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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코미디

w. 청춘연가


 나 최연준. 26세 꽃다운 나이에 무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몇 개월에 걸친 이사를 마친 후 부푼 마음을 가득 끌어안은 채 입주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 우리 윗집에, 미친놈이 산다.

 

 

 

 

 


  윗집에 미친놈이 산다

   W . 청춘연가

 

 

 

 

 


 마냥 기분이 좋았던 이사 첫 날.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온 집은 연준을 실망시키지 않은 듯 했다. 깔끔하게 인테리어 된 디자인 하며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집 내부 구조까지. 연준은 새삼스레 천천히 제 집을 둘러보다가, 괜히 감격스러운 듯 주책맞게 우는 시늉을 했다. 그것도 잠시, 콧노래를 부르며 못다 한 집 정리를 마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제 집을 누군가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누구지 싶어 밖을 살짝 내다보려 해도 인터폰 화면에는 까맣고 동그란 머리만 가득 들어차 있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누구야..."

 

 잠시 머뭇거리던 연준은 무슨 문제가 생겼거나 택배가 왔을 수도 있으니 우선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건 관리자도, 택배원도 아닌 근처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안경 낀 남학생이었다. 왜 여기...

 

 "누구세요...?"

 "윗집에서 내려왔는데요."

 

 최수빈. 명찰에 써있는 이름이었다. 말끔하게 생긴 윗집 이웃. 그런데 우리 집까진 무슨 일로 온 거지? 하는 생각에 아무런 대답도 않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수빈은 딱히 눈을 피하지도, 그렇다고 이렇다 할 대답도 없이 덩달아 연준을 응시했다. 당황스러움에 문을 슬쩍 닫으려 하자 그건 또 막아섰다. 다급하게 문을 붙잡은 손. 다시 수빈을 올려다 보는 연준이었다.

 

 "형. 이름이 뭐에요?"

 "저기요. 뭐 언제 봤다고 형이라고,"

 "저는 최수빈이라고 하는데. 아 명찰 이미 보셨으려나?"

 

 문을 열고부터 쭉 무표정 상태를 유지하던 수빈은 그새 빙글빙글 웃으며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해왔다. 연준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고 다시 문을 닫으려 했지만, 수빈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 형, 형 잠깐만요."

 "무슨,"

 "저 방금 형한테 첫눈에 반했단 말이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 제가 지금 뭔 말을 들은 건가 싶어 멍 때리는 사이 수빈은 문을 살짝 열었다.

 

 "들어가도 돼요?"

 

 계속 거절하기도 뭐한 상황이라 일단 연준은 수빈을 집 안으로 들이기로 했다. 뒤를 한 번 돌아보니 집 정리를 거의 다 하긴 했지만, 아직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들긴 했다. 그래도 뭐 어떡해. 아니 근데 이 고딩, 어째서 우리 집으로 내려와 있는 거지? 연준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자각하곤 제 옆에 앉아있는 수빈을 홱 돌아보며 물었다.

 

 "최수빈 씨."

 "우와잉 제 이름 불러주신 거에요? 그냥 편하게 수빈아~ 하셔도 되는데!"

 "아니 그게 무슨... 됐고, 우리 집에는 왜 온 거에요?"

 "진짜 반말 쓰셔도 되는데..."

 "왜 왔냐니까."

 

 질문에 답은 안하고 시무룩해지는 수빈 때문에 결국 반 포기하고 말을 놓은 연준이었다. 수빈은 또 좋다고 헤실거리며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A to Z 주르륵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 연준이 집 보러 왔을 때 우연히 보게 되었고 처음에는 자세히 못봐서 그냥 아랫집에 누가 이사 오시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종일 들리던 이사차 소리 때문에 연준이 이사 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새 이웃에 대한 설렘을 가득 안고 초인종을 눌렀더니 말도 안되게 -이 대목에서 연준은 도대체 왜 말이 안되는 거냐며 굳이 한 번 되짚었다가 수빈에게 형이 좋은 이유 100가지 이유 연설을 들을 뻔 했단다.- 연준이 있었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정말 그게 다야?"

 "네, 새 이웃이랑 친하게 지내려구... 근데 그 이웃이 이렇게 예쁜 형일 줄은 몰랐죠."

