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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물

w. 램프

비보는 갑작스러운 법이다.

 네, 네. 수빈의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 옆에 있는 본인의 남편에게 귓속말을 했다. 오늘따라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게, 기분을 영 이상케 했다. 수빈은 말없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쌀밥에 계란말이를 올려 입에 넣으려는 순간, 익숙한 이름이 부모님 사이에서 오가는 것을 깨달았다. 연준이가? 아버지가 깜짝 놀란 듯 어머니에게 재차 되물었다. 그럼 절차는 어떻게 해. 당신이 다녀와요. 내가? 어쩔 수 없지. 알겠어. 수빈의 아버지가 황급히 옷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뭔가 꺼림칙했다. 최연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분명했다. 수빈이 눈에 쌍불을 켜고 옷방으로 따라들어가려다 어머니에게 눈총을 받았다. 넌 어째 지금도 연준이라면 죽고 못 사니? 어머니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정장을 고르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인데요?

"글쎄, 그 애가 죽었다는구나."

 피가 얼어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여보! 밖에서 수빈의 어머니가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가 황급히 입을 막았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연준이 형이 죽었다고요? 수빈이 힘겹게 입을 떼자, 수빈의 어머니가 들어와 수빈을 끌고 방 밖으로 나갔다. 너는 어서 이거 다 먹고 학교 가. 충격으로 인해 머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본인이 없는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최연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새 수빈의 아버지는 나갔고,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전화를 돌리고 있다. 아, 예. 저희가 꾸준히 후원하던 아이 기억하시나요? 네, 연준이가…. 아. 죄송합니다. 유학 도중에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한 모양입니다. 예. 예. 코를 훌쩍이지만 눈은 미동도 없다. 저 어른들에게 최연준이란 입맛에 맞는 인형에 불과한 존재인가 보다. 회사 주가 떨어졌을 때 이미지 메이킹이랍시고 오냐오냐 잘 대해주다가도 주식 조금 올랐다고 바로 내쳤다. 

 연준이 가고 나서야 안 사실인데,  유학이라고 대준 것도 비행기 푯값밖에 없단다. 그런 대접을 받아 놓고도 연준은 참 예쁘게도 웃었다. 항상 수빈의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고, 눈치를 계속 봤다. 형은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았을까. 수빈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화낼 정신도 없어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열었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어머! 수빈아! 어머니가 깜짝 놀라 소리치며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눈앞이 새카매졌다. 생각해 보면, 연준은 수빈의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대했지만, 수빈의 부모님은 연준에게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다. 수빈에게 연준은 본인의 부모님이 후원하던 형 그 이상이었다. 성적도 성격도 흠잡을 데 없던…….

사랑이었단 것을 진작 깨달았어야만 했다.

 

______

 수빈은 눈을 감았다 떴다. 익숙한 제 방 천장이 눈에 보였다. 주변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얇고 까슬한 이불의 감촉이 느껴졌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옆이 춥지 않았다. 어?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몸을 트니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연준이 형? 수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형, 연준이 형! 수빈의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깨며 몸을 파드득 떨던 연준의 미간이 예쁘게 구겨졌다. 야! 뭐냐? 너 왜 사람 자는데 깨우고 그래?

"형아 내일 간다고 시위하냐?"

"네?"

"좀 더 자자. 지금 새벽 두 시자낭.."

 깜짝 놀라 협탁에 놓인 시계를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고장나서 버린 지 반 년도 넘은 시계가 놓여 있다. 6월 1일. 시간은 정확했다. 2019년이란 점만 빼면. 얼떨떨해진 수빈이 몸을 일으켰다. 뺨을 꼬집고 때려 봐도 더럽게 아팠다. 연준은 완전히 잠이 깼는지, 몸을 일으킨 수빈을 어이없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형. 지금 몇 년도죠?

 너 왜 그래? 악몽 꿨어? 이천십구년이잖아. 연준의 말에 수빈이 연준 한 번, 시계 한 번 쳐다보다 연준을 와락 끌어안았다. 형. 저 진짜 이상한 꿈 꿨나 봐요. 얼른 자요. 미안해요. 맨살에 닿는 맨살의 감촉이 부드럽다. 방금 깨달은 건데, 연준과 수빈 둘 다 브리프만 입고 있었다.

 연준의 출국 전날 밤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부모님은 야근하시고, 집엔 둘밖에 없었다. 수빈은 연준의 짐을 들어 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야자까지 쨌다. 양손 가득 연준과 함께 하교해 집으로 도착한 수빈은 연준의 방으로 향했다. 연준이 형. 짐 다 쌌어요?

"으응. 아니."

 나 아직 문제집 못 쌌는데. 연준이 방 한 켠에 놓여 있는 문제집 더미를 가리켰다. 켜켜이 쌓인 문제집 앞으로 다가가니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연준이 쑥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야아, 별 거 없어. 수빈이 문제집을 옮기자 연준이 본인이 하겠다며 수빈의 손에서 문제집을 빼앗아 들려고 했다. 어느새 배려가 실랑이로 번졌고, 문제집을 잡아당기던 연준이 바닥에 팔랑거리며 통신문을 밟았다.

