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w. 리다
하늘에 닿는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절대 닿을 수 없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결국은 닿지 못해 계속해서 나아가면 하늘이 아닌 우주에 닿을 수 있다.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닿을만큼 크고 싶다는 아이를 보면 그냥 웃었다. 아마 그 아이는 금방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전학생이래."
"전학생? 지금 시기에?"
"엉, 전학생."
"너 전학생 보러 갈래?"
"난 별로."
쉬쉬 손을 내저었다. 전학생을 보면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면 내 성적이 1등급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보러 이리저리 이동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러면 자기들끼리 보고 오겠다며 우당탕 교실 문을 열고 나가, 몇 분 지나자 우당탕 다시 돌아왔다. 그래도 관심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어서 귀를 쫑긋거렸다. 완전치 못한 문장들이 들어와 단어 몇 개만을 머리에 남기고는 다시 새어나갔다. 이름을 말해야지, 전학생이라 말하면 내가 이름을 어떻게 알아. 그렇다해서 딱히 물어볼 생각까지는 있는게 아니였지만 말이다. 키가 큰가 보다. 벌써부터 점심시간에 자신의 팀이라며, 점심시간마다 농구하는 애들이 편을 가르고 있었다. 운동 못하면 어떡하려고 저러냐.
"야, 너 전학생 온다는거 들었어?"
"너가 지금 제일 늦게 안 거 아닐까."
"이름 최수빈이래."
아, 최수빈이구나. 나랑 같은 최씨네. 두 번 입술이 모아졌다가 한 번 풀어졌다. 아, 그러고보니 이름이 수빈이면..수빈은 보통 여자 이름 아닌가. 이것도 일종의 성차별인가. 아니, 뭐..남자일 수도 있지. 아니면 여자애인데 농구를 엄청 잘하는 애라던가...
"전학생 이름은 최수빈이고, 어디 학교에서 왔다고 했지?"
남자애였다. 확실히 농구하는 애들이 노릴만하겠네. 나도 작은 편은 아니라 자부했는데, 나보다도 키가 큰 것 같다. 내가 키에 대해 자존심이 있는걸 처음 알았다. 그게 깎이는 것 같았거든. 사실 그거 외에는 딱히 첫인상에 남지도 않았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세상에는 나보다 키가 큰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굳이 우물 안의 개구리 마냥 내가 크다는 것에 자존심을 갖고 있는게 독이지. 인정하면 편한 사실은 최대한 빠르게 인정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고작 20년도 안 살은 주제에 깨달은 것이었다.
최수빈은 어딘가, 그러니까 좀 독특했다. 아무리 전학생이라 하더라도, 이곳이 처음이라 하더라도 한 달이면 적응하지 않나. 가끔 스쳐 지나가듯이 본 눈빛에는 가끔 그리움이 섞여 있어서, 시선을 맞추기 어려웠다. 단순한 그리움이면 모를까. 서려있는 그 그리움은, 마치 볼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듯한 것이었다. 그런건 못 본 척하는 것이 내게 이로울테지.
"야, 거기 아니야."
"어?"
"거기 미술실 아니라고."
슬쩍 아래로 내려가는 시선이 내 명찰을 확인하는 거구나, 싶었다. 이름이야 헷갈릴수도 있지, 뭐. 사소한 면에서는 관대해야 하는 법이다. 그나저나 곧 수업종 치겠는데. 얘랑 서로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수업 지각하게 생겼네. 팔을 잡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미술쌤 잔소리 엄청 하는데.
"야, 뛰어. 곧 수업종 쳐."
대답은 없는데 열심히 발을 굴리는지 속도는 얼추 비슷하다. 계단을 한 번에 두 칸씩 올랐다. 제발, 제발, 제발. 미술실 문을 밀었다. 타이밍 좋게 종이 울린다. 들어가기만 하면 어찌되었든 세이프인데 말이야.
"..잠겼네?"
아무래도 오늘 미술 수업은 교실인 듯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미술실 앞에서 둘이서 기다렸다. 이러면 부장이 찾으러 오고, 어쨌거나 잘못 들었어요 하면 잔소리는 좀 줄겠지. 침묵이 가득할 법한 공간에 3학년이 수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어색해라. 이렇게 어색한건 별로인데.
"너, 내 이름 알아?"
"어? 어, 알지."
"거짓말."
"연준이잖아, 최연준."
걔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썩 듣기 괜찮았다.
"너 내 명찰 봤었잖아."
대꾸가 없다. 솔직하네. 딱히 고작 이런걸 가지고 솔직한게 좋다, 싫다 말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좋은거 아닌가. 다시 뚝, 대화가 단절되었다. 미술 부장은 왜 이렇게 안 오는건지. 이러다가 우리 둘 다 결석 처리가 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수빈의 팔을 덥썩 잡았다. 눈이 커졌겠지.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을 것 같다.
"우리 결석 처리 되는거 아냐?"
빨리, 빨리, 빨리. 계단을 내려가는데 미술 부장이라 딱 마주쳤다. 안 그래도 너네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하며 태평한 소리를 내뱉는다. 그냥 선생님이 늦게 들어오셔서 이제서야 데리고 오라 말씀하셨나 보다. 긴장이 탁 풀렸다. 내 생기부 살았다. 최수빈한테는 미안해서 어떡하냐. 나 때문에 혼나게 생겼네.
