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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

 

w. 리하

 가로등 빛 한 줄기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둘러싸인 거리,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낙엽이 가득한 바닥에 누워 멀리서 봐도 심각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검붉은 핏덩이들을 손으로 막으며 낮게 신음한다. 상처의 깊이나 크기로 짐작했을 때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처치를 받아도 그의 여파는 한참이나 갈 듯 보이지만, 남자는 병원에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핏덩이들을 손으로 막기에 급급할 뿐이다. 남자의 하얀 피부와 똑 닮은 그의 민트색 머리칼이 그의 복부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조금씩 빨갛게 물든다.
 
  “…지민아.”
 
 남자는 이내 허탈하게 웃으며 ‘지민’이라는 사내의 이름만 연신 내뱉는 것을 반복한다. 지민아, 지민아, 지민아. 과연 그와 ‘지민’이라는 사내와는 어떤 사연이 있길래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이름만 연신 외쳐대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곧 다물릴 듯 보이는 그의 잇새 사이로 조그맣게 단어가 하나 튀어나온다.
 
  “보고싶어.”

 

 

 

 

 

 

 

 

 

 

 

 

 

 

 

 

 

 

 

 

 

 

 


   #1. 첫 만남

 

 

 


  “저기요, 이러지 마세요!”


 윤기가 담배가 다 떨어진 담뱃갑을 바라보며 편의점으로 향하다 편의점 내부에서 들리는 웬 남자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자리에 섰다. 뭐야. 인상을 한껏 찌푸린 윤기가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남자의 목소리는 거짓이 아니라는 듯 다시 한 번 크게 윤기의 고막을 때렸다.


  “악…! 이러지 마세요! 제발요!”
  “......”


 윤기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차피 들어가려고 했었던 거니까. 저가 방금까지, 어쩌면 평생 동안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일이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과는 정말 대조된다는 것을 알게 된 윤기가 괜한 자기합리화를 하며 편의점의 투명한 유리 문을 열어젖혔다.


  “...가관이네.”


 따릉-, 편의점 문의 종이 울리고 윤기가 편의점으로 들어서 아까 그 소리가 난 곳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계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미스러운 장면에, 윤기는 안 그래도 구겨져 있던 미간을 더욱 보기 좋게 구겼다. 꽤나 앳되어 보이는 흑발의 편의점 알바생에게 멀리서부터 술 냄새를 풍풍 풍기는 취객이 달라붙어 더러운 검은색 입술을 들이밀고 있었다. 씨발. 낮은 목소리로 욕을 읊은 윤기가 계산대로 달려가 알바생에게 붙어있는 취객을 한 손으로 거칠게 떼어냈다. 악! 윤기의 힘으로 인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취객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넌 또 뭐야, 어? 왜 갑자기 들어와서 방해질이야! 꺼져!”
  “염병하지 말고요, 그쪽이나 좀 꺼지세요. 손가락 부러지고 싶지 않으면.”
  “뭐?! 너 이거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신고해보시던가. 내가 방금 들어와서 본 게 있는데.”
  “......”


 저 학생한테 그쪽 더러운 입술 비비려고 했잖아요, 이 새끼야. 좆 되고 싶지 않으면 곱게 말할 때 꺼져요. 윤기의 뼈 때리는 팩트 폭력을 들은 취객은 곧 얼굴이 붉은 토마토가 된 채 씩씩대며 편의점 문을 괜히 거추장스럽게 크게 열어젖히고는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쯧, 나이를 저만큼씩이나 처먹고서 하는 짓이라고는. 발정 난 새끼. 그를 보며 혀를 찬 윤기가 아차, 하며 계산대 뒤에 서 있는 알바생을 바라봤다. 그는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


  “괜찮아?”
  “...! 아, 네. 괜찮…,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무서웠지. 그냥 확 패버리지 그랬어.”
  “......”
  “그럼 이만 간다. 저런 새끼들 그냥 싹 잡아다가 신고ㅎ,”
  “잠시만,”


 잠시만요. 자리를 뜨려던 윤기는 그의 정장 소매를 잡는 알바생의 손으로 인해 저지당했다. 윤기가 무슨 일이냐는 듯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잠시만…. 잠시만 같이 있어주시면 안 될까요…? 곧 울 것만 같은 그의 표정에, 윤기는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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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은 박지민. 나이는 열일곱. 그러니까…, 원래대로 따지면 고등학교 1학년인데, 부모님은 작년에 돌아가셨고, 친척들은 걍 다 쌩 까고. 그러다 보니까 돈이 없어서 중학교 졸업한 뒤에  고등학교는 못 다니고 하루 종일 알바만 해서 겨우겨우 먹고살고 있다…. 아까 그 지랄을 한 남자는 생판 처음 보는 남자긴 한데, 근처가 다 유흥가라 새벽에는 그런 일이 자주 있다.


  “이거야?”
  “...네.”


 하, 참…. 사연이 있긴 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더 심각한 사연이었네. 윤기가 제 앞에서 모든 일을 다 털어놓고는 손가락만 꿈지럭대고 있는 지민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오목조목 얼굴을 따져 가며 보자, 꽤나 예쁘장하게 생긴 것이 새벽에 그런 발정 난 놈들이 편의점에 찾아와 그런 더러운 짓을 할 것이 뻔해 보였다. 


  “그래서, 알바는 계속 뛸 거고? 여기서? 괜찮겠어?”
  “괜찮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잖아요. 돈이 없는데.”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는 지민에 윤기가 입안의 여린 살을 어금니로 살짝 깨물었다. 열일곱의 소년에게서 나오는 말이라고 믿기에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졌다. 윤기가 푹하고 한숨을 크게 쉬자, 지민이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급히 환하게 웃으며 물어왔다.


  “아, 맞다. 이름이…. 민윤기,라고 하셨죠? 윤기 형이라고 해도 돼요?”
  “응. 마음대로 해.”
  “형은 직업이 뭐예요? 힘 완전 세 보이던데. 아까 그 덩치 한 번에 넘어뜨렸잖아요. 그것도 한 손으로. 저 사실 조금 반했어요.”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 없어.”
  “크큭, 그런가. 아니 근데 뭐냐니까요, 직업? 운동선수예요? 아, 체격이 아닌데? 뭐지?”
  “......”


 아-, 왜 대답 안 해줘요오! 지민이 대답이 없는 윤기에 말꼬리를 늘려가며 앙탈을 부리다 윤기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그의 눈치를 보며 말소리를 줄였다. 윤기의 얼굴에는 방금까지 옅게 띄워져 있던 미소가 지워져 있었고, 굳은 그의 날이 선 이목구비만이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아…. 초면에 좀… 제가 실례를 했네요. 죄송해요. 지민이 굳은 윤기의 표정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깬 것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윤기였다.