 미끄러지는 것은 찰나였다. 수빈이 몸을 틀며 미끄러지던 연준을 받았다. 같이 넘어지며 연준의 머리를 받친 탓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연준이 깜짝 놀라 몸을 틀자, 수빈이 연준을 빤히 바라봤다. 묘한 기류가 순식간에 둘을 덮쳤다. 코가 가까워진 탓에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연준의 눈시울이 살짝 발개져 있었다. 파들거리던 속눈썹이 수빈의 손에 가려졌다. 수빈이 연준에게 입을 맞췄다.

 일 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연준이 일 년 전, 그러니까 오늘 냈던 소리가 귀에 생생히 다가와 꽃히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뜨거워진 수빈이 괜히 연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봤다. 너 때문에 잠 다 깼다는 연준의 투정을 뒤로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날이 밝으면 연준은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연준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공포가 엄습했다. 오늘 연준이 출국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부모님은 둘 다 야근하신다 하셨기 때문에 집에는 연준과 수빈만 있었다. 수빈은 아침을 먹는 내내 연준의 눈치를 살폈다. 연준 또한 그러했다. 시선이 마주치기 전에 눈을 피하기만 하다, 용기내서 연준을 부르며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형. 오늘 몇 시 출국이라 그랬죠? 엉. 저녁 일곱 시. 황 이사님이 데려다 주시기로 했어. 마지막이잖아. 연준이 입꼬리를 올려 씩 웃어 보였다.

"엄마가요?"

"응."

 의외네요. 수빈이 중얼거리자 연준이 큭큭거렸다. 그치? 나도 이사님이 바래다 주신다고 하니까 엄청 신기해. 수빈은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가 연준을 데려다 주시기로 한 거면 연준의 출국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가방을 메던 수빈은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형. 그럼 엄마 오시기 전까지만 저랑 놀아 주세요. 연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학교 안 가? 하루 정돈 빠질 수도 있죠. 저 진짜 괜찮아요. 연준이 인상을 팍 쓰며 허리에 손을 짚었다. 허튼 소리 하지 말고 학교 가라며 손수 가방을 챙겨 어깨에 매 줬다. 연준의 반응에 섭섭하다는 듯 팔자 눈썹을 하며 괜히 평소에 연준이 하는 것처럼 말꼬리를 늘여 보았다. 혀엉. 저랑 하루만 놀아 주세요.

 무슨 소리야? 너 학교 가야지. 나도 짐 마저 챙겨야 하구. 얼른 가! 수빈은 연준에 의해 하는 수 없이 문 밖으로 밀려났다. 수빈은 집 대문에 몸을 기댔다. 세 시간 정도 아파트 단지 앞 정자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다시 들어가면 연준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여름이라 그런가 날씨가 더웠다. 몇 시간이나 앉아 있었을까. 수빈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빈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수빈아! 무슨 일 있니? 왜 학교를 안 와. 아 선생님. 제가 아파요. 저 병원 좀 갔다올게요. 대답도 듣지 않고 끊은 뒤, 다시 집 문을 열었다.

  형!

 돌돌거리며 움직이던 캐리어가 멈췄다. 연준이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놀란 눈망울이 수빈을 울컥하게 했다. 수빈아. 학교 안 갔어? 코끝이 붉어진다. 수빈의 눈시울에 눈물이 차올랐고, 숨이 가빠져 왔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연준이 형, 형. 가지 마요."

 저랑 같이 있어요. 부모님이 눈치 주신 거 다 알아요. 그래도 가지 말고 저랑 살아요. 좋아해요. 처음으로 필터링 없이 토해낸 진심의 온도가 타 버릴 듯 붉고 뜨겁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열여덟의 최수빈은 무력했고, 열아홉의 최수빈 또한 무력하긴 매한가지였다. 가면 형 죽는단 말예요. 죄책감과 절박함에서 비롯된 눈물이 쉴새없이 떨어졌다.

  "수빈아."

  "……."

  "나한텐 지금 아무도 없어. 이사님이 가라고 하시면 난 가야 돼. 너도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나라고 가고 싶겠어?"

 잔뜩 붉어진 연준의 눈시울에 눈물이 확 고인다. 제가 있잖아요. 왜 굳이 가려고 해요. 제가 형 많이 좋아해요. 수빈이 엉엉 울었다. 형, 그니까 저랑 다시 같이 살아요. 형 가서 못 돌아오면 어떡해요. 연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빈을 빤히 쳐다봤다. 제가 부모님 잘 설득해 볼게요. 그러니까 가지 마요, 형.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2020 SJ GENRE COLLAB  by. @BISOU_sj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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