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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게

w. 뽀위

[숩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부제: 마음이

 

 

안녕. 나는 오늘부터 일기를 쓸 거야. 학교 안 문방구에서 산 조그만 네가 내 기억을 담아두는 일기가 될 거고, 그 애에게 전하지 못 한 마음을 담은 편지가 될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 첫 번째 일기 -

 

너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뭐가 좋을까? 그 아이에게 보내는 내 마음이니까 마음이 어때? 강아지 같아도 어쩔 수 없어. 아 그러고 보니 마음이라는 강아지랑 그 애랑 닮았는데. 하얗고 순하게 웃는 모습이 예쁜 게 말이야. 음, 일단 그 애에 대해서 얘기를 좀 써볼까 해. 생각만 했는데도 벌써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 생각보다 그 아이를 많이 좋아하나봐. 심지어 그 아이의 이름을 적는 것조차 너무 설레서 손이 떨려서 차마 적을 수가 없어. 

그 애는 말이야 엄청 하얗고 예뻐. 동그란 머리에 웃을 때 들어가는 보조개가 귀여워. 나도 키는 꽤 큰 편인데 나보다 키가 더 크더라고. 그 애는 항상 나한테 다정한 말을 해주고 귀여운 눈웃음을 지어줘. 그럴 때마다 하얀 아기토끼 같아서 나도 모르게 까만 그 애의 머리에 손이 올라가버려. 머릿결도 참 좋아. 새카만 머리가 내 손에 닿고 부드럽게 흩날리면 마치 하늘거리는 예쁜 꽃잎 같아. 그러면 또 햇살처럼 웃어주는데 천국의 빛을 보는 것처럼 환하게 빛나. 그 아이의 이름이 뭐냐면 음… 최수빈이야. 이름도 예쁘지 않아? 나랑 같은 최 씨라는 게 안 믿길 정도라니까.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적어야 할까? 나는 그냥 저냥 평범하게 입시를 겪고 학교에 들어와서 남다를 것 없이 지내다가 군대를 갔어. 갔다가 왔는데 글쎄 후배 중에 제일 친한 범규가 휴가를 나왔다는 거야. 자기 친구가 이번에 신입생으로 입학하니까 잘 부탁한다고 술자리에 데리고 온다더라고. 그래서 나는 친구도 많이 없는데 나 말고 다른 애가 더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 친구가 나랑 잘 맞을 것 같았다는 거야. 그 날이 처음으로 범규가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웠던 날이야. 덕분에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거든. 

아무튼, 범규가 손을 막 흔들면서 누구를 반기는데 그 때가 2월 말이었거든. 하얀 털목도리에 폭 안겨서 오는 그 애는 뭐랄까… 천사 같았어. 하얗고 환하게 웃으면서 걸어 들어오는데, 첫 눈에 반해버렸어. 아 참, 나는 그 아이가 첫사랑이야. 첫사랑은 안 이루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그거 다 첫사랑을 못 이룬 사람들의 뻥인 거 전부 알거든! 그러고 나서 인사를 했는데, 사실 내 소개를 어떻게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나. 엄청 떨렸거든. 근데 그 애가 한 말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

 


"안녕하세요. 20학번 최수빈입니다. 범규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최연준 선배님.“

 


나는 내 이름이 이렇게 예쁜 이름인지는 처음 알았어. 사실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전부 다 예뻤어. 나랑 같은 언어를 쓰는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 자리에 그 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취기가 없어지더라고 절대 취한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술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 애랑 눈이 마주치니까 속이 울렁거리더라고. 절대 취한 건 아니었어! 엄청 설레고…부끄러워서.

개강을 하고나서 같은 과이다 보니까 자주 마주치더라고. 개강 초반이라 개강 총회니, 학술제가 어쩌니 하면서 1, 2학년을 계속 모으더라고. 덕분에 나는 그 애와 많이 친해졌어. 가끔 공강 때 만나서 밥도 먹고, 교내 카페에서 과제도 하고, 카톡도 한다? 나 처음으로 카톡 백업이라는 걸 해봤어. 그 아이와 하는 얘기 하나 하나 전부 지워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 너무 집착 같아? 그런가, 나 부담스러운 사람이었을까? 갑자기 속상해졌어. 오늘은 이만 잘래.