  “내 직업이 알고 싶어?”
  “...아, 네.”
  “나는, 지민아.”


 아까 여기 왔던 그런 새끼들 죽이는 사람이야. 윤기가 지민을 바라보자, 지민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동공이 이리저리로 바삐 움직였고, 말을 이해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어…. 그러면…. 경찰? 경찰이신건… 가?”
  “경찰한테 잡히면 난 뒤지는 목숨인데.”
  “아…. 그, 그러면, 그…”
  “생각하는 거 맞아.”


 조직원. 근데 평범한 조직원은 아니고,


  “흔히 말하는 ‘조직 대가리’. 그게 나야.”
  “이…. 하하… 그렇구나…”
  “왜? 무서워?”
  “음…. 아니요, 딱히 무섭지는 않아요.”


 윤기가 예상외로 담담하게 대답하는 지민에 흠칫하며 그를 쳐다봤다. 왜? 왜 안 무서워? 나 방금도 사람 죽이고 왔는데? 지민은 윤기를 천천히 쳐다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조직원이라고 꼭 무서운 법은 없잖아요.”
  “......”
  “지금 나 죽이실 것도 아니고. 나 살려주신 거 보면 되게 좋으신 분 같은데, 윤기 형.”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지민에 윤기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간지러운 느낌을 받은 듯했다. 평소 자신이 조직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무서워하거나 혐오하며 자신을 피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민은 달랐다. 윤기는 처음으로 밖에서 제 사람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홧김에 말을 내뱉었다. 지민아.


  “네?”
  “...우리 조직 들어와서 살래?”
  “......”
  “기본적인 의식주는 다 해결해줄 수 있어.”
  “......”
  “...손에 피는 조금 묻혀야 하겠지만.”
  “......”
  “대신 원할 땐 언제든지 나가. 혼자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들 때에는. 그땐 안 잡을게.”


 지민이 고민을 하는 듯 다시 또 입술을 달싹였다. 흔쾌히 나오지 않는 대답에 윤기가 마른 제 입술을 축였다. 싫다고 하겠네. 윤기가 체념하며 괜찮다고 말을 꺼내는 순간, 지민이 순서를 가로챘다.


  “아니야, 괜ㅊ,”
  “좋아요.”
  “...응?”
  “좋다구요. 들어갈게요, 거기.”
  “...괜찮겠어?”
  “운동 신경은 자신 있어요. 의식주도 해결해준다는데 여기보다 훨씬 낫겠지. 대신 신세 조금만 지다가 성인 되면 나올 거예요. 그땐 안 잡는다고 했어요, 분명히.”
  “...응.”


 뭐가 문제야, 당연히 좋다고 해야죠.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콧노래를 하며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아니, 대부분 사람 죽이라는데 싫다고 하지 않나? 윤기가 당황한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민은 (물론 이 날 처음 봤지만) 너무나 윤기의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2. 단풍의 의미 1

 

 

 


  “형…. 윤기 형…”
  “...응, 지민아.”
  “내가…. 내가…, 내 손으로…, 사람을 죽였어요.”
  “......”
  “...내가 이 사람을 죽였어.”


 탕-. 큰 총격 소리가 창고에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1층을 걷던 꽤나 체격이 있는 남자의 몸이 앞으로 쓰러지며 그가 입고 있던 하얀 니트 조끼가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니트 조끼를 적시던 붉은 선혈은 마침내 그의 몸 전체를 적셨고, 창고 안에는 정적이 맴돌다 이내 지민의 울먹거림만이 메아리쳤다. 울먹이는 지민의 옆에서 윤기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지민아.


 지민이 윤기의 조직으로 들어온 후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짧게 훈련을 받고 배정된 첫 임무였다. 첫 임무부터 살인이라니, 지민의 정신적 충격은 감히 윤기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윤기가 할 수 있던 것이라고는 옆에서 울고 있는 지민을 토닥여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내가 미안해, 괜히 이런 데에 참으로도 예쁜 너를 끌어들여서. 푸른빛이던 너를 다른 색으로 물들였구나. 내가…, 내가 예쁘던 널 더럽혔구나. 윤기의 마음속에서 이유 모를 죄책감이 소용돌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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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기와 지민이 처음 만났던 작년 가을, 또 지민이 푸른빛에서 다른 빛으로 물든 작년 가을로부터 정확히 일 년이 지났다. 그 말인즉슨, 지민이 조직에 들어와 조직생활을 한 지도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었다. 일 년 새 지민은 윤기를 처음 만났던 작년보다 몸도 훨씬 단련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점차 자신이 하는 일을 깨닫고 익숙해져 갔다. 익숙함이 가장 무서운 거라더니, 처음에 사람을 죽였다며 울며불며 윤기에게 매달리던 지민이 이제는 다른 조직원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 단풍 예쁘지 않아요, 형? 단풍 보러 가자.”


 지민이 빨간 단풍이 여럿 달린 단풍나무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말했다. 응, 그러게. 예쁘네. 윤기가 단풍나무에게는 시선을 단 1초조차 주지 않은 채 지민만을 쳐다보며 말했다.


  “쳐다보지도 않고 말해요, 왜. 단풍 보러 가자고.”
  “그래, 가자. 네가 가고 싶다는데 내가 싫다고 할 리가 없잖아.”


 헤헤-, 하긴. 여기 실세는 나라니까. 형이 날 너무 좋아하잖아. 지민이 순진한 어린아이를 닮은 앳된 눈웃음을 지으며 윤기를 바라봤다. 윤기가 지민이 내뱉은 말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 지민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러나 웃는 그의 낯과는 다르게, 윤기의 마음속에는 잿빛의 먹구름이 점점 드리웠다. 널 너무 좋아한다라…. 맞기는 하지. 근데 난 널 다른 의미로 좋아해.


 윤기가 지민에게 한낱 동정심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는 꽤 됐다. 윤기는 꽤나 어른이었고, 경험은 많이 없지만 자신의 연애와 사랑에 대해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눈치까지 빨라, 지민이 조직에 들어온 후 그는 쉽게 그의 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민에게 대놓고 작업을 건다거나 할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죄책감. 죄책감이 그 이유였다. 윤기는 깨끗하던 지민을 자신이 더럽혔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맑던 순수한 아이를 자신이 끌어안고 흙탕물 속에 들어와 바닥에 발목을 묶어 잡아두고 있다고 믿었다. 지민은 항상 자신에게 고맙다 말했지만, 윤기의 마음속 한 켠에는 그러한 부류의 죄책감이 지민이 조직에서 생활한 일 년 내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 그 죄책감은 지민이 조직을 언젠가…. 언젠가 나가게 되는 그날까지 윤기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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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들어와. 윤기가 저의 방에서 안경을 쓰고 인상을 찌푸린 채 다음 임무의 세부사항 및 처치 계획을 천천히 읽어내려가던 도중, 누군가 밖에서 그의 방문에 두어 번 노크를 했다. 윤기가 그에 들어오라 말하자, 무거운 검은색 문이 열리며 윤기가 그토록 갈망하지만 갈망할 수 없는 얼굴이 보였다.