 

 뭐라는 거야... 연준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예쁘다니, 아예 안들어 본 말은 아니지만 쟤가 말하는 건 왠지 너무 본격적인 느낌이 든단 말이야. 연준이 벌떡 일어나더니 수빈을 일으켜 세웠다.

 

 "이, 이제 그만 가요."

 

 "혀엉, 왜 또 존댓말 쓰세요~"

 "... 몰라, 얼른 집 가요."

 "나 좀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곧 있음 저녁시간이고, 부모님도 기다리실 거에요."

 "그게 다에요?"

 "그럼 뭐가 더 필요해요?"

 

 연준이 당연하다는 듯 되묻자 수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불안한 느낌에 뭐라 말을 덧붙이려던 찰나, 수빈이 조금 더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 혼자 살아요."

 "..."

 "자취하는데."

 "그래도,"

 

 어서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야 했다. 제 앞에 수빈은 이제 저를 막을 이유가 없을 연준을 보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므로. 연준은 잠깐 멈칫거리다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수빈을 밀어내고선 말했다.

 

 "그, 그럼 더 안되겠네!"

 "네? 왜요?"

 "집에, 집에 너 혼자 있다는 거잖아?"

 "그런데요?"

 "집을 이렇게 오래 비우면 안되잖아."

 

 연준은 제가 말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마음에 드는 핑계를 댔다고 생각해서.

 

 "혀엉..."

 "뭐, 또 왜요."

 "사실 그거 때문에 내려온 건데..."

 "...?"

 

 수빈은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선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연준에 아니- 를 시작으로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혼자 자기 너무 무섭거든요."

 "허?"

 "생각해봐요... 아직 고등학생인데."

 "학교 때문에 자취하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아랫집 살던 형이 가끔 재워줬거든요..."

 "그래서?"

 "형도 저 재워주시면 안돼요?"

 

 연준은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보니 등 뒤에 가방도 야무지게 매고 온 것이 보였고, 괜히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에 이마를 턱 짚었다. 이거 완전 미친 놈 아니야...? 그래, 전에 살던 분이랑은 뭐 돈독한 사이였을 수도 있고 어? 친한 사이면 가끔 재워주는 거야 너무 말이 되지. 되는데 갑자기 나한테 재워달라고?

 

 "안 돼."

 "혀엉, 한 번 만요. 오늘 재워주고 괜찮으면 다음에 또 재워주면 되잖아요."

 "얘 봐라? 애초에 왜 안재워준다는 선택지는 없는건데?"

 "형이 지금 자연스럽게 반말 쓸 만큼 친해졌으니까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수빈에 연준은 아차 싶었다. 언제부터 내가 반말을 쓰고 있었지... 고개를 내저으며 연준은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우와잉 형!! 여기 좀 와 봐요, 여긴 형 방인가 봐요!"

 

 이런 미친.

 

 "뭐하는,"

 "형..."

 

 연준은 차마 말을 끝까지 이을 수가 없었다. 왜? 최수빈 손에 들린 제 고등학교 시절 스티커 사진 때문에. 하필 제일 앞에서 찍어서 잘 나오지도 않은 거... 벽에 기대 주르륵 흘러내리는 연준이었다. 수빈은 그저 귀엽다는 듯 웃을 뿐이었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듯 했다. 근데 갑자기 수빈에 스티커 사진을 제 눈 앞으로 들이밀며 말하길,

 

 "이 사람은 누구에요?"

 

 누구더라... 연준은 제 양 옆에 서 있는 남정네 둘에 대한 기억을 열심히 되짚기 시작했다. 한 명은 아마 그 당시 같은 반이었던 친구놈인 것 같고 다른 한 명은...

 

 "아 정우 선배!"

 "누구요?"

 "있어, 정우 선배라고. 나한테 고백했던 선배."

 

 수빈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분명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사귀었었어요?"

 "아니? 미쳤어? 그냥 좋은 형동생 하자고 했지."

 "남자 사이에 좋은 형동생 사이가 어디 있어요!"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몇 시간도 채 안 지났는데 고백 비슷한 말을 여러 번 씩이나 듣는 기분이란. 연준은 수빈의 말을 어느 정도 듣고 흘리며 그래그래~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수빈이 계속 아직도 연락하는 건 아니죠? 안 돼요!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꿋꿋이 이부자리를 준비했다. 그러고는 침대를 가리키면서

 

 "여기가 네 자리."

