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물
w. 레브
빅뱅 때 만들어진 태초의 우주를 몇 번이고 깨부수고 조각내고
다시 억지로 끼워 맞추면서 그 틈새를 따라 무수한 것들이 어그러져도
시공간을 넘어서 순리를 역행하며 내 몸이 산산이 부서져도
언젠간 가루가 되어서 공기를 타고 저 먼바다에 뿌려진대도 상관없어요.
나는 끝까지 형 살릴 거에요.
그러니까 살아요, 제발.
Butterfly effect
최수빈 최연준
라고 다짐한 것도 이제 딱 구십구 번째. 이쯤 되면 저 말이 뇌에 정자로 새겨졌지 싶다. 정수기 버튼을 꾹 눌러 찬물을 따르자 사각으로 얼린 얼음덩어리가 파란 유리잔에 부딪혀 소음을 만든다. 시끄러워. 죄도 없는 물길에 뜬금없는 화를 부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기껏해야 유리잔 안이나 울려대는 물소리가 뭐 그리 시끄럽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별게 다 시끄럽게 느껴진다. 머리를 헤집으며 적잖이 짜증스럽게 눈을 돌리자 벽에 걸린 달력에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온다. 9월 13일.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형의 생일.
목재로 만들어진 연갈색 식탁 의자를 가볍게 빼고 걸터앉는다. 아마 약 일 분 뒤면 잠에서 깬 형이 이불 속에서 바르작거리다가 걸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따뜻한 몸을 꼭 안아준 뒤 아침으로 토스트를 먹겠냐고 묻고, 방금 따라 놓은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넨 뒤 대강 묶인 식빵 끈을 풀어 토스터기에 넣는 것까지. 이미 수도 없이 되감았기에 모조리 눈에 그려지는 장면들이다. 생각을 잇는 사이에 일 분이 지났는지 방문이 열리더니 머리에 까치집을 예쁘게 지은 형이 비척비척 걸어 나온다. 수빈아, 잘 잤어? 네. 잘 잤어요. 걸어오는 몸을 끌어 그 허리께를 안으니 채 가시지 않은 온기가 손등을 타고 넘어온다. 아침으로 토스트 괜찮아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옅게 미소지으며 파란 유리잔을 건넨다. 물 먼저 마시고, 앉아있어요. 하곤 식탁 구석에 놓인 식빵봉지를 턱 집어든다. 식빵 끈을 끌러 토스터기에 집어넣는 것까지 했을 때 지금 시간은 아마 아홉 시 사십삼 분. 눈을 꾸욱 감았다 떠 시계를 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틀릴 리가 없지. 어김없이 잔잔하고 지옥같은 아흔아홉 번째 일상의 시작이다.
***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딱딱한 사각형이 나래비로 줄지어 놓인 딱딱한 플라스틱 물체는 백스페이스 바만 닳아 그 글씨가 흐릿하게 지워져 있다. 뒤로 돌아가는 버튼만 닳아 있는게 꼭 제 인생 같았다. 그리고 질리지도 않는지 다시 그 흐릿하고 뻑뻑한 키를 연신 눌러댄다.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한글 파일 안에 헛소리를 잔뜩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오늘은 형이 죽기 전날이다. 구월 십이일 목요일. 초조하게 연신 다리를 건들대다가 시곗바늘이 느리게 여섯 시를 가리키자마자 자리를 정리하고 회사를 나온다. 횡단보도를 여덟 걸음에 나눠 걷고 사람 많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긴다. 왼쪽에서 네 번째 출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3-6번째 칸에 서서 눈을 감고 딱 열까지 세면 정겨운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바람냄새를 잔뜩 풍기며 들어온다. 보통 퇴근길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기 마련이지만 분명 문 옆자리가 비어있을 것이다. 문이 느릿하게 열린다. 그럼 그렇지. 제일 먼저 열린 문 바로 옆자리에 앉아 서류가방을 꾹 끌어안는다. 정해진 루트를 타야 했다. 저번에 잘못해서 횡단보도를 다섯 걸음 만에 걸었더니 형이 다섯 시간 더 일찍 죽어버렸고 3-6번째 칸이 아닌 4-6번째 칸에 탔더니 한 시간 더 늦게 죽어버렸다. 오늘 무언가가 뒤틀리면 그건 반드시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현상을 나비효과라고 일컫는다. 퇴근길 지하철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치 갓 탈피할 나비 번데기가 몸을 웅크리듯 딱딱한 서류가방을 더 꽉 끌어안는다. 지금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나비의 잔 날갯짓 한 번도 막아서야 했다. 설령 그것이 그 나비를 땅으로 추락시키는 일이래도 말이다.