  “형!”
  “응, 지민아.”
  “뭐하고 있었어요? 안경 쓴 거 오랜만에 본다. 완전 멋있어. 겁나 지적인데요? 의외네.”
  “푸흡. 그래서, 갑자기 왜 왔어?”


 윤기가 자신의 책상 앞에 자리 잡은 검은색 소파에 앉으면서도 자신을 보며 쫑알대는 지민에 환하게 웃으며 일관했다. 안경을 벗고 서류철을 책상에 내려 둔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의 앞에 가서 앉으며 물었다. 지민이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음…. 그니까요…, 그게….”
  “뭐야. 무슨 일 있어? 뭔 일이야. 왜.”


 지민이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윤기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으며 반응했다. 윤기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그의 재킷 안쪽에 있는 총을 꺼내들자, 지민이 그를 보고 눈을 크게 뜨고 식겁하며 윤기를 제지했다.


  “아니! 아니! 아무 일도 없어요! 갑자기 총을 왜 꺼내, 나 쏴 죽이게요?”
  “뭐래. 무슨 소리야. 아니 그것보다, 뭔 일인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말하기를 망설여.”
  “아오, 민윤기 이걸 진짜.”
  “...?”
  “내가 얼마 전에 단풍 보러 가자고 했었던 거, 기억나요?”
  “응. 당연히 기억나지.”


 내일 여기서 단풍축제한다길래 같이 가자고 하려고 왔다고요!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라…! 지민이 축제 안내 책자가 띄워진 휴대폰 액정을 윤기의 얼굴 앞에 들이밀며 얼굴이 붉어진 채 소리쳤다. 아…. 윤기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었다. 내가 괜한 오해를 했네, 미안하다.


  “어우, 대체 이 짓거리를 얼마나 했길래 무조건 그런 방향으로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형도 가만 보면 조금 불쌍해.”
  “......”
  “아, 됐고요. 같이 가줄 거죠?”


 당연한 걸 물어, 박지민. 윤기가 첫 번째 질문에 굳어 있던 얼굴을 애써 풀며 지민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지민은 다행히 윤기의 어둠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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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형! 여기 와 봐요, 여기!”


 다음 날 찾아간 단풍축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광경은 윤기와 지민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축제를 찾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지민이 신난 듯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가장 큰 단풍나무 밑으로 달려가 윤기를 불렀다. 윤기는 마지못해 가주는 척 지민에게 다가섰다. 윤기가 지민에게 가까워지자, 지민이 손으로 모아 뒀던 단풍잎들을 윤기의 머리 위로 뿌렸다. 빨간 단풍잎들이 윤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푸흡! 하하하, 형 진짜 웃기다.”


 단풍잎들의 윤기의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꽤나 우스웠는지, 지민은 주저앉아가며 폭소를 터뜨렸고,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던 윤기도 지민이 웃자 입동굴을 보이며 따라 웃었다. 그리고 그때 갑작스럽게,


  “...!”
  “...!”


 두 사람의 입술이 쪽 소리를 내며 살짝 맞닿았다 떨어졌다. 윤기와 지민의 얼굴은 너무나도 붉어져 있었고, 지민은 헛기침을 하며 윤기에게 횡설수설 사과하기 시작했다.


  “아니…. 형, 그니까요…, 음…. 그러니까….”
  “......”
  “...ㅅ...실… 실수예요, 실수! 하하…. 죄송합…,니다. 미안해ㅇ,”


 지민의 말이 윤기의 입술에 의해 먹혀들어갔다. 윤기가 지민의 뒷목을 잡고 깊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지민은 당황하는 듯하더니 곧 저도 눈을 감고 윤기에 어깨에 두 팔을 둘렀다. 지민의 짧은 입맞춤과는 다른 부드럽고 달콤한 입맞춤이 이어지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뗐다. 두 사람이 몇 초간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윤기가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거. 내가 내 나름대로 해석해도 될까, 지민아.”
  “...응. 나도, 내 나름대로 해석해도 돼요?”
  “...응.”
  “......”
  “좋아해, 박지민.”
  “나도.”
  “이 단풍나무에 새로운 단풍이 몇 번이고 생길 때까지.”
  “......”
  “...그때까지, 함께했으면 좋겠어.”


 응. 나도요, 형. 두 사람이 손을 겹쳐 잡고 깍지를 꼈다. 마주친 눈빛 사이로는 사랑을 막 시작한 풋내기들의 그런 풋풋함이 녹아들어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증명했고, 그렇게 행복하지만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시작했다.

 

 

 

 

 

 

 

 

 

 

 

 

 

 

 

 

 

 

 

 

 

 

 


  #3. 단풍의 의미 2 (펀치님의 ‘헤어지는 중’을 들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스팟 투. 슈가 앤 제이. 잠입 완료. 이상.”


 슈가와 제이. 슈가는 윤기의, 제이는 지민의 코드명이었다. 윤기는 벌써 14년째, 지민은 벌써 3년째 쓰고 있는 코드명. 조직에서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버리고 코드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져야만 한다. 만약 본명이 노출되어 적들에게 신상을 털리고 인질, 혹은 약점이 될 만한 것이 적들의 손아귀에 붙들린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을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평범한 생활을 누렸다면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본인의 이름이 공동체 전체를 흔들 수 있는 막대한 것이 되어버린다. 코드명은 이를 가려주는 수단이 된다. 본명을 가려 자신을 보호시켜주는 존재가 된다.


 푸른빛의 잎사귀를 여러 가지 찬란한 색들이 추위로부터 보호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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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윤기 형님!”


 덩치의 사내가 고함을 지르며 윤기의 방문을 소란스럽게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잠시 소파에 기대 눈을 붙이고 있던 윤기가 깊게 인상을 쓰며 그를 타박했으나, 사내는 그런 말 따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사내는 뛰어오느라 찬 숨을 고르기 바빴다.


  “야. 너 누가 네 좆대로 본명 그렇게 크게 쳐 말하고 다니래.”
  “헥, 헥….”
  “그리고 누가 노크 없이 지 보스 방문을 그따위로 세게 열고 들어와, 어? 정신 안 차려? 요즘 내가 너무 풀어 놨냐?”
  “형님…, 헥, 지민…, 아니, 제이 형님이,”
  “뭐. 제이가 왜.”