 

 다시 바닥을 가리키면서,

 

 

 

 "여기가 내 자리."

 

 그러자 수빈은 감동받은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혀엉... 진짜 제가 침대에서 자도 돼요? 라고 물어왔다. 연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거듭해서 물어왔고 연준은,

 

 "어. 그럼 적어도 바닥에서 못 자는 체질이네, 허리가 너무 아프네 하면서 침대로 기어올라 올 일은 없겠지."

 

 라고 말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연준이 깔끔하게 선을 긋자 수빈은 쩝,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둘은 방에서 나와 배달음식을 시켜 대충 배를 불리고 소파에 늘어져 쉬고 있었다. 의미 없이 TV 채널을 돌리다 별로 재밌는 것도 없어서 이런 저런 얘기나 소소하게 나누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 새 초침은 12시에 가까워 있었다.

 

 "이제 그만 자러갈까?"

 "헐 형 방금 그 말 되게 신혼 같지 않았어요?"

 "신명나게 혼나고 싶지 않으면 곱게 자러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네."

 

 연준이 망설임도 없이 틈을 차단해버려서 수빈이 입을 삐죽거리면서 혼나는데 어떻게 신이 나요... 라고 덧붙이며 연준의 뒤를 쫒아갔다. 자리에 누워있던 수빈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연준에게 말을 건넸다.

 

 "형, 바닥 너무 딱딱하지 않아요?"

 "괜찮아 가끔 바닥에서도 잘 자."

 "그래도, 무섭지는 않아요?"

 "안 무서워."

 "형,"

 "자라."

 "넵."

 "아, 내일 학교갈 때 나 깨우지 말고 그냥 준비해서 냉장고 있는 거 꺼내먹고 가."

 

 불을 끄기 전, 연준이 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듣더니 수빈은 형은 일 안 가요? 설마... 하면서 입을 벌리는데 연준이 수빈의 입을 아프지 않게 탁 치며 그런거 아니거든, 했다. 이제야 밝혀지는 연준의 직업은 작가 겸 카피라이터로, 가끔 외주 들어오면 카피라이팅 몇 개 해주고 일이 한가한 시즌에는 글을 쓴다고 한다. 연준은 내가 지금 이걸 왜 너한테 설명하고 있냐며 현타를 맞았지만 수빈은 연준에게 한 번 더 반한 듯 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그렇게 1시가 조금 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띵동-

 


 다음 날 12시. 연준이 졸린 눈을 비비며 갓 구운 토스트를 입에 쑤셔 넣는데,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또 누구... 인터폰에 비친 얼굴은 분명,

 "혀엉~"

 "너 왜 벌써 와?"

 "조퇴요?"

 

 


 참 해맑게도 말하는 수빈이었다. 그러니까, 왜 지금 이 시간에 조퇴를 했느냐고 물었다. 수빈은 다시 태연하게 형 때문에 조퇴했어요, 라고 말해왔다.

 

 "쌤한테 나 때문에 조퇴한다 했다고??"

 "설마요. 그냥 형이 조금 힘들어 한다고 했죠~ 친형인 줄 아셨을 걸요?"

 

 진짜 미쳤구나... 아이고 머리야. 연준은 뒷목을 잡으며 수빈을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근데,

 

 

 

 "저 오늘도 여기서 잘건데?"

 "누가 자게 해준대?"

 "나 술도 사왔는데."

 "그럼 그것만 먹ㄱ,"

 

 잠깐. 쟤가 왜 술을 사 와? 연준은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된 느낌이었다. 분명 고3이라고 했다. 고3이면 미성년자. 그럼 술을 살 수가... 없다. 절대 없다. 연준은 냅다 수빈의 등짝을 퍽퍽 쳤다.

 

 "그걸, 네가, 왜, 사 와!! 왜!"

 "아 형, 진정 해봐요, 진정!"

 

 너 같으면 진정이 되냐고! 연준이 소리치며 멈추지 않자 수빈은 결국 연준의 두 팔을 붙잡았다.

 

 "아무 문제 없어요 형."

 "뭐...? 덜 맞았지 네가,"

 

 손을 풀어내려는 연준에 수빈은 다급히 주머니에서 민증을 꺼내 연준의 눈 앞에 보였다.

 

 "그게 무슨..."

 "저 20살인데요."

 "근데 고3이라고..."

 "복학이요."

