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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물

w. 고담

•본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합니다.


“보아하니 짐의 머리를 베기 위해 온 듯한데, 이 머리를 감히 대신할 자는 있느냐?”
그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조선 역대 가장 강인한 왕이자 가장 난폭한 왕 최수빈. 나의 성군.

수빈은 본래 왕좌에 앉을 권한이 없었다. 수빈의 아버지였던 선대 왕은 수많은 백성과 신하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그야말로 성군이었다. 하지만 존경을 받음과 동시에 해가 들지 않는 처마 밑엔 시기와 질투 따위의 어둡고 음습한 것들이 싹을 틔웠다. 몇몇 대신들에 철저하게 계획된 역모는 궁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가장 먼저 목을 베야 할 왕, 수빈의 아버지는 서슬 퍼런 칼날에 힘없이 성군의 빛을 잃어야만 했다. 그다음은 다음 왕위를 이을 수빈의 큰형님이었던 세자, 그다음은 수빈의 어머니 혹은 또 다른 형제자매들. 수빈은 처참히 죽어가는 제 부모와 형제자매들의 피를 밟고 대신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만 했다. 역모를 꾸민 대신들은 어린 수빈을 왕좌에 앉혔다. 그 무거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던 수빈이 왕위를 계승해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치밀하고도 안일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수빈은 제 부모와 형제들의 피를 보며 복수라는 것을 머리로 알기도 전에 몸속 깊은 곳에 그 차고 뜨거운 것을 키워냈다. 왕위에 오른 수빈은 대신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역모에 가담한 자들의 목을 베었다. 일부 신하들의 반대가 있다면 그자들의 목까지 직접 베어냈다. 그들의 가족까지 모조리. 수빈은 그렇게 어린 폭군이 되었다. 애초에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던 수빈은 나랏일에 큰 뜻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수빈은 전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어수선한 궁의 상황에 적국의 크고 작은 공격들이 있었지만 멀리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뛰어난 수빈은 매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궁 안팎으로 어린 임금이 범의 이빨을 지녔다더라. 그의 손에 묻은 피가 한강을 이룬다더라. 같은 소문들이 알게 모르게 퍼져있었다. 범의 이빨을 가졌다는 어린 왕은 수많은 전쟁을 승전하며 자랐지만 제 아버지처럼 성군이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범이었다. 꼭두각시로나 쓰다가 버릴 거였던 수빈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남겨진 신하들은 새로운 왕을 찾았다. 조선땅을 넘보고 있는 적국이 쳐들어와 혼란스러울 때를 노려 수빈의 목을 베어내자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목을 가져올 자는 신분조차 불분명한 자여야 하며 언제 죽어도 놀라울 게 없는 자여야 했다. 그렇게 연준의 손에는 날이 선 칼이 쥐어졌다.

