는 아가리 썩히지 말고.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서랍을 노려봤다. 죽음은 나의 가족을 이미 오래전에 습격했고, 사랑은 비참하도록 허무하게 끝났으며 자신의 몸은 조폭들에게 팔려간 뒤였다. 지민은 없었다. 영혼도 없었고, 육체도 없었다. 생각이 불가능한 영혼과 장난감이 된 육체가 과연 나의 것일까? 나는 여기 존재하고 있다.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나였지만 진정으로는 아니였다. 신실한 종교는 끝났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저 멀리,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폭포가 있는 장소로 떠나기로 했다. 폭포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릴 건 아니지만, 폭포가 보고팠다. 삶을 놓고 싶지 않은 마지막 발악이자 괴성이였다.
배낭에 별 볼 일 없는 물건을 챙겼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 치고는 너무 가벼웠다. 박지민이란 이름이 적힌 보조 배터리, 닳고 닳은 핸드폰, 옷 몇 벌, 속옷 몇 벌, 위생용품, 노트와 펜. 생각을 정리하러. 지퍼를 잠구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내일의 아름다울 여행을 위하여.
다음 날 나는 예정대로 여행을 진행했다. 버스 티켓을 내고, 지정된 좌석에 앉고, 몇 시간 동안 졸았으며, 장거리 여행으로 뻐근해진 다리를 이끌고 숙박집으로 향했다.
숙박집에서 나와 노을이 질 무렵에 폭포의 끝에 다다랐다. 광명이 터지는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주황. 여기는 폭포. 폭포 옆의 푸른 들판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푹—쳐지듯 무릎 꿇었다. 누군가에게 경배하듯. 이미 끝난 믿음이였지만 버릇처럼 기도를 해보기로 맘 먹었다. 진정으로 마지막 기도기를 바라며.
손을 모으고 저의 곁에서 떠나간 사람을 떠올리며, 빌었다. 신님,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앞으로 욕 안 할게요. 그 쪽에서는 동성애가 법도가 아니라면서요? 조폭들과 떡친건 제 의지가 아니였어요. 용서해주세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진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신다면, 평생 믿도록 하겠습니다. 독실한 신자가 될게요. 죽은 인생, 개병 나서 발작 하는 불쌍한 인생 조금이라도 낫게 해주세요. 욕도 안 쓸게요. 네? 저 좀 도와주세요.
설마. 들어주겠어? 기도와는 상반된 속마음에 가슴이 아프도록 찔려왔지만 아랑곳 않고 눈을 떴다. 씨발, 내가 조폭들하고 떡친 걸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다 불어버린 꼴이잖아? 좆같게.
신은 없다.
다시 한 번 확인했으니 돌아가야겠다. 일몰만 보고. 마지막 미련이 흘러넘쳐 파도처럼 으스러지는 폭포와 그 아래 출렁이는 노을 속 얼굴이 비췄다. 일어서려는 찰나, 무질서하게 퍼지는 햇귀 뒤에 그림자가 비췄다. 그가 나와 마주섰다. 검정 머리칼, 푸른 동공.
신이다. 신이였다. 내가 그토록 외치었던 신이다. 굳이 신이라 하지 않아도, 기를 흐르게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자체로 신이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한 존재이자 절대적 존재.
내가 신을 믿은지는 대강 2년 반 째였다. 하루에도 골백번 기도하며 신을 보기를 소망했던. 신이란 나에게 염원의 집합체이자 최종 목적지였다. 내 소원을 들어주길. 하지만 신은 단 한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내가 십자가를 세워놓든, 염주를 굴리든, 성경을 보든 제사를 지내든. 모든 신에게 물어보았다. 모든 신에게 의지했다. 모든 신은 날 버렸다.
어느 날은 울었다. 또 어느 날은 웃었다. 다른 날은 빌었다. 울어도 웃어도 빌어도 그 모든 행위는 같은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간절함.