 여기를…, 뜨신답니다. 윤기가 사내에게서 나오는 지민의 이름에 날카로워진 말투로 그를 쏘아보자, 그는 윤기의 눈치를 보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윤기는,


  “...야. 대가리가 쳐 돌았냐? 어디서 구라를 치고 앉아 있어. 뒤지고 싶어?”
  “저도…, 방금 듣고 바로, 바로 달려온 겁니다.”
  “...누가 그래.”
  “제이 형님께서…, 응팔이한테…,”


 씨발. 사내의 멱살을 잡고 그를 추긍하다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방 밖으로 뛰쳐나가 ‘응팔’이라는 사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야, 응팔이 이 씹새끼 어딨어. 복도마다 넓게 펼쳐져 있는 모든 방의 문을 하나씩 열어젖히자 하나둘씩 당황하며 저에게 인사하는 조직원들에게, 윤기는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욕을 내뱉으며 ‘응팔’이라는 사내의 행적을 물었다. 그리고 복도 맨 끝 방에서 그를 찾은 순간, 윤기는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검은색 정장 깃을 그대로 잡아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ㅎ, 형님…! 왜 이러세ㅇ…!”
  “제이가, 너한테 여기를 떠나겠다고 전했나?”
  “...예.”
  “다시 한 번 대답해. 박지민이. 너한테 그랬어? 여기를 뜨겠다고?”


 네, 형. 그랬으니까 그분 멱살 좀 놓고 얘기하죠? 괜히 생 사람 잡지 말아요. 윤기가 응팔이라는 사내에게 날카로운 말투로 쏘아붙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지민이 들어왔다. 윤기가 하루아침에 냉담하진 지민의 말투에 정장 깃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아, 하루아침만에 냉담하진 것은 아니었다. 사흘 정도 전부터, 지민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점심을 같이 먹어도 조금만 먹다 먼저 일어난다거나, 윤기의 데이트 신청을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한다거나. 윤기는 지민이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근데, 근데…,


  “진짜…, 떠날 거야…?”
  “나와요, 형. 얘기 좀 해요.”
  “대답 먼저 해. 진짜 갈 거야?”
  “...네. 갈 거니까 나오라구요.”


 응팔이란 사내는 차가워진 두 사람의 사이에서 눈치를 봤다. 마침내 윤기가 헛웃음을 치며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둘이 향한 곳은 건물 옥상이었다. 윤기를 제외하고는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다. 윤기만의 공간. 물론 삼 년 전 지민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둘만의 공간이 되었지만 말이다. 


 옥상에 다다른 둘은 말이 없었다. 둘 사이의 온도가 차가워진 가을바람의 영향을 받은 듯 매우 낮았다. 가을의 서울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선 건물의 옥상에서는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었을까. 그들의 추억이 담긴 옥상에서,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가을의 단풍잎들 사이에서, 과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삼 년 동안 서로를 많이 닮아간 듯 달싹거리던 윤기의 입술 사이에서, 질문의 탈을 쓴 매달림이 하나 튀어나왔다.


  “왜.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
  “...지민아.”


 질문을 들은 지민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옥상 밑으로 쓰라린 눈을 한 채 도로에 넓게 펼쳐진 여러 색의 단풍잎들과 낙엽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을 단풍을 바라보던 지민이 입을 뗐다.


  “나 여기 들어오던 날, 기억해요?”
  “...응.”
  “그럼 우리 처음 사귄 날은?”


 당연하지. 내가 그걸 어떻게 까먹어. 윤기가 지민의 질문에 필사적으로 대답하자, 지민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윤기를 쳐다봤다. 그거 알아요? 우리의 만남과 사귐의 모든 시작은 가을이었어요. 가을도 가을이었는데, 항상 단풍의 피크였어요. 단풍이 제일 예쁜 시기에 우린 모든 걸 시작했다고.


  “......”
  “그때 편의점에서 말했잖아요, 내가.”
  “...뭘.”
  “성인이 되면, 떠나겠다고.”


 그때 제가 열일곱이었죠. 그리고 삼 년이 지났어.


  “나 스무 살이에요.”
  “......”
  “나, 성인이야.”


 이제 떠나야죠. 내 삶을 찾으러. 분명히 그때, 원할 때 나가라고 했잖아요. 지민의 말을 들은 윤기는 얼이 빠진 듯 말이 없었다. 지민이 그런 윤기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피식- 하고 슬프게 웃으며 윤기의 눈을 마주 봤다.


  “모든 단풍의 끝이 뭔지 알아요?”
  “......”
  “예쁘게 물든 단풍들은, 그 나무에서 떨어져 낙엽이 돼요.”
  “......”
  “모든 단풍들의 끝은,”


 ‘추락’이에요. 윤기의 눈에 투명한 액체가 맺혔다. 크기를 키우던 액체들은 머지않아 윤기의 눈에서 추락했고, 옥상 바닥에 흡수됐다. 울지 말아요, 그러게 애초에 우리는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나 봐.


  “형은 여기서 14년 동안 있었다고 했죠.”
  “...응.”
  “형이 무슨 사연을 가지고 여기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그 긴 세월을 보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
  “난 내가 단풍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민의 눈에도 윤기의 것을 닮은 투명한 액체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 울면 안 되는데. 지민이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애써 웃었다.


  “사람을 처음 죽였던 날. 그때부터 계속. 오늘까지.”
  “......”
  “악몽을 꿨어요. 우리 부모님이 나왔어.”
  “...!”
  “내가 죽어도 말 안 했었잖아, 우리 부모님 얘기.”
  “......”
  “지금, 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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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엄마…, 아빠…!”


 지민이 자신의 손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도 모르는 채 오열하며 싸늘한 제 부모의 시체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엄마, 아빠, 일어나 봐요.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왜! 지민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콧노래를 부르며 세 식구가 함께 먹을 치킨을 한 손에 들고 집에 들어와 그들을 불렀을 때부터 집 안에는 싸늘한 공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불안감이 지민을 지배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지민이 신발을 벗고 부모님께서 계셔야 할 안방에 들어갔을 때, 그를 반기는 건 웃고 계시던 부모님이 아닌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두 분의 시체뿐이었다. 그렇게 지민은, 열여섯의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큰, 첫 번째 이별을 맞았다.