연준은 제 부모의 얼굴조차 모른 채 길을 떠돌다 칼을 잡는 이에게 거두어져 검술을 배웠다.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이가 죽고 나선 할 줄 아는 게 남의 목을 베는 것뿐이었으니 그 짓을 하며 살아갔다. 그 대상이 고작해야 행실 고약한 양반네 대감 정도였으나 이번엔 달랐다. 범을 잡아야 한다니. 그것도 아주 사나운 범을. 눈치가 빠른 연준은 알고 있었다. 이번 일에 실패하던 성공하던 자신은 죽는다는 것을. 어차피 숨이 질기게도 붙어 있어 살아오던 삶이었기에 이 일을 마지막으로 저승길에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연준은 범의 머리를 가져오겠노라고 약조했다. 대신들에게 받아낸 날짜는, 어쩌면 범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는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밤이 깊어 어두운 새벽이 되어서야 연준은 길을 나섰다. 제 칼날과도 같이 푸른 달빛만이 연준의 앞길을 비춰주었다. 소리 없이 궁에 도착하기 전, 곧 적국의 침입이 있을 수 있다며 며칠째 잠들지 않고 뜰에서 달을 보고 있을 것이니 어수선해지는 틈을 노려 목을 가져오라 명했다.
“오늘이 고비라 하였다. 범의 말은 틀린 적이 없으니 필시 나라가 뒤집어질 것이야.”
연준은 궁 안에 몸을 감춘 채 수빈을 주시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전장에 나가려는 듯이 곤룡포가 아닌 용복을 입은 채였다. 범은 왕이 아닌 장군이었던가.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할 때 연준은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서서 달을 보는 수빈의 뒤로 소리 없이 다가간 연준은 칼끝을 겨누었다. 범이라더니, 제 목을 가지러 온 자가 바로 뒤에 있는지도 모르는구나. 칼끝이 수빈의 목에 가까워지던 찰나였다. 궁이 순식간에 시끌시끌해졌다.
둥- 둥- 둥-
적국의 침입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으나 연준은 범의 목을 베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 순간, 칼날을 타고 낮은 음성이 흘러왔다.
“보아하니 짐의 머리를 베기 위해 온 듯 한데, 이 머리를 감히 대신할 자는 있느냐?”
그 새벽안개와도 같은 목소리에 연준의 칼날에 망설임이 깃들었다. 이 칼을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면 모든 게 끝나는데. 연준이 망설임을 거두는 것보다 수빈의 검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손아귀를 벗어난 검에 아, 결국 범에게 물려 죽는구나. 라고 체념한 연준은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당장에라도 제 목을 칠 것같이 칼을 고쳐잡은 수빈은 저 멀리 궁 바깥쪽을 지그시 바라봤다. 수빈은 칼끝을 거두고 말했다.
“내 너에게 제안을 하겠다. 나를 성군이라 모시겠다 약조하면 내 너를 살려주마.”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연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처음 마주하는 범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자비나 온정이라곤 없는 얼굴로 자비를 베풀겠노라고 말하는 수빈에 연준은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절할 권한도 없었다. 가만히 입술을 깨물고 있는 연준에 수빈은 차갑게 말했다.
“너에게 여부가 있더냐? 일어나거라. 나라가 뒤집히기 전에 싹을 뜯어내야 하니.”
수빈은 제대로 군사훈련조차 받은 적 없는 연준을 끌고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였다. 아, 대신 칼에 맞을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연준은 살아있는 방패로나 쓰이겠거니 하곤 수빈을 따랐다. 하지만 연준의 예상과는 다르게 연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자비하게 적군을 베어내는 수빈의 모습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포로처럼 잡힌 연준에 역모를 계획한 대신들은 전장에서조차 수빈을 처리하기 위해 연준을 살려둘 것인지 아니면 역모를 들킬 위험을 없애기 위해 죽일 것인지 고민했다. 대신들의 결론은 뜻밖에 연준을 살려두자는 거였다. 수빈의 곁에 두었다가 신뢰를 얻으면 그때 목을 가져오라 명할 생각으로 말이다. 슬프게도 연준은 그 지독한 계획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작은 전쟁은 수빈이 이끈 대군에 의해 승리를 거두었고, 조선은 차츰 안정을 되찾아 갔다. 하지만 범은 여전히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쟁을 겪으며 본 수빈은 참혹하고 또 참혹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함부로 덤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짐승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저보다 크고 강한 짐승에게 꼬리를 내리는 본능. 