부모님은 빚을 잔뜩 지고 자살하셨다. 지들만 편하려고. 장례식에 가서 향이 다 탈 때까지 난 눈물을 흘렸다. 씨발 나도 데리고 가지. 집 이곳저곳에는 압류딱지가 붙어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지같은 집으로 이사 왔다. 종교용품과 생필품만 들고. 그 중간에 찾아온 사랑은 정말 나에게는 구세주였다. 구원이자 희망이였다. 그런데 미몽이였는지, 정말 잠깐, 아주 잠깐 달았다. 날 배신하고 떠났다. 다른 남자와 손 잡고.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그럼 내게 남은 것은? 빚. 사채업자이자 조폭에게 몸이 팔렸다. 거의 매주, 몇 번 씩은 떡쳤다. 위아래 둘 다 찢길 때까지 해댔다. 존나 싫었다.
그리고 내 얘기를 한 번도 안 들어주신, 수십억의 찬양을 얻는 분이 나와 눈을 마주하고 서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속에서는 옷을 홀딱 벗고 있더니 여기는 멀쩡히 갖춰입고 있네. 신인지 증거는 없었다. 오직 나의 육감. 그냥 신이였다. 그 단어와, 한자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그 자체로 신이였다.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 씨발 네가 신이냐? "
" ... "
아무 반응도 없는 그의 멱살을 더 세게 쥐고 뒤흔들었다.
" 네가 신이냐고!? 사람 말을 들었으면 대답을 해야할 것 아냐! 아, 썅. 내 기도 씹은 것처럼 이번에도 쌩까게? 아니 이번엔 안될줄 알아 씨발아! "
" ... "
그는 대답이 없었다. 파멸한 내 인생 궤도 속 주축이였던 존재. 그는 나에게 매우 가혹하다.
" ...내가 신 같아? "
그의 입에서 나온건 의외의 말이였다. 존나 신성하게 생겨가지고는 누가봐도 신인데 뭘 물어보는거야.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새가 몸에 묻은 물을 털어내듯 그가 신이라는 명사를 제 몸에서 털어냈다. 순간 머릿속으로 짧은 문장 몇가지가 밀려 들어왔다.
「···그는 태초의 신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믿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어느 폭포에서 궤멸했다. 」
어,그래. 궤멸했다고? 배신당하고? 이내 그의 역사가 점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에겐 권능이 없었다.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미웠다. 단지 한때 신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한때 그가 내 기도를 무시한 자들과 같은 족속이였다는 것만으로. 나도 알 수 없다. 내가 왜 이리 화나는지. 좆같아 진짜.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한마디만 더 하면 쓰러질 때까지 울 것 같았다. 내가 씨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썅.
손에 힘이 들어왔다. 끔찍했다. 앞에 있는 약한 이, 한때 신이였던 이가 만만했다. 내 앞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에게 화가 났다.
아, 정말. 짜증나.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일부러 주먹을 날리려던 건 아닌데. 진짜 아닌데. 점점 아이 같이 흐너지는 이성과 상반되게 몸을 주체할 수 없다. 보나마나 얼굴은 존나게 빨개졌겠지. 뺨이 상기된다.
" ...미안. "
아니 뭐가 미안한데? 너가 왜 미안한데? 나랑 비슷한 처지면서. 이내 무너졌다. 살면서 딱히 들어본 적 없는 말을 이렇게 듣게 된다고? 볼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이 짠내를 내며 입으로 흘러들어왔다. 진짜, 뭣같게, 갑자기 이딴식으로, 말하면, 너무 아프잖아. 진짜 가슴이 찢긴다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영문도 모르겠는 눈물이 꽉차게 흘렀다.
" 울지 마. "
통곡했다. 개새끼, 지가 뭔데. 주체할 수 없는 소리를 타고 그가 나를 안았다. 신이라서 자비로운 거야 아님 그런 척 하는거야? 내가 저를 치려고 까지 했는데. 차디찬 가을 바람 중에 오직 따뜻한 신의 품에 안겨 울었다. 죄송합니다.
민윤기. 그의 이름이라 하였다. 갈 곳 없는 신, 정처 없는 신. 나와 비슷한 처지다. 얼굴은 실컷
특출나서, 나와 같이 살면 안돼겠냐 묻는다. 갈 곳이 없다한다. 나도인데.