12050913. 유치하지만 퍽 잘 어울리는 여덟 자리 숫자를 꾹꾹 누르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도어락이 열린다. 형, 저 왔어요. 하자 방금 씻고 나왔는지 수건으로 머리칼을 탈탈 털던 형이 현관으로 걸어온다. 왔어? 딱 맞춰서 왔네. 방금 밥 다 됐거든.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옷방 문을 닫고 푸석한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다가 이내 실소를 터뜨린다. 나는 오십 번도 더 넘게 이날을 살아버려서 어긋날 수가 없어요. 형은 모르겠지만. 답답하게 목을 옥죄던 검은 넥타이를 풀어 가지런히 걸고 셔츠 단추를 끌러낸 후 편한 파자마를 걸친다. 며칠 전 형이 점점 추워진다며 새로 주문한 긴 팔 파자마였다. 차가운 옷방의 공기가 몸에 둘러진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깔끔하게 발린 흰색 벽지만이 눈에 들어온다. 유독 세게 느껴지는 한기에 팔을 쓸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춥다. 그렇지. 독하게도 춥다, 지금은.
설거지통에 담긴 새햐얀 식기들이 정처없이 덜그럭거린다. 물보라도 아닌 것이 허옇게 일었던 거품들을 미지근한 물로 씻어내리고 두어 번 탈탈 턴 후 나란히 내려놓는다. 아흔 아홉번을 지내면서 나름의 규칙이 생겼다. 젓가락과 숟가락은 제일 처음에, 그리고 큰 그릇부터 작은 그릇 순으로 거품을 묻힌 뒤 똑같이 젓가락과 숟가락은 제일 처음으로 씻어 올리고 이번엔 작은 그릇에서 큰 그릇 순으로 닦아 내린다. 남들이 보면 뭐 그따위 규칙이 다 있냐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름 저만의 루틴이었다. 설거지가 끝나면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형에게 방금 탄 커피를 건넨 후 그 옆에 앉는다. 소파의 푹신함은 시간이 무색하게 늘 그대로다. 형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커피를 마실 때 꼭 세 번 후후후 불고 홀짝거리는 꽤나 귀여운 습관이 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공기를 모아 부는 그 입 모양이 꼭 삐약거리는 병아리 같다. 몇 날 며칠을 주구장창 보고 있는 샛노란 염색모가 제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물결지며 찰랑였다. 후, 후….
…어라. 두 번?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다는 듯이 눈동자가 떨려오는 게 제 자신에게도 여실히 느껴진다. 기나긴 윤회 끝에 드디어 내가 미쳐 돈 건가 싶다. 아흔아홉 번 만에 변수가 생겼나. 아니면 너무 피곤해 단지 헛것을 본 걸까. 형은 분명 이 대목에서 커피를 세 번 불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불현듯 확 들이치는 기시감에 형의 옆태를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커피잔을 내려놓고 저에게 안겨 온다. 수빈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눈을 데굴 굴리니 시야가 좁혀진다. 좁다란 각막에 가득 들어차는 형의 눈, 그리고 잘 솟은 코, 보송한 볼, 말랑한 입술, 입술. 입술. 홧김에 말캉한 입술을 감쳐물고 그새 말라 비틀어진 제 입술을 덧댄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몸을 뒤로 물리는 형의 어깨를 콱 잡아 제 쪽으로 더 쥐어 당긴다. 왠지 오늘은 이래도 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떨칠 수 없는 섬찟한 기분에 부디 이 정도의 반항은 알량한 객기 정도로 넘겨짚어 달라고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를 이에게 빌어본다. 형의 변수와 나의 변수가 서로 상쇄되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커피를 불어대는 입김 한번과 입술을 맞대는 것의 가치나 무게 같은 것들이 부디 어림잡아 비슷하기를 기도한다. 선홍색의 뜨거운 혓덩이가 틈없이 뒤섞인다. 실로 오랜만에 하는 형과의 키스는 방금 제가 탔던 커피 맛이었다. 꽤 씁쓸했다는 뜻이다.