연준은 강제로 궁에서 지내게 되었다. 옥에라도 가두면 차라리 낫겠다 싶을 정도로 연준은 호사 아닌 호사를 누렸다. 오두막 같은 집이 아닌 아늑한 방과 고운 이불 등 평생 넘볼 수 없던 것들에 연준은 적응할 수 없었다. 신원조차 불분명한 자가 궁에 자리하고 있으니 누구 하나라도 반발을 할 수 있었으나 범의 말을 누가 거역하랴. 더구나 수빈을 노리는 대신들의 뜻에 따라 연준은 궁 안에서 죽은 듯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연준은 궁에서 지내는 동안 대신들의 말에 따라 수빈을 살폈다. 난폭하다던 수빈은 생각보다 정적인 사람이었다. 강한 짐승은 조용히 적을 노린다고, 수빈은 밖에서 듣던 소문처럼 미쳐 날뛰거나 궁을 뒤엎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칼날만큼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눈에 거슬리면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궁인들은 그런 수빈을 두려워하면서도 증오했다. 연준 또한 수빈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범이라느니, 폭군이라느니 하는 감히 임금에게 칭할 수 없는 칭호들이 이해가 되었다. 오죽하면 나 같은 무지렁이에게 목을 베어내라 했을까. 하지만 그들의 겁박과도 같은 약조를 위해 연준은 수빈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연준은 수빈을 살피는 거 외에 할 일이 없었다. 궁인들의 시선을 피해 궁 안의 꽃을 보거나 하는 게 다였다. 수빈은 연준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꽃을 보고 있는 연준에게 조용히 다가와 흘려보듯이 스쳐 지나가는 게 다였다. 연준이 여느 때와 같이 꽃을 보고 있을 때였다. 탐스러운 꽃잎을 보며 숨 막히기만 한 궁에서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외면하던 중 등 뒤로 차갑고 무거운 음성이 떨어졌다.
“지천으로 널린 것이거늘, 뭐 그리 어여쁘다고 매일 들여다보느냐.”
연준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되었으니 묻는 말에나 답하여라.”
연준은 자기도 모르게 떨려오는 손을 꾹 쥐고 바짝 마른 입을 열었다.
“그…그것이…조그마한 게 유독 어여뻐 보여 한 번씩 들여다보고 있었사옵니다….”
연준은 궁에서의 생활이 힘들어 도피처로 삼았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의 명을 고깝게 여겼다며 칼을 들이밀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연준의 말에 수빈은 알았다. 라는 짧은 말과 함께 돌아섰다. 수빈이 점점 멀어져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뻣뻣하게 서 있던 연준은 수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범의 피라도 흐르는 건지 그 앞에 서면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저 서슬 퍼런 자의 머리를 벨 수 있을까.

궁에서 지내며 대신들이 바란 수빈의 신뢰는커녕 마주치는 일조차 흔치 않던 연준은 슬슬 이 생활에 지쳐갔다. 자신을 죽이려 한 자를 굳이 곁에 둔 수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차가운 얼굴로 말을 붙여 오는 거 외엔 달리 하는 게 없었다. 지겨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연준이 꽃이 난 돌담을 따라 걷고 있었다. 저 멀리 무언가 꼬물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연준은 허리춤에 찬 칼을 살짝 쥐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작은 움직임은 다름 아닌 조그맣고 하얀 강아지였다. 연준은 긴장이 풀려 칼을 놓고 작게 웃었다. 쭈그려 앉아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고 강아지를 살폈다. 어째 꼬질한 게 궁에서 키우는 아이는 아닌 듯했다.
“어찌 이 넓은 궁 안까지 들어왔느냐?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응?”
연준의 쓰다듬는 손길이 좋은지 벌렁 드러누워 꼬리를 흔들었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연준은 참으로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이 아일 쫓아내자니 갈 곳 없어 보여 가엽고, 함부로 키우자니 수빈을 생각하면 당치도 않을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연준은 궁 안에서 몰래 숨겨두고 돌봐주기로 했다. 조금 더 커서 제 삶을 살 수 있게 되면 그땐 궁 밖으로 보낼 수 있겠지.
“아가, 나랑 같이 살자. 대신 얌전히 있어야 한다?”
연준은 작은 몸집을 번쩍 들어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자신을 찾아오는 이가 없으니 차라리 이 안에만 있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연준은 강아지에게 굳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름을 얻으면 자신처럼 처절한 삶을 살게 될까 봐. 궁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연준은 강아지를 애지중지하며 돌보았다. 이 안에서 유일하게 검은 속내 없이 자신을 봐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였다.
“아가, 네가 볼 땐 전하께서 무슨 이유로 날 이곳에 두시는 것 같니?”
“내게 특별히 무언갈 해주시거나 아끼는 것 같지도 않은데…하긴, 하룻강아지가 범의 속을 어찌 알겠느냐.”
연준은 제 처지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길에서 떠돌다 누군가에게 거두어지는 게 너나 나나 팔자가 기구하긴 매한가지로구나. 네가 부디 나처럼 거두어 준 이를 원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방에만 있어 답답할 강아지를 위해 연준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꽃을 보던 곳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에 한껏 신이 나 뛰노는 걸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났다. 낮게 앉아 손장난을 치며 노는 연준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수빈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연준과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연준은 일어나 선 채로 굳어버렸다. 그 와중에도 눈치 없는 녀석은 수빈의 발치에 쪼르르 달려가 재롱을 피웠다. 그 순간 수빈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 저 미세한 움직임 한 번에 끌려나가 다신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몇이었던가. 연준은 사색이 되어 재빨리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처음으로 수빈에게 반항의 기색을 보인 연준은 옅게 떨며 작은 털 뭉치를 꼭 껴안은 채 수빈의 눈치를 살폈다.
“…무엇이냐.”
“도, 동네를 떠돌던 강아지온데…갈 곳이 없어 보였습니다…”
“…”
수빈은 연준의 품에 안겨 속없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연준은 한껏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불쌍한 생명이니…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심이…”
발발 떨며 빌다시피 하는 연준에 수빈은 작게 한숨을 쉬곤 돌아섰다.
“성가시게 이런 주먹만 한 것까지 썰어버릴 생각은 없다.”
“예…?”
“허나, 내 눈에만 안 띄게 하거라.”
“아…예, 전하…”
예상외로 조용히 넘어간 수빈에 연준은 의아했다. 그렇게 무자비한 범이 자비를 베풀다니. 그래도 잘 넘어가서 다행이라 여기며 놀란 가슴을 쓸었다.