" 정말 안 되겠어? "
" ..저도 비슷한 처지라. "
이성이 돌아오고 나니 어쩐지 존댓말 쓰고 예의를 갖춰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까 내가 왜 그랬지. 신이였지만 신이 아닌자의 위압감에 온몸이 눌린다.
" 그런데, 어쩌다가 배신 당했어요? "
" 주변의 다른 신들의 시기와 질투. 내 오만함. "
신이라서 말도 저렇게 고급지게 하는건가? 이제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방 안에 어색한 기류만 맴돈다. 저 사람, 아니 신은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지만. 과거를 저렇게 고견해봐도 아무렇지 않은건가. 민윤기가 나를 쳐다본다. 심장이 철렁한다.
" 그래서, 대답은? "
" ..예? "
" 어쩔 거냐고. 나도 끼고 살아줄거야? "
무능력한 신이 한참 가엾게만 보인다. 은하수가 표류하는 눈동자 속에 빠진다. 그와 같이 살아야겠다.
다음 날 아침, 숙박집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지만 원망했던 신을 얻어냈다. 하지만 신은 약했다. 이게 과연 잘 된 것인가. 혹시 지금의 진짜 신이 나에게로 이 사람을 보낸 건 아닐까.
" 일어나야지. "
" ...어? "
" 도착했어. "
곱게 접히는 눈이 내 앞에 아른거린다. 민윤기구나. 이름도 참 예쁘네. 그가 나 대신 내 배낭을 챙겨 좌석에서 일어난다. 잔뜩 굳어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작은 방. 그 곳에서 신과 같이 살게 되었다.
오묘한 마음을 가진 채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 씨발, 좆됐다.
" 우리 지민이 이제 오나? "
" 어데 갔다 왔노? "
아, 벌레 같은 조폭 새끼들. 술집의 풍경이 된 내 집에 문신을 한 조폭 서넛이 들어앉아 있었다. 이곳저곳 널린 술병과 담배 연기로 매캐해진 집안. 저것들은 끝없이 악독하다. 내 몸을 파먹는 좀벌레.
눈깔에 상처 난 놈이 나에게 친한 척 말을 건다. 다른 새끼들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낄낄대며.
" 지민아, 우리 집 잘못 찾은 거 같은데? "
" ..."
" 어서 죄송하다고 하고 나가자. "
내 뒤에 서있는 민윤기가 속삭인다. 조폭들은 아직 민윤기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내 손목을 부드럽게 쥔 윤기가 걸음을 재촉한다.
" 지민아,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하노? "
" 그래, 오랜만에 행님 몸 좀 풀어드려야지 않겠나? "
아니,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또 울면서 박히고 지들 후장이나 빨라고? 나보고 창놈이 되라고? 싫어.
엉거주춤하게 뒤로 뻗는 걸음에 조폭들의 표정이 싹 바뀐다. 제일 높은 놈의 팔에 깎이듯이 그려진 용이 꿈틀, 하고 움직인다.
" 우리 지민이, 다른 새끼 데리고 왔네? "
" 걔도 걸레냐? "
그들만의 우스움도 잠시, 민윤기의 표정이 싸하게 굳는다. 가을 하늘 같던 눈동자에 폭풍이 휘몰아친다. 굳게 닫힌 창 뒤로 단풍이 휘날린다. 민윤기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조폭들도 일어났다.
" 아따, 비실허게 생겨가지고 가오는 존나게 잡네. 행님, 뒤에 비실이는 어쩔까요? "
" 저 새끼도 끌고 와. 박지민은 나랑 몸 좀 굴리고 뒤에 놈은 알아서 해라. 죽이던지. "
" 예, 행님. "
아, 새끼 피떡으로 만들기 전에 얼렁 가라. 윗대가리는 가만히 앉아있고 나머지 놈들이 움직인다. 건들대며 일어난 새끼들이 목과 주먹을 우둑이며 풀더니 이쪽으로 다가온다. 주체적이지 못한 심장은 온몸을 부술듯이 뛰어대고 내 내면도 부서진다. 나도 두려움에 부서져 간다. 민윤기가 내 손목을 잡은 손을 놓는다. 아니, 놓지마. 구원해 줘. 질질 흐르는 눈물과 함께 민윤기에게 매달렸다.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구원해줘.