그 후로 더 이상 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사실 두려워서 설령 있다고 해도 눈치채지 않을 요량이다. 형은 그 후로 커피를 마저 비우곤 오늘 있었던 일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더니 열두 시가 넘자 간단히 양치질을 했다. 아까 병아리라고 했던 거 취소. 수건으로 대충 입가의 물기를 훔치더니 이만 자자고 제 옆구리를 꾹꾹 눌러대는 폼을 보아 지금은 또 주인이 고픈 고양이 같기도 하다. 바스락대는 이불 사이로 나란히 누워 눈을 깜박인다. 노오란 불빛이 천장에 이상한 색을 자아낸다. 제 품에 얼굴을 파묻고 작게 색색거리는 가슴팍을 토닥이다가 숨소리가 깊어지자 감긴 눈앞에 손을 휘적거려본다. 자나 보네. …잘자요.
형이 내일은 제발 살았으면 좋겠어요.
닿지도 못할 바램을 부러 입 밖으로 내뱉어본다. 숨에도 착잡함이 녹아든다. 단정하게 내려앉은 앞머리를 두어 번 쓸어 넘겨주다 언뜻 마주한 곱게 감긴 두 눈이 꼭 그때 같아서 일순 토기가 치민다. 지극히 편안한 얼굴에 그날의 기억이 오버랩된다. 아….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 방을 뛰쳐나온다. 그 와중에도 형이 깰까 봐 본능적으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대로 화장실 문을 잠그고 숨을 몰아쉰다. 제가 스스로 듣기에도 고르지 못한 숨소리가 자꾸 폐부를 찌른다.
식은땀이 잔뜩 맺힌 이마를 소매로 대강 찍어누르다가 소파에 앉아 아까 형이 끌어안고 있던 쿠션을 끌어안는다. 뒤로 고개를 젖히고 잊으려고 애썼던 상념에 도로 잠긴다. 무감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 지독하게 선명하다. 형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 9월 13일, 그리고 이벤트와 사고. 관련성을 찾기 힘든 단어들이 머릿속을 잔뜩 어지럽힌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일부러 아침부터 틱틱대던 날이었다. 얼마 전 났던 제 미약한 교통사고로 형의 신경이 곤두서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야심차게 준비해온 이벤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괜시리 아침부터 넥타이가 예쁘게 안 매진다는 핑계로 툴툴댔고 먼저 나갈 테니 운전 조심하고 다니라는 형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해주지 않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어젯밤 자기 전에 한게 다였고 그저 오늘 일찍 들어와요, 라는 말로 그 뒷모습을 배웅했다. 형은 일이 밀리는 경우가 많아 보통 여섯 시가 훌쩍 넘어 퇴근했다. 그래서 회사에 출근했다가 반차를 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준비해놓은 풍선이며 가랜드를 손수 걸었다. 별로 꾸민 것도 없어 보이는데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지막으로 이불을 가지런히 펴고 이 위에 하트 모양 장미 꽃잎까지. 솔직히 유치하지만 형이라면 필히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것도 좀 해줘야지. 만족스럽게 집안을 둘러본 후 미리 주문해둔 케이크를 찾으러 차를 타고 나섰다. 며칠 전 났던 교통사고 탓인지 핸들을 잡는 손이 자꾸 떨렸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창문을 내리자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뺨에 닿았다. 빨리 형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케이크 촛불을 불고 소원을 빌고,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자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 헛된 꿈이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길어질 것 같다는 연락을 받자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즈음 시간은 여덟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생일날에 야근을 시키는 회사가 어디 있어? 확 가서 깽판이나 쳐버릴까 보다. 형이 늦게 들어오는 게 싫기도 했지만 피곤에 찌들어 기운 없이 들어올 형을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오늘 일찍 들어와달라고 했잖아요. …수빈아, 그게. 몰라요. 됐으니까 빨리 끝내고 와요. 끊을게요. 분명 눈치 빠른 최연준이 제가 이벤트를 준비하려는 것을 대강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들어오지 못한다는 건 그의 의지뿐만 아니라 회사 상황 때문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 예쁘게 나가지 않았다. 아까 천장에 붙여놓았던 하트모양 풍선 중 두어 개는 이미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애꿎은 풍선만 다시 꾹꾹 눌러 제 자리를 찾아 붙였다. 