연준을 가만히 두고만 보던 대신들이 수빈 몰래 연준의 거처를 찾았다. 무언가 알아냈느냐는 말에 연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느냐는 물음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대신들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너를 어여삐 여겨 살려둔 것이 아니다. 우린 새 조선을 열 성군을 위해 널 살려둔 것이야.”
“…”
“너를 앞세워 새로운 성군을 앉힐 것이다.”
“예…?”
연준이 고개를 치켜들자 호롱불이 작게 일렁였다.
“더는 궁인들이 죽어나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다. 하루라도 빨리 날을 잡아 범을 끌어내리고 새 조선을 세울 것이다.”
“누가 왕이 될지,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고 하지 말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은 범의 머리를 베는 것뿐이다.”
“날을 잡는 대로 일러줄 터이니, 얌전히 기다리거라.”
“…예.”
대신들이 빠져나간 방에 홀로 앉은 연준은 생각에 잠겼다. 문득 의문이 든 적이 있다. 내가 어째서 저자의 숨을 끊어야 하는가. 이 일을 하며 단 한 번도 의구심을 품었던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편치 못하는 것일까. 연준은 제 검을 뽑아 칼날을 매만졌다. 이 칼에 묻힌 피가 얼마나 되던가.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숨통을 빼앗겨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연준은 복잡한 머릿속에 쉬이 잠들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혼란스러움에 연준은 며칠 동안 깊은 고민에 잠겨 허우적댔다. 그런 연준이 유일하게 웃는 순간은 작은 강아지와 꽃이 핀 화단 앞에서 놀 때뿐이었다. 조그만 몸집으로 재롱은 어찌나 피워대는지 연신 아이처럼 웃으며 장난을 치던 연준은 무심코 돌린 시선 끝에 수빈이 걸린 것을 보고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수빈은 다가와 말을 걸지도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허나, 내 눈에만 안 띄게 하거라.’ 나름 조심한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눈치를 살피며 바깥으로 나온 날에 수빈의 눈에 띄고 말았다. 연준은 필사적으로 수빈과 눈을 맞추지 않으며 표정을 살폈다. 수빈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웃음이 번진 얼굴을 본 순간 궁 안의 시간이 멈추어 살랑이던 바람마저 멎은 듯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빈의 웃음에 연준은 시선을 거둘 수도, 따라 웃어줄 수도 없었다. 멎은 줄 알았던 바람은 연준의 가슴 안에 불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연준은 종종 무겁게 내려앉은 수빈의 얼굴 위로 짧게 스쳐 간 웃음을 겹쳐 보곤 했다. 옅은 웃음임에도 오목히도 패인 보조개가 그 사나운 범을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보이게 했다.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멀쩡한 호위무사를 두고 연준을 곁에 두어 마을에 행차했던 날, 제게 머리를 조아리는 백성을 보고도 무심한 얼굴로 삐딱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조아림은 존경이 아닌 두려움이었겠지. 그 안온한 얼굴을 보이면 적어도 두려움을 사진 않을 터인데.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일렁였다. 그리고 조금은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뿌리조차 없는 자신보다도 더.