엉엉 통곡하며 민윤기의 허리춤을 잡았다. 너는 신이잖아? 신이 아니야? 전엔 신이였잖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잖아. 나 좀 도와줘. 정말 싫어. 도와줘.
크게 벌린 목구멍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만 새어나온다.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비탄에 잠기며 체액을 떨어뜨렸다. 점점 젖어가는 복도 바닥에 조폭 똘마니 새끼들이 나를 손가락질 하며 비웃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구르고 어느 날은 뼈가 부러지도록 맞고 얼굴이 퉁퉁 붓고 물고 빨고 하긴 싫어. 도와주세요. 구원해주세요.
민윤기가 찬 기운을 내뿜는다.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내 착각인가? 민윤기에게서 살의가 뿜어져 나온다. 내 머릿속을 민윤기가 헤집고 다닌 느낌이다. 내 마음을 민윤기가 읽은건가? 아니잖아, 민윤기는 그럴 수 없잖아. 그도 버림받았잖아? 조폭들이 잠시 움찔 하더니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민윤기를 비웃는다. 눈을 감는다. 깊은 잠에 빠질 것 같다.
지민아, 지민아. 내 목소리 들려. 지민아. 나 좀 봐봐. 지민아.
꿈속인가. 너무 달큰한 목소리에 깨어나고 싶지 않다. 눈을 뜬다. 민윤기가 보인다.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피 범벅이 된 그에 놀라 벌떡 일어난다. 민윤기가 나를 다시 눕힌다.
" 너 기절했잖아. 누워있어야지. 그렇게 벌떡 일어나고 그러면 몸 더 안 좋아져. "
" 아니, 얼굴..."
까진 이마, 눈 밑에 생채기. 부은 반대쪽 눈과 멍과 피로 본래 피부색이 잘 보이지 않는 뺨과 광대. 입술은 불어터졌다. 헝클어진 머리칼, 붉은 자국이 남은 목, 피와 땀이 배인 상의. 까지고 붉어진 손 마디에 움찔, 한다. 너무 미안하다.
" 조폭들은? "
" 다 갔어. 너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도 했어. "
아, 그렇구나. 아무 말도 안 나온다. 고맙고 미안하고 슬프고 안타깝고 의문이 들고 가슴이 저릿하고 쓰라리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미안합니다.
" 미안..해. "
" ...괜찮아. "
나 신이였잖아. 그 한마디에 퉁퉁 부은 눈에 또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민윤기 너는, 그렇게 강인한데, 한 번도 울지 않는데, 나는 말이야, 계속 이렇게 징징대고. 귀찮지? 미안해. 많이. 미안해.
" 고마워. "
" 괜찮아. "
그가 나를 쳐다본다. 심장이 뛴다.
나의 아가페, 나의 에로스. 나의 신. 아마 사랑인 듯하다. 뻔하디 뻔한 히어로물이 범벅된 신과 나. 신에게 구원 받았다. 나 또한 그를 구원했다. 이토록 짧은 기간 동안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어이가 없지만 그랬다. 죽었던 가을은 신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심장이 뛰게 되었다.
창 밖에선 바람이 휘날린다. 단풍이 바스락대며 상공에 몰아친다. 아까와 비슷한 풍경이다. 천고마비의 계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끝을 알 수 없이 높다. 그 하늘은 신, 민윤기의 눈 속에 있었다.
어쩌면 가을은 내가 아닌 그가 맞겠다.
뜨겁고 차가운 손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온다. 모순이 잔뜩 섞인 몸. 입술이 마주 닿는다.
비릿한 피 맛이 도는 혀가 섞인다. 손이 점점 몸을 타고 올라온다.
나의 구원, 사랑합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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