뒷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선생님을 입술을 떼셨는데, 그전에 최수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미술실인 것 같다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그거 내가 너한테 한 말인데. 어쨌거나 말을 먼저 내뱉은 덕분인지 별로 안 혼났다.
가방을 뒤적거려 사탕을 찾았다. 레몬이 그려진걸 보니, 레몬 사탕인듯 했다. 좋아하려나. 대충 주머니에 넣었다. 수업 끝나면 줘야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손에 다 들어오는 사탕을 굴리다가, 결국 대충 끄적이는 척이라도 하던 손을 멈췄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은 애초에 이길 생각도 없었어서, 그대로 까무룩 잠들었다. 아마도.
"..점심....일...준아?"
점심? 점심 먹어야 하는데..그치, 점심 먹어야지. 잘 때가 아니다. 눈꺼풀이 언제 무거웠냐는 듯이 번쩍 눈이 떠졌다. 깨워줘서 고맙다고 해야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고맙다 말해야할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름 다 기억했다가 나중에 우리 오래오래 가자 해야지.
"..으, 아아-"
"일어났어?"
"응..너는 점심 먹었어..?"
혼자 점심 먹기 심심한데. 눈을 쓱쓱 비비자 그제서야 앞이 좀 선명히 보이는 듯했다. 음..그러니까, 최수빈..? 최수빈인가? 주먹 쥔 왼쪽 손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탕 줘야하는데. 꽉 맞물린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하품 덕에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잘 잤다. 학교에서 잔 것치고 엄청나게 잘 잤다. 만족의 웃음이 퐁퐁 나왔다.
"손."
"..일으켜 줘?"
아니, 뭐..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손 달라고."
"손 내밀어."
아? 손목이 잡혀 몸이 일으켜지는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쟤 힘도 좋구나. 다시 거두는 손을 하나 잡아 왼쪽 손에 계속 쥐고 있었던 사탕을 올려뒀다. 눈이 커지는게 볼만 했다. 밥 먹었다고 했었나. 얘가 고개를 저었는지, 끄덕였는지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점심 먹으러 가자."
"아, 응."
"이미 먹은건 아니지?"
"응."
"그럼 됐고, 가자."
그게 최수빈이랑 처음으로 말을 가장 많이 한 날이었다.
그 후로 계속 함께 점심을 먹었다. 같이 시간 가는걸 기다렸다가 대충 애들이 다 먹을 때쯤에 같이 내려가서 많이 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교할 때는 종종 분식집을 같이 갔고, 주말에도 가끔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내일 나랑 같이 등교할래?"
"좋아."
등교도 종종 같이 했다. 그러니까, 최수빈이 내 일상을 전부 뒤덮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지금 거신 번호는-"
"..아?"
그런 최수빈이 사라졌다.
반에 들어가 짝꿍을 먼저 붙잡았다.
"최수빈 학교 안 왔어?"
"누구?"
"최수빈."
"몇 반인데?"
심장이 쿵 떨어졌다. 바닥을 나뒹구는 듯했다. 몇 반이냐니, 우리 반이지. 두세 달 전에 전학 왔었잖아. 나만, 나만 기억하는걸까. 내가 잠시 꿈을 꾼 걸까. 꿈치고는 너무 생생했는데. 꽉 깨문 입술에서 맛없는 맛이 났다. 손으로 입술을 벅벅 닦으니, 피가 보였다. 최수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서 또 같이 밥을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최수빈이.
사람이,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 나갔다 올게!"
신발을 구겨 신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으려면 빛보다도 더 빨라야 한다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우주선이 타고 싶다면서 땡깡이라도 부려야할까. 우주로 나가면, 내가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어디로 가면, 너를 만날 수 있어? 네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도, 네 사물함 번호를 알아내보겠다며 번호를 하나하나 돌리고 있어도, 이미 없는 너가 그만하라며 올리는 없어서.
"..최, 수, 빈."
나는 네 이름을 적고, 네 이름을 부르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못내 서러웠다. 네가 없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이 생겼는데, 하지도 못하게 생겨서, 그게 많이 서러웠다.
하늘이 깜깜했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별들이 보였다. 마치 별들이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실제로 별이 떨어질리도 없는데, 그 별들을 전부 맞아 최수빈을 볼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 안에서 레몬 사탕을 굴리고 싶어졌다.
"..아."
웃긴건, 나는 별들이 정말로 내게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와중에 엉뚱하게도 처음 너가 나를 일으켜줬을 때가 생각이 났었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이라더니, 네가 생각나는게 웃겼다. 눈 앞이 하얗게 변해가는데, 그 위에 너를 덧그렸다. 중증이다.
제대로 다시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는 하늘이 밝았다. 기절이라도 했나. 그러면 별이 떨어지는건 역시 꿈이었나 보지.
"..유리창?"
딱딱하다. 손을 대고 있으니, 차갑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꿈인건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손이 유리창 너머로 올려진다. 나보다 좀 더 큰 손이다.
"안녕, 연준아."
최수빈이다. 최수빈이다. 진짜 최수빈이다. 분명 할 말이 있었는데, 전부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분명 많았는데-
"야, 최수빈."
너는 대꾸가 없다.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다. 바짝 마른 입술을 혀를 내어 축였다.
"사랑한다고."
그래도 어렴풋, 네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번에는, 이 유리창 깨버릴 망치라도 들고 올테니까, 내가 너한테 말했을 때는, '나도'라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해.
하늘에 닿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