소파에 털썩 앉자 집안의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빨리 형이 왔으면.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깬 건 아홉 시하고도 삼십 분가량 지났을 때였다. 집안이 조용한 걸 보아하니 형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나보다, 대체 언제쯤 들어올 심산인가 싶어 휴대폰을 켰는데 뭔가 이상했다.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있었다. 발신자는 모두 연준이 형, 연준이 형, 그리고 또 연준이 형. 기록을 쭉 올리다가 끝에 온 문자 한 통을 발견했을 때, 심장이 통째로 패이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소파를 박차고 지하 주차장에 대놓은 차를 몰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그 후로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이 찌그러진 형의 차와 마주했을 때는 온 세상이 절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아 뜬금없이 실실 웃다가 울기만을 반복했다. 형과의 마지막은 그렇게 속절없고 부질없이 끝났다. 풍선이 모두 바람이 빠져 떨어지고 케이크가 냉장고 속에서 퍽퍽해질 때까지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매일을 울었고 형과의 마지막을 하루에도 오십 번도 더 곱씹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너무 되감으면 소리가 원형을 잃고 무너지는 것처럼 기억도 그렇게 무너졌다. 종국에는 형의 목소리며 마지막에 했던 말까지 다 흐릿해졌다. 그저 같이 찍은 짤막한 동영상만, 그리고 남겨진 사진만 붙들고 죽을 듯이 앓았다.
오늘을 살지만 어제를 그리워했다.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했다. 회사 사람들이 꺼내는 첫마디는 온통 걱정이었다. 수빈씨, 밥은 먹고 다니죠? 수빈씨, 괜찮아요? 수빈씨…. 고맙지만 대답한 여력도 없었다. 형이 없는데 괜찮을 수가 있을까. 아무 말도 못 하고 옅게 웃었다. 최소한의 성의 표시였다. 날이 갈수록 가끔 울었고 자주 빌었다. 제발 시간을 돌려달라고. 형을 살려낼 기회를 달라고. 주어도 목적어도 온전히 갖추지 못한 문장들을 뱉으며 바닥을 길게 긁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해가 지고 뜨고 날이 점점 추워질 무렵의 어느 아침에 나는 최연준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꿈에서도 그리던 얼굴이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방금 일어나 눈을 비비는 형의 열오른 몸을 답싹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놀란 형에게 고장난 로봇처럼 사랑한다는 말만 퍼부었고 작은 머리통을 세상에서 제일 가는 보물인 양 품에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시간이 돌아갔고 최연준이 눈앞에 있다. 차게 식은 최연준이나 사진 속에서만 납작하게 웃는 최연준이 아니라 심장이 뛰고 저와 눈을 맞춰주는 최연준이 말이다. 세상을 다 가졌다고 해도 이보단 기쁠 수 없다 싶었다.
하지만 그 행복이 무색하게 최연준은 다시 죽어버렸다. 끝없이 반복되는 구월 십 삼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다음 날이 밝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첫 번째 날에는 제가 데리러 가겠다고 나섰지만 회사 앞 신호등 옆에 서 있다가 그를 들이받은 차에 치였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회사에서 나오지 말고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더니 회사엔 큰 화재가 났고, 나는 봇물 터진 듯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못 박힌 듯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다음엔 야근 같은 건 제발 하지 말고 여섯 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라고 했더니 어김없이 교통사고가 났다. 셀 수 없이 마주한 형의 죽음 속에서 나는 그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형을 살리지 못했다는 무상감이나 허망함 따위의 것들은 이제 사치였다. 형의 죽음을 직감하게 되면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깊은 어둠을 혼자서 헤메다가 눈을 뜨면 그 앞엔 방금 일어난 형이 있었다. 매번 다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잠든 형 옆에서 울기 일쑤였다. 이렇게 사는 삶이 무슨 삶이 있냐며 형이 출근한 새 온 집안의 물건을 내던진 적도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 부지하고 뜨뜻한 피가 흐르는 형이 곁에 있다는 게 눈물나게 행복했다.