수빈의 웃는 낯을 본 연준은 왜인지 수빈이 전처럼 심히 두렵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여느 때처럼 벌벌 떨며 말조차 하기 힘들던 때와는 달랐다. 하지만 여전히 범의 앞에 서면 몸을 편히 가눌 수 없었다. 수빈은 명했던 것과는 달리 연준의 강아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강아지와 놀고 있는 연준에게 다가가 안부인사라기엔 건조한 말을 건네곤 했다.
“말도 못하는 짐승이 뭐 그리 어여뻐서 종일 품에 끼고 사느냐.”
“…말을 못하니 더 애틋할 때가 있다 생각하옵니다.”
연준의 말에 수빈은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연준이 본 수빈의 두 번째 웃음이다,
“작게나마 종종 웃어주십시오.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연준은 자기도 모르게 뱉은 말에 흠칫 놀라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 송구하옵니다…!소인이 감히…”
“…됐다, 다 쓸데없는 짓이다.”
누가 봤다면 기겁을 했을 실언이었음에도 수빈은 가만히 돌아섰다. 연준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수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본래 잘 웃지 않던 연준은 화단에서 꽃을 보거나 강아지와 놀며 웃음이 늘었다. 겨울이라 꽃도 많지 않고 날이 차가웠지만 화려한 방에 앉아 있으면 무시무시한 짐승의 아가리에 먹힌 듯한 기분이 들어 밖에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유독 날이 춥던 날 연준은 동백나무를 보며 그 꽃잎을 매만져보았다. 날이 이리도 혹독한데 넌 참으로 강인하구나. 자기도 궁금하다는 듯 발 주변을 돌며 보채는 강아지를 번쩍 안아 올렸다.
“너도 꽃이 궁금하니?”
제 얼굴을 핥는 간질거리는 느낌에 연준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넌 무엇이 그리 즐거워 늘 웃고 있느냐?”
언제 온 건지 제 뒤에서 말을 거는 수빈에 연준은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찬바람에 코끝이 빨게져서는 어린애처럼 웃던 연준이 늘 제 앞에서 보이던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겁을 집어먹은 얼굴을 보이니 수빈은 피식- 웃음이 샜다.
“개도 떨지 않거늘, 주인이 그리 떨어서야 쓰나. 웃고 있었으면 계속 웃거라.”
“제가 어찌 전하 앞에서…”
“내겐 웃어 보이라더니, 내 앞에선 입꼬리 한 번 올리기 싫다는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그게…”
여유로운 수빈과 달리 안절부절 못하는 연준에 수빈은 소리 없이 웃고는 바람결에 헝클어진 연준의 머리로 슬쩍 손을 뻗었다. 손이 다가오자 움찔 몸을 떠는 연준에 수빈은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손을 거두고 돌아섰다.