 


- 두 번째 일기- 

 

 

 


마음아, 나 정말 심장이 펑- 하고 터져버리면 어떡하지? 그게 있잖아 오늘 말이야. 그 아이랑 겹치는 수업이 있어. 교양 수업인데 사진을 찍어서 발표를 하는 2인 1조 조별과제를 받았어. 자유 편성이라서 누구랑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 애가 다가오는 거야.

 


"연준이 형, 저랑 조 같이 하면 안돼요? 저 아는 사람이 형 밖에 없어요오.“

 


울상 짓는 그 애가 엄청 귀여웠어… 가 아니라. 아무튼 그 애랑 같은 조를 하게 됐는데 우리 조가 하필 주제가 꽃이었단 말이야. 그래서 요즘 날이 좋으니까 학교에 유명한 벚꽃 명소에 가서 벚꽃사진을 찍자고 하더라고. 근데 나 너무 떨려. 사실 그 벚꽃 명소에서 같이 사진을 찍으면 벚꽃신령님이 도와주셔서 CC가 된다는 속설이 있거든. 얼떨결에 알았다고 대답은 했는데 정말 이러다 그 애랑 CC가 되면 어떡하지? 너무 앞서갔어? 주책이었나… 그래도 말이야. 벚꽃이라는 게 그런 느낌이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이랑 보러 가는 느낌이랄까? 분홍분홍하고 막 흩날리고! 이번 주 금요일 수업 끝나고 가기로 했는데 어떤 옷을 입을지 지금부터 고민해보려고! 옷을 사러 가야 할까? 그래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말이야. 앗, 카톡왔다.

 


-연준이 형! 금요일 수업 5시에 끝나죠?

-사진 찍고 밥 먹으러 갈래요?

-저번에 형이 말한 수육튀김 먹어보고 싶어요

-같이 가주세요 ㅠㅠ

-(이모티콘)

                                                -어엉, 5시에 끝나!

                                                -그랭 거기 수육튀김 진짜 맛있어!!

                                                -너는 수업 4시에 끝난다고 했나?

                                                -과방 가있어 형이 끝나구 바로 갈게


나, 오늘 좀 많이 설레! 기분 좋은 꿈을 꿀 것 같아.

 

 

 


- 세 번째 일기 -

 

 

 


안녕 마음아. 오늘이 어떤 날이었는지 알아? 바로 결전의 날! 뭘 입어야 하나 엄청 고민하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셔츠에 청자켓을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었어. 괜히 향수도 뿌려보고 거울 앞에서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연습도 했어. 수업을 듣는 데 도저히 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야. 계속 그 애의 프로필 사진만 들여다봤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과방으로 달려갔는데 강의실에서 과방까지 정말 한 번도 안 쉬고 뛰어갔어. 그리고 과방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는데 그 아이랑 우리 과 신입생 중에 예쁘다고 소문난 친구랑 같이 있더라고. 물론 둘만 있는 건 아니었어! 근데 둘이 나란히 앉아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조금 속상했어. 그래도 그 애가 바로 나한테 와서 어깨동무를 하더라고. 힛, 부드럽고 포근한 향이 났는데 그 아이랑 너무 잘 어울렸어. 같이 벚꽃명소인 예대 호수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애는 참 친구가 많더라고. 캠퍼스 안에서 인사를 엄청 많이 하는 거야! 사실 조금 뻘쭘했는데 다행히 인사만 하고 계속 나를 바라봐줬어. 그래서 좋은데도 약간은 아쉬웠어. 나도 그 애를 많이 보고 싶었는데 그 애가 나를 보고 있으면 눈이 마주칠 거잖아. 몰래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나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 지도 몰라.


"여기가 예대야."

"우와 형 엄청 예뻐요. 구석에 있어서 몰랐구나…."

"보통 예대 애들이 야작도 많이 하고 주말에도 가끔 학교 나와서 과제한다고 동떨어져있다는 얘기가 있더라구."

"그렇구나, 형 저기 벚꽃 엄청 많아요! 저기에요?"

"으응, 맞아.“


그 애는 얇은 맨투맨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신발이 나랑 같은 브랜드에 흰 운동화라서 괜히 커플신발 같았어. 신나서 막 달려가는데 리트리버 강아지 같았어! 꽃 사진도 찍고 건물 사진도 찍는데 그 아이가 핸드폰을 들이밀면서 셀카를 같이 찍자고 하는데 엄청 설렜어…. 옆에 딱 붙어서 벚꽃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나 표정 엄청 이상했겠지? 사진 그 아이한테 있는데 조금 걱정돼. 그래도 오늘은 엄청 행복했어! 