 

 연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저를 따라 몸을 낮추는 수빈을 노려보면서 그럼 저번에는 왜 뭐 고등학생 어쩌구 하면서 제 집에서 자고 갔냐고 하니 너무 당연스럽게 형 좋아하니까요- 라고 답했다. 말을 말자. 말을 말어.

 

 "술은 이따 저녁에 마시고, 다시 학교로 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이랑 있으려고 학교까지 빠졌단 말이에요."

 "그니까 왜 나 때문에 학교까지 빠지냐구."

 "걱정해주는 거에요?"

 "내 걱정이야. 네 부모님께선 날 뭐라고 생각하실까..."

 "우리 부모님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거에요? 대박 형 저희 결혼은,"

 "입 다물어."

 

 결국 수빈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연준 뒤를 쫒아다니며 작업하는 거 구경하고, 밥도 먹었다. 중간에 연준에게 간식을 먹인답시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놔서 간식을 먹이는 대신 욕을 먹었다고... 그 이후로는 얌전히 옆에 앉아있기만 했다. 그리고 고대하던 저녁이 드디어 찾아왔다.

 

 "형 치킨 시켰어요?"

 

 "응, 거의 도착했을걸?"

 

 때마침 벨이 울리고, 연준이 치킨을 가지러 간 사이 수빈은 잽싸게 술을 꺼내왔다. 들어오면서 테이블 위 술을 발견한 연준이 아무리 성인이라도 지금 신분이 학생인데 술은 어쩌구 하는 거 사복 입고있으니까 성인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 가져다 붙이면서 겨우 연준을 자리에 앉혔다.

 

 "마실까요."

 "쓸데없이 비장하긴."

 

 수빈은 헤헤 웃으며 잔을 채웠고, 연준은 치킨을 뜯었다. 그냥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한 잔, 두 잔. 잔을 비우는데 어째 속도가 좀 빠르게 느껴졌다.

 

 "야, 천천히 마셔 천천히."

 "빨라요?"

 "어, 마신 지 30분도 안지났는데 벌써 두 병 비웠다 임마. 머리 어지러워."

 

 네네~ 수빈은 대답하면서도 다시 잔을 채우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게 11시 쯤 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 벌써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 속도를 늦췄음에도 옆에 쌓인 병들은 열 개도 더 되는 듯 했다.

 

 "아, 나 더이상 못 마시겠어..."

 

 연준이 테이블에 늘어지며 말했다. 수빈은 아직 멀쩡한 듯, 한 잔을 더 비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연준을 부축했다. 방으로 데려가는 길, 계속 연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수빈이었다.

 

 "뭘 그렇게 빤히 보냐아,"

 "예뻐서요."

 "뭐래..."

 "형 좋아한다니까요."

 

 방 안으로 들어온 후 수빈은 연준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끝까지 덮어줬다. 그리고선 침대 옆 바닥에 앉아 연준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이마에 키스를 했다. 연준의 눈꺼풀이 점점 무겁게 깜빡, 깜빡 감기는데 수빈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형."

 "응,"

 "좋아해요."

 "알아..."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요."

 "바보."

 "제가 맨날 첫 눈에 반했다 어쨌다 그러니까 안 믿기겠지만,"

 "..."

 "진심이에요. 나도 안 믿기지만요."

 "그럼 사귀자고 하등가..."

 

 수빈은 살풋 웃더니 나중에요, 라고 하며 연준의 볼을 쓰다듬었다. 연준이 왜냐고 물어오면 그냥, 그런 게 있어요 하고 얼버무렸다. 그게 뭐야, 하며 잠에 들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준은 수빈의 그런 게 있다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왜? 수빈이 제 앞에 내민 꽃다발과 반지 때문에. 딱 봐도 이걸 준비하느라 그랬던 거지. 연준은 수빈에게 꽃다발을 거네 받으면서도 얼떨떨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백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다고...?"

 "그럼요. 이거 때문에 열심히 돈 벌었는데요."

 

 대체 언제? 항상 제 옆에 있던 수빈이 대체 시간이 어디 있던가 싶은 연준이었다.

 

 "좋아해요 형."

 "어..."

 "고백 받아 줄 거에요?"

 "너, 너 고등학교 졸업하고 오면 그 때, 그 때 다시 고백 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래도 뭔가 양심에 찔리잖아,"

 "아, 교복 입은 학생이랑 사귀는 거요?"