 강도 살인이라고 했다. 집에 물건을 훔치러 온 도둑이 자신의 얼굴을 본 부모님을 보고는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그들의 몸을 몇 번이고 찔렀다고 했다. 오후 일곱 시. 지민이 막 학원 수업을 시작했을 시각이었다. 학원 수업을 하루만 빠지라던 아버지의 말씀을 거스른 것이 어쩐지 무언가 마음에 걸리더라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꿈에서도 몰랐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두 부모님의 장례식에는 그 흔한 친척들조차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다. 그들을 향한 지민의 통화연결에는 그저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여성 ARS의 음성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매일 악몽을 꿨어요.”
  “......”
  “강도라는 사람은 안 잡혔지만, 그 강도라는 새끼가 우리 부모님을 죽이는 장면이. 그 장면이 매일 밤마다 내 머릿속에서 그려졌어.”
  “......”
  “칼로 찔러 죽일 때도 있었고, 총으로 쏴서 죽일 때도 있었고, 불을 질러 죽일 때도 있었어요. 그리고…. 내가 사람을 처음 죽인 날. 그때부터는 꿈이 조금 달랐어요.”
  “......”
  “1인칭 시점이었어요. 알아들어요?”
  “...!”


 내 꿈에서, 내가 몇 년을 꿔 오던 똑같은 꿈에서, 내가 우리 엄마 아빠를 총으로 쏴 죽였어요.


  “그 꿈을 처음 꾼 날, 내 기분은 어땠을 것 같아요?”
  “......”
  “...한 달에 한 번씩 납골당을 갈 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지민의 과거를 들은 윤기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지민을 잡으려고 하지도 못했으며, 감히 그를 위로하려고 들 수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민을 바라보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그저 그냥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죄책감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지민을 더럽힌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그런 그를 붙잡아두어야만 하는 그런. 그러나 지민이 매일 밤 무슨 꿈을 꾸는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잠드는지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가져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윤기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래서 그 자리에서 지민을 더 이상 잡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풍은 추위를 증명하는 거래요.”
  “......”
  “추워지면, 잎들은 자신의 푸른빛을 잃고 다른 색으로 물들어 버려요.”
  “......”
  “나는 이미 물들었어요. 그래서 언젠간 떨어지겠죠. 추락하겠죠.”
  “......”
  “추락하기 전에 떠날 거예요. 추락하기 전에, 색을 없애려고.”
  “......”
  “...저 단풍잎들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할 때쯤 떠나겠습니다. 많이 고마웠고, 많이….”


 사랑했어요, 윤기 형. 지민은 이 말을 끝으로 눈물을 닦으며 터벅터벅 옥상을 빠져나갔다. 지민이 사라지고 남은 옥상에는 차가운 바람의 온도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차가워진 바람만큼 시린 감정이 윤기를 지배했다. 그 시림은 유리 조각이 되어 윤기의 몸 전체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다 마침내 심장에 다다라 윤기의 심장을 관통했다. 차마 흐르던 눈물을 닦지도 못한 윤기의 눈에서 새로운 눈물방울들이 흘러나와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조금씩 열리는 윤기의 잇새 사이로 흐느낌이 늘어났다. 지민아…, 지민아. 윤기가 흘린 눈물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그 많은 눈물들을 생성해냈을까. 윤기의 마음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세차고 차갑게 불어대는 바람에, 나무에 아슬하게 매달려있던 단풍들이 조금씩 조금씩 바닥으로 추락했다.

 

 

 

 

 

 

 

 

 

 

 

 

 

 

 

 

 

 

 

 

 

 

 


  #4. 마지막 잎새

 

 

 


 지민이 이곳을 떠난 지도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던 단풍들은 이제 거의 낙엽으로 변해 있었다. 지민은 정말 옥상에서의 인사가 마지막 인사였는지 그 뒤로 윤기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그에게 한 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다, 땅에 낙엽이 쌓이기 시작했던 날, 모든 짐을 가지고 사라졌다. 그가 모든 조직원들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는, 그가 머물던 방에 남기고 간 쪽지 한 장과, 까먹었는지 미처 챙기지 못한 그의 가족사진이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를 그렇게 보듬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언젠간, 다시 꼭 뵐 수 있기를 빕니다. 부디 아프지 말고 언제나 건강하시길.’


 윤기가 지민이 떠난 것을 아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 바람을 쐬러 옥상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평소에는 조직원들의 담소로 시끄러웠던 로비가 조용한 것에서부터 윤기는 무언가 어떤 심각한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윤기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말고 조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로비로 향했다. 또각또각 하는 윤기의 구두굽 소리가 들리자, 조직원들은 일제히 윤기를 쳐다봤고, 당황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 형님. 여긴 어쩐 일ㄹ…,”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 무슨 일 있나?”


 아 그, 그게…. 조직원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망설이자, 윤기가 눈썹을 찡그리며 그들을 노려봤다. 말해 봐, 무슨 일인지. 어차피 알게 될 일일 텐데 숨길 이유가 있나? 윤기의 날카로운 말투에 망설이던 한 조직원이 머뭇거리며 윤기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말했다.


  “제이 형님이….”
  “......”
  “떠나셨습니다. 이 쪽지랑 사진이 방에 유일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윤기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민…, 박지민이… 떠났다고…? 그가 떨리는 손으로 조직원이 건네는 쪽지와 사진 한 장을 받아들었다. 쪽지를 읽은 윤기는, 곧 그 쪽지에 한두 방울 눈물자국을 남겼다. 그의 눈물을 본 조직원들은 모두 당황하기 시작했다. 14년을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도 처음 보는 그의 눈물이었다. 항상 강하기만 했던 그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그들을 충격에 머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쪽지를 다 읽은 윤기가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후 건네받은 사진 한 장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볼살이 통통한 어렸을 적의 지민과 양옆에서 지민의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윤기가 그의 손으로 색이 많이 바랜 사진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예전에도…, 참 예뻤구나, 넌. 윤기가 슬픈 눈을 한 채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려 웃다 끝내 오열하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은 그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눈치를 보며 자리를 뜬 지 오래였고, 항상 소란스러웠던 로비에는 윤기의 음성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윤기는 생의 두 번째 이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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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은혜? 그 딴 거 좆도 모르겠으니까, 가르치려고도 들지 마요. 진짜 진심으로 모가지 따버리고 싶거든. 버림받은 고아. 윤기가 평생을 ‘민윤기’라는 자신의 이름 뒤에 달고 살아오던 꼬리표였다. 윤기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부모라고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막 말을 구사하기 시작한 윤기에게 ‘여기 들어가서 이거 보여주면 돼. 우리 금방 올게, 윤기야’라고 말하며 자신을 고아원에 버려두고 간 것이다.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정의 내리게 된 것은 한창 밝아야만 했던 초등학교 일 학년 때였다.


  “야, 민윤기! 너 버림받았다며? 너 엄마, 아빠 없지?”
  “아니야! 있어! 조금만 기다리면 데리러 온댔어!”