 


- 네 번째 일기 -

 

 

 


오늘은 울고 싶은 날이야. 하…. 그런 날 있잖아. 소위 일진 안 좋은 날. 그게 오늘이었어. 하루 종일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더라고. 아침에 늦잠자서 머리도 제대로 못 말리고 학교를 갔는데 전공 책을 두고 간 거 있지? 수업 끝나고 과방 가서 머리 좀 어떻게 해보려고 했더니 하필 과방에 있던 고데기가 망가져 있었던 거야. 결국 삐쭉거리는 머리를 대충 누르고 학식 먹으러 갔는데 카드를 또 두고 온거야! 그래도 찬이가 4천원 빌려줬어. 밥을 먹고 오후 교양 수업을 갔는데 하필 그 아이랑 같이 듣는 수업이어서 엄청 창피했어. 그래서 고개 푹 숙이고 평소 앉던 자리보다 뒤에 앉았는데 내 옆으로 따라 앉더라고. 

 


"형, 오늘 늦잠 잤어요?"

"으응. 쪼금 머리 이상하지…."

"머리 안 해도 귀여워요.“

 


그러고 나서 그 애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엄청 크고 따뜻했어. 앞으로도 종종 머리를 안 하고 올까 고민했는데 그래도 그건 너무 못나 보일 것 같아서 포기했어. 그래도 난 그 아이한테는 멋있고 예뻐 보이고 싶단 말이야. 여기까지 보면 그래도 괜찮은 날 아니냐고? 맞아 그 애가 머리를 쓰다듬어줘서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근데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강의실 밖에 어떤 여자애가 서있더라고. 그리고 그 애한테 가서 팔짱을 끼는 거야. 저번에 과방에서 같이 있던 그 예쁜 신입생이었어. 나는 급하게 오느라 다 구겨진 티에 바지도 아무거나 주워 입고 왔는데 신입생 친구는 머리도 예쁘게 하고 옷도 예쁘게 입었더라고. 엄청 초라했어.

 


"연준 선배 안녕하세요!"

"어, 응 안녕하세요."

"수빈이랑 같은 수업 들으세요? 이 수업 엄청 치열해서 저희 동기 중엔 수빈이만 성공했더라구요. 저도 이 수업 듣고 싶었는데…."

"가자 지현아"

"응 그래! 다음에 또 봐요 선배!"

 


나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었어. 둘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데 내가 그 애를 좋아하는 게 감히 이래도 되는 건가 싶더라고. 오늘 조금, 아주 조금 울고 싶어. 내가 우는 건 마음이 너만 알고 있어줘. 알았지?

 


-다섯 번째 일기-

 

 

 


범규가 또 휴가를 나왔어. 나 군대에 있을 때는 휴가가 이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또 또! 술을 먹기로 했어. 느지막이 수업 끝나고 술집에 갔는데 벌써부터 왁자지껄 하더라고. 대충 빈자리에 앉아서 홀짝거리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아있던 정태가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그 아이가 앉는 거야! 순간적으로 딸꾹질이 날 뻔했어. 그런데 그 애가 쓰는 섬유유연제 향이 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 빨개졌었나봐. 그 애가 나한테 술 많이 먹었냐고 물어보는 거야.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는데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걱정해줬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있다가 11시 쯤 됐었나? 범규랑 그 애랑 나 포함해서 5명 정도 남아있었는데 그 애가 잠깐 나간다고 핸드폰을 두고 갔는데….

마음아,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보통 누군가를 배경화면으로 해둔다는 건 어떤 의미야? 그게, 그 애한테 카톡이 왔는데 알림이 뜨면 핸드폰이 밝아지잖아? 그래서 슬쩍 봤는데 알림창 뒤에 있는 사진이…, 내가 본 게 맞으면 우리가 과제 때문에 같이 벚꽃 보러 갔을 때 찍은 셀카였어. 심지어 그 애 혼자 찍은 게 아니라 나랑 둘이서 찍은 거였다구! 어떡하지?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도 나 설레는 것 같아. 아니, 설레기는 항상 설레고 그랬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는 거면 어쩌지? 정말 벚꽃신령님이 내 사랑을 이어주시는 걸까?