이따금 이렇게 그 첫 죽음이 떠오르는 날에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병원으로 달려가던 그 날의 기억이 장면으로 남아 끊임없이 돌아왔다. 눈을 두어 번 끔벅이다 젖혔던 고개를 바로 하고 밤의 칙칙한 공기가 내려앉은 거실을 둘러본다. 내일은 형을 살려야 한다. 수없이 찾아온 내일이지만 어쩐지 내일은 조금 더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맞물렸던 입술의 감촉이 아직도 선연하다. 아흔아홉 번째에 와서야 일어난 작은 변수가 부디 길조이기를. 다가올 구월 십사일을 형과 함께 맞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번에 강구해낸 방법은 형을 아예 내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회사를 가지 못하도록 아침부터 엄포를 놓고 절대 안 된다며 현관문을 가로막았다. 혹여 먼저 회사에 알렸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당일 아침에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형은 그에 못 이겨 단정하게 갖춰 입었던 옷을 어쩔 수 없이 다시 벗어야만 했다. 집에 눌러앉아 커플 파자마를 입고 나란히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과자를 씹었다. 해가 지자 미리 샀던 작은 케이크를 꺼내 촛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었다. 귀여운 고깔모자도 형의 머리에 얹어주었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드디어 무사히 구월 십사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긋지긋하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형의 웃는 얼굴이 유독 반짝였다. 완벽했다. 함께 있으니 사고가 날 수도 없었다. 섣불리 내일을 상상해본다. 무사히 제 옆에서 왜 이제야 이런 방법을 생각했는지 제 자신이 조금 한심스럽긴 했지만 아무렴 어때, 충분히 역치를 넘어선 행복이었다. 형이 웃는다. 따라 저도 웃는다.
수빈아, 이제 그만해도 돼.
…이 말이 형의 입에서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형,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뭘 그만 해요.
방금 전까지 발그레하게 띄웠던 웃음기는 가신 지 오래였다. 머릿속이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시선을 돌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안아달라는 듯 뻗어오는 팔을 습관적으로 당겨 안았다. 수빈아. 부르는 목소리가 살살 갈라진다. 너 교통사고 나던 날 기억해? 하며 저를 밑에서 올려다보는 눈이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기억하죠. 코너에서 사람 못 보고 그거 피하다가 옆차 긁었던 거요. 차 수리 맡긴 동안 고생 좀 했잖아요. 근데 그건 왜요. 말랑한 입술이 애처롭게 짓이겨진다. 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형 성격이 뭘 질질 끄는 성격은 아닌데. 당장 방금 떨어졌던 저의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으라고 닦달하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는다. 뭘 그만하라는 거고, 내가 교통사고 났던 건 꽤 오래전인데 그걸 왜 다시 꺼내는지. 다만 이 시점에서 어쩐지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건 어제의 키스였다.
수빈아, 넌 사실 그때 이미 죽었어야 했어.
뭐? 제 품에 안겨 웅얼대던 마른 등을 토닥이던 손이 마네킹 마냥 그 자리에 굳는다. …다시 말해봐요. 내가 그때 죽었어야 했다고? 접촉사고로 내가 죽어요?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그냥 아까 내가 물어본 거에나 답해줘요. 뭘 그만하라는 건데요. 이러고 싶은 마음은 일절 없었지만 기어이 언성이 높아진다. 형의 어깨가 자꾸 들썩인다. 예감이 좋지 않다. 들떴던 마음은 이미 저 수렁으로 처박힌지 오래다.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방 안을 맴돈다.
…너 그날 정말 다른 차에 살짝 부딪힌 거라고 생각해? 대형 트럭이랑 정면으로 박아서 그대로 차 전복된 건 생각 안 나?