 푸하하하! 넌 그걸 믿어? 너 진짜 바보다~ 하하! 윤기가 쉬는 시간에 짝꿍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 반에서 짓궂은 장난을 자주 치는 남자아이들이 와 윤기를 놀려댔다. 윤기가 씩씩대며 대답하자 그 남자아이들은 저들끼리 깔깔대며 교실을 떠났고, 윤기와 다른 아이들이 남은 교실은 정적만이 맴돌았다. 버림 받았…, 다고…? 내가? 초등학교 일 학년, 여덟 살의 어린 나이. 그렇게 윤기는 세상과의 벽을 쌓았다. 그리고 실질적인 첫 번째 이별을 맞이했다.


 윤기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준다거나, 말을 건다거나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철저히 혼자였고 다가오는 아이들은 모두 날카롭게 쳐 내기 바빴다. 그냥 자주, 자신을 놀려대는 아이들과 몸싸움을 해 불려갈 뿐이었다.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너도 그렇게 웃으면서 다가오다, 결국엔 날 버리겠지. 윤기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할퀴어져 있었다. 그리고 삼 년 뒤, 4학년. 열하나. 다른 아이들은 나도 이제 고학년이야!라며 들떠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윤기는 그렇게 들뜬 아이들이 그저 같잖아 보일 뿐이었다. 한 가지 문제는, 일 학년 때 그에게 ‘버림’을 인식시킨 그 남자아이가 같은 반에 앉아있었다는 것이었다. 윤기가 반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그 남자아이는 씩 웃으며 윤기에게 다가왔다.


  “어? 고아다.”
  “...꺼져라,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내가 왜? 여기 우리 반인데. 그리고 네가 고아인 건 사실 아니야? 그나저나, 입을 연 게 대체 얼마 만이야? 난 또 말도 못 하는 줄 알았네. 크큭.”


 남자아이의 비꼬는 말투에 교실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윤기는 덤덤한 척 책상 위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보며 새로 받은 교과서들을 책상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윤기가 반응이 없자, 그 남자아이는 윤기가 보고 있던 시간표를 뜯어버렸다. 종이 스티커가 떼어진 자국만이 책상 위에 남아 있었다.


  “아, 미안. 실수로 떼버렸네.”


 콰쾅-! 그때였다. 윤기가 책상을 발로 넘어뜨리며 일어나 웃고 있는 그 남자아이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윤기의 주먹에 의해 뒤로 넘어진 남자아이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입술 언저리에 피를 매달고 일어섰다.


  “...너! 너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일러보던가. 난 어차피 네가 말한 대로 부모라는 새끼들도 없어서 말이야, 여기서 혼나면 끝이야.”
  “......”
  “뭘 그렇게 째려봐. 더 맞고 싶어서?”


 윤기가 조소를 띄운 채 남자아이에게 폭언을 퍼붓다, 마지막 말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주먹을 그의 복부에 내리꽂았다. 다시 뒤로 넘어진 남자아이가 명치를 맞은 듯 숨을 쉬지 못하고 캑캑대며 일어나지 못하자, 윤기는 폭소를 터뜨리며 그를 조롱했다.


  “푸하하! 이거 갖고서도 아파서 이 지랄을 하는 새끼가 말이야.”
  “켁, 켁.”
  “감히 어떤 부분을 건드려. 겁대가리 없이.”
  “...너…!”
  “이제 고학년이라고 떠들썩했잖아, 늬들. 그럼 고학년인 만큼 할 짓 안 할 짓은 구별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


 민윤기! 윤기가 막 말을 끝내자 교실 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왔다. 상황을 지켜보던 어떤 아이가 교무실로 달려가 선생님을 불러온 듯 보였다. 너희 둘, 따라와. 대충 눈으로 상황 파악을 마친 선생이 윤기와 남자아이를 데리고는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서는 항상 그래왔듯, 윤기만이 벌을 받았다. 항상 그랬다. 윤기는 항상 받은 것에 대한 마땅한 대우를 하였을 뿐이었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벌을 받는 것은 윤기뿐이었다. 과연 그게 정말 윤기의 잘못이 더 커서였기 때문일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였을지는 그간 윤기만을 혼낸 선생들 본인만이 알 터였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말을 늘려가며 꾸역꾸역 반성문을 다 쓴 윤기가 반성문을 제출하고 선생의 훈계를 무시한 채 교무실 밖으로 향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6시였다. 혼나겠네. 한숨을 푹 쉰 윤기가 든 것이 없던 가방을 고쳐 매고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민윤기. 너 또 친구 때렸니? 윤기를 혼내는 고아원 원장의 목소리가 고아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너 언제쯤 정신 차릴래! 윤기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고함을 지르는 그녀의 앞에서 바닥을 보는 것밖에 없었다. 선생이 원장에게 또 저의 잘못만 쏙 골라 얘기했을 것이 눈에 훤했다. 한참 동안 그녀에게 혼나고 있을 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원장님-! 손님 오셨어요! 자신을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를 들은 원장은 윤기에게 ‘여기 꼼짝 말고 서 있어’라고 말하며 윤기를 째려보고는 입구로 나갔다. 윤기가 원장의 너머로 손님이라는 사람을 쳐다봤다. 손님은 오른쪽 뺨에 큰 흉터가 나 있었으며,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윤기가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적인 느낌에 침을 목구멍으로 간신히 넘겼다.


  “......”
  “......”


 열심히 무엇인가를 설명하던 원장을 사이에 두고, 윤기와 손님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몇 초간 눈빛을 교환했다. 서로 눈을 피하지 않다,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그 남자였다. 남자가 윤기를 가리키며 원장에게 내뱉은 말은 윤기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되겠습니까.”
  “네…? 저 아이요? 어머, 진심이세요?”


 남자의 말을 들은 원장은 얼굴빛이 환해졌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은 그가 윤기를 데려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윤기를 그저 ‘다 큰 골칫덩어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에겐 윤기를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얘기 나누세요! 원장에게 살짝 웃으며 목례를 한 남자가 윤기에게 다가왔다.


  “친구랑 싸웠지?”
  “…!”
  “그냥, 눈빛이 누구를 하나 죽일만한 눈빛이어서.”
  “......”
  “친구가 널 놀린 모양이구나.”


 그저 눈빛만으로 윤기의 사정을 다 파악한 남자는, 놀란 듯 눈이 커진 윤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윤기가 그의 손짓에 살짝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자, 남자는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예민하기까지 하는구나. 마음에 들어.”


 저를 보며 웃음을 짓는 남자에, 윤기는 처음으로 무언갈 놓치기 싫다는 느낌을 받았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윤기는, 용기를 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절 데려가 주세요.”
  “......”
  