사실 이건 비밀인데 꼭 너만 알고 있어야해. 물론 내가 말로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너만 알겠지만! 뭐냐면 나 사실 벚꽃 보러간 그 날 몰래 그 애의 사진을 찍었어. 예쁘게 잘 나왔다고 그 애에게 카톡으로 전송해줬는데 그래서 내 핸드폰에도 그 애의 사진이 있어. 차마 누가 볼까봐 배경화면은 못 해놓고 있었는데 언젠가 그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해놓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도 술을 많이 먹지 않았어. 절대 죽어도 그 애 앞에서 취한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서. 내가 1학년 신입생일 때 말이야, 그 때는 난 내가 되게 술이 센 줄 알았거든…. 근데 성인되고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자리이다 보니까 신이 나서 나도 모르게 엄청 많이 마셨나봐. 그 때 듣기로는 내 술주정이 옆 사람 끌어안는 거라고 하더라고. 사실 진짜 문제는 기억이 멀쩡하다는 거야. 절대, 절대! 그 아이 앞에서 취하지 않을 거야. 혹시나 내가 취해서 그 아이를 끌어안고 주정부리면 다음부터 그 아이를 어떻게 보겠어? 나는 기억이 다 나는데…. 

 


- 여섯 번째 일기 -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었던가? 왜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 하아, 나 정말 어떡하면 좋아 마음아…. 그러니까 있잖아. 오늘이 화요일이잖아. 화요일은 그 아이랑 같이 듣는 전공수업이 있는 날이라 강의실에 가서 앉아있는데 여느 때처럼 그 애가 내 옆자리에 앉았어. 형, 안녕하세요. 어, 응! 수빈이 안녕! 짝사랑이라는 게 이런 걸까? 마음이 간질거리고 입꼬리가 올라가고 분명 쿰쿰한 강의실인데 어쩐지 달콤하고 좋은 향이 나고 말이야. 


"연준이 형!"

"응? 왜?"

"저 저번 주에 졸아서 여기 필기가 없는데 보여주시면 안돼요?ㅜㅜ"

"아, 여기!"

"고마워요 혀엉."

 


몇 번이나 말한 것 같은데 그 애는 웃는 게 진짜 예뻐! 진짜로 엄청나게…. 그렇게 웃으면서 말하면 지갑을 달라고 했어도 통째로 다 줬을 걸? 옆 자리라서 소곤소곤 얘기하면서 같이 필기도 하고 행복했어! 수업이 재밌기는 처음이었어.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신입생 여자애 있잖아 지현이었나? 나한테 오더니 대뜸 친해지고 싶다고 같이 술을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서 어물쩍거리고 있는데 그 애가 자기도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보더라고. 저번에 그 애랑 지현이라는 친구랑 엄청 다정하게 있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 애가 지현이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생각해보니까 배경화면 정도야 나랑 같이 찍었던 셀카가 비교대상도 있고 더 잘 나와서 해놓은 걸 수도 있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다른 남자랑 술 먹는 게 보기 싫어서 같이 간다고 하는 것 아닐까? 지난번은 내가 혼자 설레발치는 거였을지도 몰라.

아무튼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술집으로 갔어. 지난번에 사진을 찍고 그 애랑 갔던 수육튀김집으로 가서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있는데 너무 어색한 거야. 그래서 자리를 피해줘야 하나 싶어서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정말 왜 그랬나 싶어.


"수빈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래도 형한테 부담되면 안 되는 거잖아."

"내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

 


내가 생각한 거랑 반대였더라고. 그 애가 지현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지현이가 그 애를 좋아하고 있던 거였어. 그런데 생각해봐, 제일 예쁘다고 소문나있는 애가 좋아한다는데 누가 안 좋아하겠어? 곧 둘이 사귀게 되겠지? 우리 과에서, 아니,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 CC가 될 거야. 그렇게 내 짝사랑도 끝나는 거겠지? 만약, 안 끝나면 어떡하지? 계속 그 애를 보고 설레어하고 지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겠지? 나, 군대도 다녀왔는데. 더 도망칠 데도 없는데…. 울면 안 되는데 자꾸 울 것만 같더라고. 그래서 결국 급하게 일이 생겼다고 하고 집에 가버렸어. 속상하고 서러워서 울면서 혼자 술을 마셨어. 펑펑 울면서 먹고 있는데 그 아이한테 전화가 오더라고. 그리고 내 술버릇을 하나 더 알게 됐어.


"여부세여어어"

"형? 연준이 형?"