어라. 저 언덕에서부터 끝없는 비탈을 홀로 구르는 느낌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장면들이 뇌까리듯 흘러간다. 형에게 퇴근한다고 전화를 걸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초록색으로 바뀐 신호등을 보고 엑셀을 밟는 순간 무언가 큰 타격감이 느껴졌고, …그 후는 드문드문 기억이 끊겨있다. 깨진 앞 유리와 불빛 반짝거리는 휴대폰에서 들리는 여보세요, 수빈아. 수빈아? 하는 형의 목소리. 그제서야 기저에 묻혀있던 출처 모를 기억이 고개를 든다. 형,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있는거에요.
온 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 사실 빅뱅이고 태초의 우주 비스무레한 것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밀어 넣은 가치며 이상들이 조각나 심장에 꽂히는 기분이다. 그따위 게 어찌 중요할까. 형만 있으면 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버틴 아흔아홉 번의 윤회였다. 그리고 그 끝이라 짐작되는 오늘에 와서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라, 그 흔한 헛웃음조차 터지지가 않았다. 단지 입을 앙다물고 형을 제 품에서 떼어냈다. 말을 꺼내기엔 무서워 눈짓으로 묻는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만난 게 아흔아홉 번이 다가 아니라는 거죠?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 몸짓이 원망스럽다. 이별을 체감하는 건 순식간이다. 수빈아, 너는 살아야지. 너는 이제 그만하고 살아. 내가 준 인생 끝까지 행복하게 살아. 나 너 살리려고 별짓 다 했어. 그 트럭 막으려고 운전자분하고 친해져서 부러 약속 잡기도 해보고, 시스템 오류내서 신호등도 고장 내 봤고, 퇴근하는 너 픽업해오고 데려다주고, 그러면서도 내 바람이 이뤄지지 않고 네가 사라져 버릴까 봐 매일 잠들기 전에 빌었어. 내일 네가 또 죽어도 좋으니 다시 만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그렇게 평생을 뒤로 돌면서 살아도 괜찮으니까 너랑 함께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죽어라 빌었어. 그리고 네가 죽을까 봐 맘졸이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어느 날에, 너무 기쁜 나머지 잠든 네 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네가 나 눈 부었냐고 몰래 새벽에 라면 끓였냐고 했던 날 있잖아, 그날 나 사실 많이 울었어.
기억난다. 형이 이상하게 눈이 퉁퉁 부어서도 좋다고 웃으며 안겨 오던 아침. 사고 때문에 허리가 뭉근하게 아파 왔어도 이상하게 그 해사한 웃음이 마음에 들어 형의 팔을 물릴 수가 없었다. 더듬더듬 기억을 헤집어 말하는 형의 목소리가 자꾸 떨린다. 그럼에도 그 얼굴은 무언가를 계속 갈구하듯 제 눈을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사람이 너무 슬프면 웃기도 한다던데 지금 형이 꼭 그랬다. 자꾸만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을 하고 제 스스로 묻어두었던 기억을 헤집었다. 다 내놓을 테니 네가 전부 기억하라는 듯 그랬다. 품에서 떼어놓았던 마른 어깨를 도로 틀어쥐고 제 쪽으로 당겼다. 처염한 얼굴을 푸석한 손바닥으로 쓸어보다가 이내 입 맞춘다.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과 함께하는 내일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 문장이 된 것이다. 입술이 맞붙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물이 툭툭 흘러내려 자꾸만 옷 소매를 적신다. 지구 반대편의 나비는 날갯짓 한 번으로 태풍을 만들고 그대로 추락해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비, 죽음, 형, 사랑, 죽음, 윤회, 형, 사고, 사랑, 형, 사랑. 형.
사랑해요.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한 사람의 죽음을 맞았다.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뜬 뒤였다. 무의식적으로 형을 깨우려 손을 뻗었다가 아무것도 없는 이불에 손이 묻히자 얼빠진 표정으로 옆을 돌아봤다. 형 없는 아침은 꼭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 같았고 꽃이 피지 않는 봄 같았다. 절망적이었고 어딘가 뒤틀린 느낌에, 심지어 상당한 탈력감까지 가져다주었다는 소리다. 제 슬픔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이 연신 깜빡인다. 발신처가 궁금하지 않은 세 통의 부재중 전화와 두 통의 메시지, 그리고 잠금화면에 띄워지는 오늘의 날짜는,
9월 14일. 형이 떠난 다음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