나름 평온을 유지하던 궁 안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수빈이 단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신하도 아닌 어린 소년을 해하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소년이 누구라 칭하지 않았다. 뜬소문이라 여기고 싶었으나 근정전 앞 돌 바닥에는 채 마르지 못한 핏자국이 선명했다. 연준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아주 어릴 적 길을 떠돌던 자신에게 칼을 꽂으려는 자의 손을 죽일 각오로 물어뜯었다. 아마 그날이었을 거다. 피와 눈물로 더럽혀진 연준이 제 스승을 만난 게. 그때 느꼈던 공포, 살의 등이 남긴 얼룩이 채 지워지지 않은 채 연준의 머릿속 한구석을 차지했다. 아주 미약하지만 수빈에게 마음을 열던 연준은 다시금 수빈에 대한 두려움에 젖어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소년과 겹쳐지는 제 어린 날을 떠올리며 화단에 쭈그려 앉아 시들어가는 꽃을 내려다보았다. 붉었던 꽃잎은 색이 탁해져 있었다. 마치 굳어가는 핏자국을 보는 듯한 느낌에 연준은 눈을 질끈 감으며 조심스레 그 위를 손으로 덮었다.
“무얼 하고 있느냐.”
제 뒤에서 들려오는 수빈의 목소리에 연준은 눈에 띄게 몸을 떨며 그 앞에 섰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떨려오는 몸에 손을 쥐락펴락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점철된 마음은 고스란히 수빈에게 전해졌다.
“…새삼스레 무엇이 두려워 그리도 떠느냐.”
“…”
“그래, 너도 그들과 다르지 않겠지.”
수빈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곤 뒷모습을 보였다. 연준은 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분명 한없이 두려운데, 어찌 전하의 눈엔 슬픔이 담겨 있나이까.

연준은 며칠 동안 수빈의 꿈을 꾸었다. 전장에서 잔혹하게 적군을 공격하는 모습, 옅게 웃는 모습, 그리고 외롭고 슬퍼 보이는 모습. 그것들이 소용돌이처럼 연준의 꿈속을 헤집어놓았다. 연준은 꿈속의 수빈에게 두려움, 설렘, 연민을 느꼈다. 슬픈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다 미소를 띤 채 돌아서는 수빈을 본 연준은 꿈에서 깨어났다. 뒤숭숭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호롱불을 켰다. 가만히 앉아 달빛 드는 창을 보던 연준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시오…?”
“문 열거라.”
요새 통 잠잠하다 싶던 대신들의 목소리였다. 연준은 입안 여린 살을 씹으며 느릿하게 문을 열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선 안 된다. 알았느냐?”
“예…”
대신은 품속에 꽁꽁 감춰온 작은 종이를 건넸다. 연준은 그것을 받아 펼쳐보았다.
‘섣달 초닷새 축시(丑時)’
연준은 입안으로 날짜와 시간을 굴렸다. 앞으로 나흘. 연준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사라질 날짜였다.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범을 잡으려는 짐승들의 깊고 검은 아가리가 벌어지며 칼날보다도 날카로운 이가 드러나고 있었다.
“절대 그때를 놓쳐선 아니 된다. 궁의 문을 모조리 봉쇄하고 범을 편전(便殿)으로 몰 것이니 넌 그곳에서 범을 잡으면 되느니라.”
“…”
“명심하거라.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아니 된다. 너의 손에 새로운 성군이, 조선이 달린 것이야.”
연준은 무거운 고개를 주억거렸다. 머릿속에 꿈속의 수빈이 가득 차서 쏟아질까 고갯짓하기가 편치 않았다. 대신들은 그날까지 입을 조심하라며 방을 떠났다. 연준은 멍하니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를 바라보았다. 전하, 전하께선 이것을 보고 무슨 표정을 지으시렵니까. 웃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부디 소인이 두려움에 빠져 덜덜 떨게 하십시오. 범의 눈과 이빨을 드러내십시오.

나흘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연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운 칼을 쥐었다. 궁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방 너머로 불꽃들이 보이면 범을 잡으러 가야 했다. 연준은 눈을 감고 앉아 바깥의 소리에 집중했다. 곧 궁의 모든 문을 봉쇄하라는 명이 들려오고 역모를 위해 꾸려진 군대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뜬 눈 사이로 붉디붉은 불빛이 보였다. 연준은 눈을 질끈 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빈을 처음 본 그날처럼 검은 천을 눈 밑에 두르고 편전(便殿)으로 향했다. 푸른 달빛을 따라서.