"수비나아아 오디야아? 왜 저나해찌? 여부세여?"

"취했어요? 어디에요?"

"나느응 지빈데...너능? 지혀니랑 이써? 지혀니가 옙뿌긴! 하지…"

"형이 가고 나서 저도 바로 집 왔어요. 형 많이 취했어요? 제가 형 집으로 갈까요?"

"안니이야! 오면 앙대… 왜냐며는 내가 치해쓰며는 너가 이쓰명! 안대"

"제가 갈게요. 좀만 기다려요"

"안니라구우 나능 너 아페서 치하면 안댄단 말야… 너어는 지혀니 조아하지? 알아 다들 좋아하는걸…. 근데 배경은 내 사진이구 너 지짜 나빠써. 힝 나 졸려 잘래 안녀엉"


내 말만 하고 끊어버리고 잠들었어. 나 어떡하지? 휴학을 한 번 더 해야만 할까? 아냐 자퇴를 할까? 나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닌데 진짜 나 어쩌면 좋아. 마음아, 너는 아니? 오늘 한강 수온이 몇 도인지.

 


- 수빈이의 메모장 -

 

 

 


범규가 이번에 복학하는 형이라고 귀엽고 착한 형이니까 잘 놀아달라고 소개를 해줬다. 품이 큰 회색 후드티에 싸여있는 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되게 활발하게 생겼는데 생각보다 조용해서 놀랐다. 술 먹을 때 볼 중간만 붉어지는 게 꼭 빵빵덕 같았다. 나보다 어리게 생겨서 신기했다. 어떻게 나보다 형인데 이렇게 귀엽지?

교양수업 때 빵빵덕 형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연준이 형뿐이라 같이 조를 짜자고 하니까 기뻐했다. 아는 사람 없는 수업 때 그나마 아는 사람이 있는 게 다행이긴 하지. 수업 과제로 예대 호수 앞 벚꽃나무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범규가 그러기를 거기서 같이 셀카를 찍으면 CC가 된다고 했다. 귀엽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심이 있었나보다. 근데 그럴 만큼 귀엽고 또 예쁘긴 했다.

같이 셀카를 찍었다. 봉숭아물이니 첫 눈이니 속설 같은 건 안 믿지만 이번 거는 좀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분홍빛 벚꽃 잎들 사이에 단정한 까만 머리의 형은 잘 어울렸다. 흔히 말하는 첫사랑 기억 조작하는 선배 같은 느낌. 밥 먹는 것도 귀여웠다. 입에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데 볼이 빵빵해서 한번 콕 찔러보고 싶었다. 나중에 친해지게 되면 꼭 볼 만져봐야지.

일주일 중 제일 행복한 형이랑 옆자리에 앉아서 교양수업 듣는 날이다. 오늘 급하게 나왔는지 머리가 삐죽삐죽 뻗쳐 있어서 엄청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쓰다듬었는데 형이 고양이마냥 좋아해서 계속 쓰다듬고 싶었어. 끝나고 동기들끼리 모인다고 시끄럽게 해서 안 간다고 했더니 기어코 유지현이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 형이랑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가려고 했는데. 유지현이 나를 끌고 가면서도 뒤를 자꾸 힐끔 쳐다 보길래 혹시나 설마, 했다.

유지현이 연준이 형이 귀엽다고 소개해달라고 했다. 짜증났다. 싫다고 안 된다고 거절하는데 왜 자꾸 안 되냐면서 앵겼다. 전공수업 때 옆에 앉으려는 기미가 보이길래 내가 가서 형 옆자리에 앉아버렸다. 살짝 당황해했는데 그것도 귀여웠다. 수업 끝나고 형한테 뭐 하냐고 물어보려는데 유지현이 끼어들었다.

 


"연준선배! 저 선배랑 친해지고 싶은데 오늘 술 한 잔 하는 거 어때요?“

 


답지 않게 몸을 배배 꼬는 게 눈에 거슬렸다. 둘만 두면 유지현이 무슨 짓을 할 지 몰라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왜 쟤랑 술을 마셔야해. 어색하게 눈만 굴리던 형이 화장실 간다고 일어섰다.

 


"수빈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래도 형한테 부담되면 안 되는 거잖아."

"내가 연준오빠 좋아하는 거 알면서."

 


연준오빠? 거슬렸다. 형도 남자니까 오빠소리가 좋으려나. 순간 내가 형한테 오빠라 하는 상상을 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 연준이 형이 나한테 오빠라고 하는 상상을 했다. '수빈오빠아' 아, 큰일 났다. 나 단단히 감겼다. 