 눈이 커진 채 윤기를 바라보던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윤기를 쳐다봤다.


  “날 따라오면, 네가 평생 불행해질 수도 있다. 괜찮겠니?”
  “아무리 불행해봤자 여기에 계속 있는 것보다는 행복하겠죠.”
  “평생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각오할 수 있겠니?”
  “...괜찮아요.”


 윤기의 진지한 눈빛을 몇 초간 응시하던 남자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윤기도 말없이 그의 눈을 쳐다봤다. 그래. 나랑 같이 가자, 꼬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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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민이 떠나고 삼 일간 윤기는 말 그대로 폐인처럼 지냈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다른 조직원들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윤기는 14년간 조직생활을 하며, 한 번도 흐트러짐이나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보스였다. 그렇게 모든 부분에서 완벽을 추구하던, 완벽주의자였던 그가 지민이 사라지고 난 후부터 밥은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낮이고 밤이고 술만 마시다 잠드니, 조직원들의 경악의 이유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 아무리 그를 말려 봐도, 그는 듣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형님, 제발! 이러시면 건강만 해치십니다. 빨리 주무시고 이제 차차 다시 일 시작하셔야 합니다.”
  “놔!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안 닥쳐?”
  “윤기 형님!”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윤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모든 물건들을 손으로 쓸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당장이라도 누구를 찔러 죽일듯한 그의 눈빛에 조직원은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윤기의 방을 나갔다.


  “형님. 의뢰가 하나 들어왔는데…,”


 삼 일을 그렇게 폐인으로 보낸 윤기에게 조직원이 의뢰가 들어왔다며 서류철을 건넸다. 무슨 의뢰인데. 윤기가 서류철을 건네받고 천천히 내용을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윤기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그를 지켜보던 조직원이 윤기에게 말했다.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겁니다. 형님 이 상태로 작전 나가셨다가는 진짜 큰일…,”
  “나갈 건데, 이거.”
  “...형님, 진짜,”
  “언제까지 박지민 때문에 이러고 살 수는 없잖아. 잊혀지겠지, 일 열심히 하면.”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조직원이 씁쓸하게 말하는 윤기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윤기는 삼 일 새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항상 넘치던 자존심과 자긍심, 그리고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고, 그저 슬픔과 우울함만이 윤기에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조직원은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해 지민을 찾고 싶었지만, 모든 연락 방법을 소멸시킨 지민에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코로 큰 한숨을 내뱉은 조직원이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라며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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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드명 슈가. 현재 위치 스팟 원. 스팟 투에서 스나이퍼 저격 대기, 쓰리에서 나이프 대기 중. 타켓들이 보이면 각자 최선의 방법을 시행하길 바란다. 이상.”


 윤기가 검고 무거운 무전기를 도로 정장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는 스팟 원에 혼자 잠입해 작은 권총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 조직원들 중 한 명을 데려가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스팟에 필히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 윤기는 그냥 자신이 혼자 오는 방법을 택했다. 숨이 막힐 듯한 고요함이 이어지다, 그 고요함을 깨고 총격 소리가 들려온다. 탕-! 도로를 지나던 덩치가 있는 사내들이 하나둘씩 피를 내뿜으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윤기도 들고 있던 권총을 장전하고 한두 명씩 조준하며 타켓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윤기네 조직원들이 우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을 때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한다. 갑자기 총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칼잡이들이 한둘 씩 쓰러지더니 피를 토하며 숨이 멎는다. 제길. 윤기가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당황하며 칼잡이들을 쏜 총알의 근원지로 총을 마구 쏴댄다.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기자, 총알이 나오지 않는… 다?


  “씨발, 총알.”


 총알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총을 마구 쏴댄 탓인지 윤기의 총에서는 더 이상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다. 싸움을 계속하려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벤으로 돌아가 총알을 더 가져와야만 한다. 윤기가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문다. 벤으로 가려면 족히 10분은 걸어야 할 터. 왕복은 20분이 걸린다. 위급한 상황에서 보스의 꽤나 긴 부재는 곧, 그 조직의


‘추락’


을 뜻한다. 윤기가 무전기를 들어 조직원들에게 무전을 연결한다. 여기는 스팟 원의 슈가, 총알의 방전. 투와 쓰리 상황 보고를 바란다. 이상. 행여나 그들이 보내는 무전을 놓칠까 무전기를 귀 옆에 대고 손톱을 뜯는 모습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긴장한 전장에서의 윤기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는 스팟 투의 이안. 스나이퍼는 안전합니다. 다녀오셔도 될 듯합니다. 이상.”


 윤기가 이안의 무전을 받자마자 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만 한다. 시간에 쫓긴 윤기가 주변을 살피지도 않은 채 무작정 아무도 없는 거리를 달려간다. 가로등 빛 한 줄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윤기가 뛰어가는 와중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4분이 지났다. 전속력으로 뛰어왔으니 곧 벤을 찾을 수 있다. 뛰어가는 거리는 떨어진 낙엽으로 가득 차 있다. 윤기의 눈에 언뜻 스친 나무에는, 잎새 하나만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윽…!”


 그러나, 변수가 하나 생긴다. 윤기의 복부로부터 갑자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고통이 밀려 올라온다. 윤기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면서도 본능적으로 고통의 근원지를 손으로 짚는다. 검붉은 핏덩이들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다. 고개를 든 윤기가 주위를 살핀다. 멀리서 희미하게 시뻘건 피가 묻은 칼을 든 사람이 뛰어가는 것이 보인다. 함정. 함정이었다. 윤기를 제거하려는, 그런 적들의 함정 속으로 윤기가 직접 뛰어들어간 것이었다. 평소의 윤기가 저지를만한 큰 실수는 아니었다. 그간 신경 썼던 일들의 여파다. 


 윤기가 결국 바닥에 쓰러진다. 피는 흘러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윤기의 손에도 결국 바닥과 낙엽들을 적시고, 더 흘러 윤기의 민트색 머리칼을 적신다. 윤기가 인상을 찌푸리고 계속 낮게 신음한다. 윤기는 계속 ‘지민아’를 연신 외쳐댄다. 점점 윤기의 초점이 희미해진다. 찌푸렸던 미간의 주름도 점점 펴지기 시작한다. 윤기의 입으로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그에게는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그의 잇새는 곧 힘을 잃고 다물릴 듯 보인다. 윤기의 입에서 힘겹게 단어가 하나 튀어나온다.


  “보고 싶어.”


 툭. 복부에서 나오는 피를 저지하던 윤기의 손과 함께,


나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마지막 잎새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낙엽’이 된다.


모든 단풍의 끝은,


‘추락’


이다.