연준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향했다. 횃불 하나만이 수빈의 왕좌를 밝히고 있었다. 수빈은 궁지에 몰린 범이 아니라 굴속에서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삐딱하게 왕좌에 앉아 턱을 괴고 제게 다가오는 연준을 두고 보았다. 연준은 왕좌 앞에 서 서슬 퍼런 칼끝을 들이밀었다.
“…무엇하느냐, 어서 베지 않고.”
연준은 자꾸만 떨려오려는 손에 칼을 부러뜨릴 듯이 세게 쥐었다.
“내 너를 친히 기다려 주었는데, 어찌 망설이느냐.”
연준은 차마 칼끝을 더 들이밀 수 없었다. 범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범이 아닌 인간 최수빈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내 백성은 너였는데.”
수빈은 처음 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성군은 내가 아니었구나.”
수빈의 말에 연준은 울음이 새어나올까 입술이 찢겨 피가 나도록 짓씹었다. 아아, 차라리 처음 본 그날처럼 제 칼을 쳐내고 내 목을 베었으면, 아니면 살려달라 비굴하게 빌었으면. 어찌 저에게 모질고 지독한 선택만을 하게 하십니까. 연준은 눈을 한 번 꾹 감았다가 뜨며 눈을 굴려 주변을 훑어봤다. 온갖 책들과 장식품 등이 찢어지고 깨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산산조각이 난 도자기 조각 사이로 투박하게 꺾여 시들어 가고 있는 꽃송이들을 보았다. 언젠가 수빈에게 어여쁘다고 했던 흔하디흔한 들꽃이었다. 연준의 눈을 타고 흐른 눈물이 검은 천을 적셨다. 그럼에도 수빈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연준은 소리를 죽여 울다 결국 칼을 떨어트렸다. 차가운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준은 떨어진 칼 대신 유일하게 빛을 내는 횃불을 집어 들었다. 연준은 잔뜩 터진 입술을 깨물었다가 피 맛이 밴 혀로 칼날과도 같은 말을 뱉었다. 수빈이 자신을 증오할 수 있도록.
“저의 성군은 전하이십니다. 허나, 제가 모신 성군은 이곳에 없습니다.”
연준은 거세게 타오르는 횃불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금세 불길이 치솟았고, 연준은 화마를 뒤로하고 편전(便殿)을 빠져나왔다. 홀로 왕좌에 남은 수빈은 불길 너머로 멀어지는 연준의 뒷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한순간이라도 너의 성군이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섣달 초닷새 축시(丑時). 불길이 조선의 범을 집어삼켰다.

수빈을 몰아내고 새로 즉위한 왕은 즉시 궁을 복원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이 역모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 연준을 궁으로 불러내었다. 연준은 말끔함을 되찾은 편전(便殿)에 들어서자 구역질이 나려 했다. 텅 비어 어두운 굴 같던 곳에 홀로 앉아 죽음을 맞이했을 수빈의 자리에 앉은 새로운 왕, 그곳을 가득 채우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까지.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역겨움에 원하는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도 궁에서 나와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쓰린 속에 비틀거리며 궁을 빠져나가던 연준은 인적 드문 담벼락 근처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보시오.”
“나 말이오?”
“그쪽이 최연준이십니까?”
“예, 맞다만…”
“여기 이거…”
갓을 눌러쓴 사내가 고개를 들어 서신으로 보이는 종이를 건넸다. 연준은 사내의 얼굴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주 똑같진 않았지만, 그는 수빈과 많이 닮아있었다. 놀란 얼굴의 연준에게 사내는 자신을 소개했다. 본래 후궁의 외아들이었지만 대신들의 모함에 자격을 잃은 어머니를 따라 죽을 목숨이었던 것을 수빈이 수를 써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궁 안에서는 수빈이 자신을 죽였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조선에 남은 유일한 수빈의 혈육인 사내는 서신을 받아든 연준에게 말했다.
“…형님의 부탁이자 명이었습니다.”
“부디 이 궁에서의 삶과 자신을 잊고 살아가라 하셨습니다.”
연준은 자신에게 부디 몸 조심히 지내라며 애써 웃어 보이는 사내의 얼굴이 수빈의 웃음과 너무나 닮아서 사내가 떠난 후에도 한참을 담벼락에 기대어 서신을 쥐고 울음을 토했다.