어색해하던 형이 집에 간다고 일어섰다. 얘랑 더 있을 이유가 없어서 집에 가자마자 형한테 전화를 했다. 근데 어디서 술을 또 마신건지 진탕 취해있었다. '너어는 지혀니 조아하지? 근데 배경은 내 사진이구….' 웅얼거리던 형이 졸리다고 하더니 핸드폰이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형, 연준이 형. 자요? ……. 나 유지현 안 좋아해요. 형 좋아하는 건데. ……. 잘 자요, 행복한 꿈 꿔요.

 


*

 


연준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머리야. 강의실 책상에 엎드리니 동기애들 몇 명이 와서는 술 냄새 난다며 한 소리씩 했다. 니들이 안 그래도 나도 술 냄새 맡아져. 머리가 아픈 건 숙취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나 진짜 이제 수빈이 어떻게 봐? 미쳤나봐 내 술주정이 그런 건 줄은 몰랐지. 기억이 멀쩡해서 더 괴로웠다. 그나마 내가 너 좋아한다고 고백을 안 한 게 다행이었다. 아니지, 어제 한 말을 보면 그냥 고백이랑 다름없는 거 아닌가. 

 


"술을 뭐 그렇게 먹었냐. 누구랑 먹었냐?"

 


제일 친한 동기인 이찬이었다. 워낙 시끄럽고 활발한 애라 입학하자마자 친해져서는 군대도 비슷한 시기에 같이 다녀왔다. 지난 번 학식 먹을 4천 원 빌려 줘놓고 다음 날 음료수 사달라고 5,300원 뜯어먹은 양아치.

 


"어제 수빈이랑 그 지현이랑 마시다가…."

"맞다, 너 최수빈이랑 친하지. 최수빈 원래 그렇게 무섭냐?"

"응? 뭐가 수빈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아니, 최수빈 유명하잖아. 잘생겼는데 말수도 적고 눈빛도 냉랭해서 다들 잘생겼는데 말도 잘 못 붙인다고. 여자친구 있어서 철벽치는 거 아니냐고도 말 많았는데."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항상 먼저 다가와서 웃어주고 머리 쓰다듬어주면 강아지처럼 헤실거리고, 형, 형! 하면서 전화도 자주하고. 

 


"걔 동기들도 걔 번호 아는 애들 몇 없을 걸? 아는 애들도 카톡하면 답장 일주일 후에나 온다더라."

 


카톡을 켰다. 방금 보낸 카톡을 어느새 읽고 이모티콘을 섞은 답장이 와있었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하얀색으로 숫자 3이 써져있었다. 세 개나 보냈는데, 답장을 일주일 후에 보낸다고? 혼란스러웠다. 분명 내가 알기로는 수빈이가 지현이를 좋아하고…. 

 


"찬아, 혹시 그 수빈이랑 지현이랑 무슨 소문 없어? 사귄다거나 누가 누굴 좋아한다거나…."

"있겠냐? 걔네 둘이 사이 진짜 안 좋아. 동기사랑이 나라사랑이라면서 애들 모아서 놀고 기브 앤 테이크 인싸랑 과 행사는 오면서 동기끼리 모이는 데는 코빼기도 안비추고 노 기브, 노 테이크 하는 애랑 친하게 생겼냐? 어제도 지현이가 최수빈한테 뭐 부탁했다가 까였다고 하던데?"


이찬! 잠깐 와봐! 암튼 그래. 난 간다 최연준! 이상했다. 내가 아는 수빈이는 늘 형 이거 마실래요? 하면서 음료수를 들고 오고 과 행사는 늘 내 옆에 앉아 있다가 취기 오르면 어깨에 기대오는 붙임성 좋은 멍뭉이였는데 그렇다고 찬이가 나한테 거짓말 할 리는 없고….

 


-형 이따가 후문에 뚝불 먹으러 갈래요??

-점심에요!

-아니면 해장하러 갈래요?(토끼 이모티콘)

 


이거 봐, 엄청 다정한 애인데. 아닌데 분명. 자꾸 이런 거에 설레면 안 되는데. 그래! 끝나고 과방으로 갈까? 아녀 제가 형 강의실로 갈게요 사과대건물 302호 맞죠? 