 

 아! 연준이 수빈의 어깨를 퍽퍽 때리며 부끄러워 했다. 수빈은 아 아파요, 하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둘의 연애 아닌 연애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수빈에게 고백을 받은 후로 수빈은 제 집보다 연준의 집에 머무는 날이 -원래도 많은 편이었지만 자고 가는 날도- 더 많아졌다. 딱히 궁금하지 않겠지만 고민하던 둘은 결국 얼마 전에 아예 집을 합치기로 결정했다. 부모님께 적당히 둘러대고 집을 빼던 날 은근슬쩍 인사도 드렸다. 자연스럽게 제 애인이라고 소개 하려다가 애, 라고 하자마자 연준이 허벅지를 꼬집는 바람에 어색하게 웃으며 아랫층 사는 형이라고 소개했다는 비하인드도 있다더라.

 


 삑- 삑- 삐비, 빅- 띠로리

 


 그렇게 몇 달이 지난 1월의 어느 날 오후, 연준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때였다. 뻐근한 목 스트레칭을 해주며 기지개를 피고 있는데, 뜬금없이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세 번 정도 틀리길래 연준은 대낮부터 누가 집을 헷갈리는 건지, 하며 혀를 차는데 이어 비밀번호가 맞다는 청명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렸다. 곧 우당탕 하며 요란하게 들어오는 수빈을 볼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너였냐? 자꾸 틀리길래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연준은 안경을 쓰고서 수빈은 보지도 않고 대충 인사를 하더니 노트북 화면만 곧 들어가기라도 할 듯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수빈은 급하게 뛰어들어올 때는 언제고 연준의 반응이 평소 같지 않자 맥이 탁 풀린 듯 터덜터덜, 괜히 노트북을 노려보며 걸어왔다.

 

 "형 또 글 써요?"

 "어어, 갑자기 쓰고싶은 게 생겨서."

 

 연준이 간만에 작가 직업에 충실하게 글을 쓰고 있었건만, 수빈은 그게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입을 삐죽 내밀더니 연준의 품을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수빈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방해였다. 물론 이 마저도 적응해버린 연준은 이제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저 한 번 쳐다보며 웃은 후에 글을 이어 쓸 뿐이었다. 형, 오늘 금요일인데. 수빈이 연준의 허리를 감싸며 말하면 연준은 다시, 친구들이랑 좀 놀다 오라며 수빈을 살짝 떼어냈다. 연준과 제대로 붙어있던 게 벌써 몇 주 전... 수빈 오늘 심통이 제대로 난 듯 했다. 연준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앉은뱅이 책상을 살짝 밀어가며 연준의 무릎에 눕더니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야, 뭐 해."

 "뭐가요, 노는 중이잖아."

 

 손이 점점 더 진득하게 붙어왔다. 수빈은 그 큰 손으로 처음엔 연준의 얼굴을 만졌다가, 목덜미를 한 번 쓸어내리더니 점점 아래로 와서는 가슴께를 만지작거렸다.

 

 "최수빈... 뭐 하냐고,"

 

 수빈은 저를 내려다보는 연준에게 씨익 웃어 보이더니 그대로 연준의 팔을 잡아 끌어 키스해버렸다. 당황한 연준은 어떻게 할 생각도 못하고 가만히 수빈의 키스를 받아내고 있었다. 키스가 이어지고, 연준이 먼저 수빈을 툭툭 쳤다. 그에 수빈은 순순히 팔을 놔 주었다.

 

 "뭐 하는, 뭐 하는거야!"

 "싫어요?"

 "이 미친 놈아..."

 

 고개를 푹 숙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연준이었다. 수빈은 그런 연준을 보며 사랑스럽다는 듯 꼭 안아주며 곳곳에 뽀뽀를 퍼부었다. 

 

 "형 방으로 갈까요?"

 

 연준은 부끄러움에 수빈을 퍽퍽 치면서도 새침하게 수빈의 목에 팔을 둘렀다. 수빈의 볼에 쪽, 뽀뽀를 하더니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뭐 해, 안 가고."

 

 

 

 

 


 나 최연준. 26세 꽃다운 나이에 마련한 내 집에 입주한 지도 벌써 몇 개월 째. 우리 윗집에? 아니. 우리 집에, 미친놈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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