 

 

 

 

 


-마지막 잎새 fin. (외전이 더 있습니다)

 

 

 

 

 

 

 

 

 

 

 

 

 

 

 

 

 

 

 

 

 

 

 


  #외전. 추락

 

 

 


  “아, 미친. 사진 놓고 왔다.”


 지민은 조직을 나와 삼 일 동안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삼 년간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월급으로 작은 원룸 방 하나를 마련했다. 짐을 다 푼 지민이 잠을 청하려 침대에 눕자, 조직에 놓고 온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의 어렸을 적 가족사진. 지민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부모님의 흔적이었다. 지민이 얼빠진 표정으로 하얀 천장을 바라보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지민에게는 그 사진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러나, 차마 그 사진 하나를 찾으려 조직으로 돌아가기에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내가 무슨 낯짝으로 거길 다시 들어갔다 와…, 그리고 또,


  “...윤기 형을 어떻게 봐, 내가.”


 지민이 눈을 세게 감고 도리질 쳤다. 그에게는 윤기를 다시 봐야만 한다는 아픔보다도, 그 사진이 더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잠깐…, 잠깐 사진만 가지고 오자. 그럼 안 볼 수 있어. 그럴 거야. 지민이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낙엽이 굴러다니는 왠지 모르게 어딘가 불길한 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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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적으로 아침 7시에 눈을 뜬 지민이 매일 입던 정장에 손을 대려다 멈칫하고는 헛웃음을 쳤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건 맞네. 작게 중얼거린 지민이 회색 후드티와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볼캡을 세게 눌러 썼다. 사진만. 사진만 가지고 오는 거야.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지민이 마음을 다잡았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그의 ‘옛’ 조직 앞이었다. 여전히 휘황찬란하게 높게 솟은 선탠이 강하게 쳐진 건물은 지민이 침을 삼키게 했다. 한 번 건물을 훑은 지민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건물 문을 열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에? 뭐야 이거. 왜 잠겨 있어.”


 지민이 잠겨 있는 문을 앞뒤로 여러 번 흔들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지민이 불안한 듯 입안의 여린 살을 세게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지민이 문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을 때, 지민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 아니 지민 형님…?”
  “...!”


 여긴 어쩐 일로…. 볼캡을 눈까지 눌러썼음에도 그를 알아본 건, 지민이 가장 아끼던 조직원인 응팔이었다. 지민을 본 그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지민은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평소 그의 분위기와 눈빛과는 매우 달랐다. 무언가 나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민이 그에게 날카롭게 질문했다.


  “무슨 일 생겼나? 분위기가 왜 그러지? 문은 왜 잠겨 있고.”
  “......”
  “뭔데.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나 나온 지 삼 일밖에 안 됐는데,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나?”


 지민의 질문을 들은 응팔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입을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설이는 그를 본 지민이 캡을 벗어 앞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 후 캡을 다시 썼다. 대답, 안 하나?


  “...그게….”
  “뭐.”
  “윤기 형님께서 어젯밤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응팔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지민이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살짝 벌어진 입은 다물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끊기는 지민의 음성만을 내보냈다. 그런 지민을 본 응팔의 눈이 쓰라렸다. 응팔이 지민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전 잠깐 뭘 놓고 와서 가지러 온 겁니다.”
  “...거짓말.”
  “......”
  “거짓말하지 마! 민윤기 그렇게 쉽게 죽는 새끼 아니잖아!”


 지민이 주먹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새 빨갛게 충혈된 지민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응팔에게 윽박을 지르는 지민의 목소리가 점점 흔들리다, 결국 지민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지민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 번호로 장례식장 주소 찍어. 한 시간 안으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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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를 치르던 삼 일 동안 지민은 참 많이 울었다. 삼 일 내내 잠도 자지 않으며 식장을 지킨 지민은, 장례식이 끝나고 그의 뼛가루가 보관되어 있는 납골당에 찾아가 웃고 있는 윤기의 사진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민은 유리 창에 손을 대고 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윤기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애써 웃고 있던 지민의 입꼬리와는 다르게, 부은 그의 눈에서는 참으로 모순적인 눈물이 흘렀다.


  “내가 미안해요. 내가 그렇게 가는 게 아니었는데. 나 혼자 살자고 그렇게 가는 게 아니었는데.”


 항상 들리던 윤기의 대답이, 이제 지민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지민이 슬픔에 더욱더 잠식됐다.


  “금방…. 금방 갈게요, 내가.”


 지민이 납골당 건물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따라올라갔다. 옥상을 막고 있는 두꺼운 방화문을 열자, 싸늘한 가을바람이 지민의 뺨을 때렸다. 지민이 한 발씩 한 발씩 옥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내가 금방 갈게요. 형이 추락한 곳으로, 내가 같이 따라 내려갈게. 우리 가을의 마지막 잎새는 형이 아니라,


  “내가 될게요.”


 떨어지지 않으려 나뭇가지들 속에 저를 끼워두었던,


나무의 진짜


‘마지막 잎새’가


추락했다.

 

 

 

 

 


-마지막 잎새 fin.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리하(@LIHA_SJ)입니다! 우선 여기까지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길었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는데, 이렇게 끝내고 보니 열심히 원고한 보람이 있네용. 제가 가을을 사계절 중에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 같아요. 가을의 그 분위기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주제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더 신중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전 사실 가을이라고 하면 낙엽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누군가는 낙엽을 예쁘다-, 라고 하지만 전 낙엽만 보면 왜 그렇게 우울한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글의 전체적인 주제도 낙엽을 ‘추락’의 상징으로 보고 있죠. 낙엽의 落이 ‘떨어질 락’이기도 하고. 가을은 조금 암울한 계절인 느낌을 많이 받아서, 꼭 새드로 쓰고 싶었는데…, 제 감정이 잘 전달되셨나요?! 되셨으면 정말 다행이에요 ㅠㅠ


 모든 피드백은 감사히 받겠습니당. 읽으신 후 후기나, 이 부분은 고쳤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으신 분들은 꼭 피드백 남겨주세용! 꼭 열심히 다 읽어보고 더 좋은 글로 찾아뵙는 리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른 존잘님들의 작품들도 꼭 보셔야 해요!


 아, 그리고 같이 합작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이번 합작을 하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사계절을 주제로 한 합작이라니…. 같이 합작을 진행하신 모든 분들도 정말 좋으신 분들이었고, 피드백도 꼼꼼히 주셔서 여러 가지를 얻어갈 수 있던 정말 보람 있던 합작이었던 것 같아요.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합작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한 달 간의 대장정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총대님도 정말 수고 많으셨고, 다른 분들도 정말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3

© 2018 by SUJIM Four Seasons, presented by @EPILOGUE_sj & @Love_maze_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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