분명 이거 전공필수인데, 무조건 집중해야만 하는 수업인데 시선이 핸드폰에만 쏠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최연준~ 우리 할매순대국 갈 건데 갈래? 나, 나 약속 있어. 간다! 

뒷문을 벌컥 열자 문 옆에 기대서 핸드폰을 하는 수빈이 있었다. 어, 형 끝났어요? 해맑게 웃는 얼굴에 찬이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후문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계속 의문이 피어올랐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아냐 암것두! 옆에서 걸어가던 수빈이 앞을 막고 멈춰 섰다. 바닥을 보고 걷던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얼굴에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무슨 일 있죠."

"아냐, 아무것도. 괜찮아!"

 


연준이 어색하게 웃어보이자 수빈이 연준의 볼을 잡았다. 왼쪽, 오른쪽. 이리저리 돌려서 쳐다보더니 아닌데, 무슨 일 있는데. 수빈이 웃어보였다. 잡힌 볼이 뜨거운 느낌이었다. 분명 수빈의 손은 객관적으로 차가운 편이 맞았는데 볼이 뜨거운 건지 수빈의 손이 뜨거운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아니야 진짜루! 수빈이 여전히 맘에 안 드는 표정으로 볼에서 손을 떼었다. 알았어요. 다음에 꼭 알려주기에요? 으응…. 점심을 먹고 수빈이 오후수업을 들으러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오늘은 오후수업이 없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범규한테 전화가 왔다.

 

"혀엉, 잘 지내여?"

"웬일이야 나한테 전화를 다 하구? 카톡 어제 했잖아."

"아이, 형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죠! 그래서 요즘 수빈이는 잘 챙겨주고 있어요? 걔 은근 낯 많이 가려서 친구 많이 없을텐데"

"어? 잘 지내지…, 수빈이가 많이 낯가려?"

"넹. 안 그래도 엊그제 수빈이가 형이랑 사진 찍은 거 보여주더라고요? 걔 사진도 원래 잘 안 찍고 누구랑 같이 찍는 건 더더욱 안하는데. 근데 형 거기 예대 호수 아니에요?"

"응, 그, 수빈이가 거기 가자고 하길래. 과제였거든! 재준계 교수님 교양수업 있잖아. 그거."

"형 거기서 사진 찍으면 CC 되는 거 몰라여?"

"알지, 아는데 그…."

"형 미리 축하해요. 잘 어울리네."

"아니야! 수빈이는 나 안 좋아해."

"…형 방금 수빈이는. 이라고 했는데 형은 수빈이 좋아해요?"

"어, 어? 아니! 아닌데!!"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설마 그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래요?"

“아닌데, 진짜…”

"그래요~ 근데 참 신기하네~? 낯도 엄청 가리는 애가 나랑 같이 찍은 사진도 5개가 안되는데 먼저 사진을 찍자고 했다고~? 이야아"

 


야, 그만 놀려랑. 알겠어요. 그래서 수빈이는 형이 자기 좋아하는 거 모른대요? 모르겠지…, 티 안냈는데. 형 연기 못하잖아요. 야아, 죽고싶냐?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고백을 듣기 전까지는.

 


*

 

전공수업이었다. 수빈의 옆자리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듣고 몰래 과자도 나눠먹었다. 오랜만에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걸어가려고 고민하던 중에 지현이 말을 걸었다. 선배,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당황한 눈을 굴리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면서 속으로 오만생각을 다 했다. 수빈이랑 잘 되게 선배가 친하니까 도와주세요? 수빈이가 저 좋아하나요? 수빈이랑 데이트 하게 선배가 자리 좀 비켜주세요? 건물 뒤편으로 가자 앞서서 걷던 지현이 걸음이 멈췄다. 

"저, 선배 좋아해요. 저랑 사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저, 네?“

"개강총회 때부터 좋아했어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게, 어, 네…. 미안해요."

"골키퍼 있어도 골은 넣을 수 있대요! 사귀는 거 아니면 저도 기회는 있는 거 아니에요? 제가 선배 맘 돌려볼게요!"

"미안, 미안해요. 제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좋아해주는 건 고마워요. 근데 미안해요."