새로운 왕은 공을 세웠다며 치켜세우더니 뭐가 그리 불안한지 연준을 몇 번이나 더 궁으로 불러내었다. 견디기 어려울 만큼 역겨웠지만 어쩔 수 없이 궁으로 향한 연준은 불태우기 위해 쌓아둔 책에서 익숙한 글씨체를 발견하곤 그것을 몰래 가지고 나왔다. 연준은 간단한 글 이외는 읽거나 쓸 줄을 몰랐다. 연준에게 무심했던 수빈이었지만 언젠가 연준을 불러 글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을 왜 가르쳐 주느냐는 물음에 수빈은 그저 언젠가 쓰일 곳이 있을 터이니 조용히 배우기나 하거라. 라며 글을 가르쳤다. 그 덕에 연준은 수빈이 직접 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책에는 수빈이 가족들을 잃고 왕위에 오른 시점부터 죽기 직전까지의 이야기가 일기처럼 쓰여있었다. 범에게 물려 죽었다는 이들은 모두 비리를 가진 자, 나라에 해가 될 뜻을 품은 자, 무고한 타인을 해한 자뿐이었다. 책에는 범의 이빨을 가진, 손에 묻은 피가 한강을 이룬다던 폭군이 아닌 조선의 왕 최수빈이 있을 뿐이었다. 수빈의 삶은 참으로 고독하고, 서럽고, 참혹했다. 불쌍하고 불쌍한 전하. 그리 천하를 호령하였지만 제 목숨 하나 지키지 못한 가여운 전하. 가장 강인했지만 여리디 여렸던 나의 전하. 연준은 그 날 이후로 다시는 궁에 발걸음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궁에 다녀온 날 연준은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 마련한 집으로 돌아가 이제는 제 몸만큼 커진 흰 개를 쓰다듬었다. 연준에게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녀석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우리 전하는 좋은 곳으로 모셔다 드렸느냐?”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제 손을 핥는 것에 연준은 그 커다란 궁에서 오랜 시간 불에 타 재가 될 때까지 고독하게,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수빈이 떠올라 무너지듯 울었다.

‘내 너를 처음 만난 날, 너의 눈을 보고 생각했다. 밤하늘에 가린 두 별을 보고 죽는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다고. 허나, 너를 좀 더 곁에 두고 지켜보고 싶었다. 나와 달리 작은 꽃 한 송이, 작은 강아지 한 마리까지 귀하게 여기는 널 보며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이 희고 고울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비록 너는 추악한 것들에 끌려 내 목을 베어내겠지. 그래도 너의 두 눈을 보고 눈을 감는다면 내 나라, 조선에 미련은 없을 것 같구나. 이 서신이 연서라면 연서이겠지. 헌데, 차마 연모했다는 말은 하기가 겁이 나는구나. 너에게 난 두려운 범이었을 테니. 그래도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날 가엽게 여긴다면 종종 하늘을 보며 한 번쯤 웃어주겠느냐. 내 너의 웃음을 참으로 연모했다.’

연준은 하늘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곳은 따뜻하십니까? 외롭지는 않으십니까? 더 오랫동안 웃는 낯을 보여 드리고 싶은데, 햇빛이 너무 밝아서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소인은 더이상 전하가 가엽지 않습니다. 전하를 연모하기에 하늘에 연서를 써 봅니다. 부디 그곳에선 마음 편히 웃으시길 바랍니다. 다음 생에는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자고 감히 약조를 해보렵니다. 세상은 여전히 전하를 폭군이라 하지만 전하만이 소인의 성군이십니다. 

©2020 SJ GENRE COLLAB  by. @BISOU_sj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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