분명 인적이 드문 곳에서 했던 대화인데 누가 시작점인지 모를 소문이 돌았다. 1학년 중 예쁘다고 대숲에도 올라왔던 유지현이 최연준한테 고백했다더라. 최연준은 복 받았네. 부럽다. 이런 저런 얘기가 돌고 수빈의 귀에도 들어갔다. 수빈이 과방에 들어가자마자 지현을 불러냈다. 야, 소문 뭐야. 뭐. 고백 뭐냐고. 야, 신경 쓰여서 나한테 달려올 정도면 차라리 연준 선배한테 가 멍청한 새끼야. 그렇게 굼뜨니까 나 같은 애한테 뺏기는 거야. 

지현이 수빈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아 씨, 손 겁나 맵네. 근데 잠깐만, 나 같은 애한테 뺏기는 거야? 뺏기는 거야…? 그래서 사귄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수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던 차에 범규한테 전화가 왔다. 

 


"야, 미친 유지현이 연준이 형한테 고백했다며. "

"군대 가있는 애가 나보다 잘 아냐."

"미친 그래서 사귄대? 너 고백 안했어?"

"알고 있었냐. 내가 연준이 형 좋아하는 거."

"모르는 게 병신아니냐. 너 아는 사람들은 다 눈치 채고도 남지. 예대 벚꽃 내가 알려준 데잖아. 홀랑가서 사진 찍고…, 암튼 가서 고백을 하든, 뭘 하든 해라. 연준이 형 상처 받는다"

"형이 상처를 왜 받아."

"…암튼, 난 훈련받으러간다."

"야 지금 훈련 없는 거 알거든. 야, 최범규!"

 

고백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막상 갑자기 하려니 마음만 급해졌다. 그래서 유지현 쟤는 사귄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사귀는 거였으면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 그러면 뺏긴다는 얘기는 왜 한 거야. 미치겠네.

 


*

 


수빈이 카톡을 보냈다. 형, 이따 오후수업 끝나고 잠깐 볼래요? 예대 벚꽃호수 앞으로 와줄래요? 거울을 보고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머리도 만지고 립밤도 다시 바르고. 이미 거의 다 져버린 앙상한 벚꽃나무가 호숫가를 둘러쌌다. 바닥에 떨어진 벚꽃 잎이 짓밟혀 애매한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수빈이 앙상한 벚꽃나무 아래 앉아있었다. 테이블 위 아직 색이 분홍인 꽃잎을 매만지는 수빈에게 다가갔다. 테이블을 똑똑 두드리고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산 위에 지어진 학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예대였다. 멀리 건물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 때문에 하늘이 주황색으로 빛났다. 

연준이 와도 가만히 꽃잎을 만지던 수빈이 연준의 옆자리로 옮겼다. 분홍색 꽃잎을 연준의 손에 쥐어주었다. 감싼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동그란 눈이 수빈을 향했다. 의아함을 품은 눈이 반짝 빛났다. 

 


"형, 저희 여기서 사진 찍었잖아요."

"응, 그치. 그거 과제 칭찬받았는데."

"저 사실 알아요, 여기서 사진 찍으면 CC 된다는 거. 범규한테 들었어요. 일부러 형한테 여기서 사진 찍자고 했어요."

"…어?"

"그러니까, 형이랑 CC 하고 싶어서 여기 온 거라구요. "

"…어어? 그러니까 그게, 어."

"저 형 좋아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저희 사귈래요?"

 


벚꽃은 분명 다 졌는데 어쩐지 세상이 분홍빛이었다. 하늘이 주황빛이라 그런가. 수빈의 얼굴이 붉어보였다. 분명 수빈의 손은 내 손을 감싸고 있는데 손 안에 쥔 벚꽃 잎이 뜨거워졌다.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붉은 하늘과 하늘이 비춰 보이는 호수, 따뜻한 온기와 좋아하는 사람. 심장이 두근- 두근- 기분 좋은 울림을 만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좋아해. 벚꽃신령님이 축복하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몇 개 안 달려있던 벚꽃 잎이 이렇게 한 번에 우수수 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 마지막 일기 -

안녕, 마음아. 오늘의 일기가 마지막 일기가 될 것 같아. 왜냐면 이제 내 마음을 적어낼 필요가 없어졌거든. 이제는 직접 다 말할 생각이야. 내가 수빈이를 좋아하고, 수빈이가 나를 좋아하고. 이제 짝사랑하는 그 애가 아니라 나랑 사귀는 수빈이인걸! 그동안 고마웠어, 마음아! 

 


처음으로 제대로 적어볼게. 사랑해 수빈아.

©2020 SJ GENRE COLLAB  by. @BISOU_sj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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