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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

w. 초승

   최수빈, 18세, 생일은 12월 5일, 2학년 1반 학급 위원장. 위로 누나와 형이 있음. 모두에게 친절하며, 키도 크고 잘생긴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엄친아 스타일. 좋아하는 음식은 빵이다. 아니, 떡인가? 일단 가장 좋아하는 빵은 매점에서 파는 ‘핫소스더블햄피자빵’, 오늘만 세 번 정도 사먹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인 듯. 운동은 못하는 것 같다. 항상 체육시간에 깍두기로 빠져있음. 혈액형은 A형, 반려견을 키움. (이름이 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 오늘은 이정도로 됐나.”

 

 

   연준은 펜을 잡느라 뻐근해진 손목을 돌렸다. 생각보다 좀 많이 쓴 것 같기도 하고. 한 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노트를 탁 소리가 나게 덮고서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요즘 연준의 최대 관심사는 오롯이 최수빈이었다. 최수빈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뭘 할 때 신나게 웃고, 뭘 할 때 표정을 찡그리는 지 하나하나 기록하는 게 그의 일이다. 이렇게 적어서 어디에 쓸 일이 있냐고? 글쎄, 다 쓸 곳이 있다니까.

 

 

 

 

 

 

작전명 러브라인

w. 초승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도와주세요!

 

   연준이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일 것이다. -물론 본인피셜이다- 연준은 학교에서 자칭타칭 큐피트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최연준을 찾아가라는 말은 이미 전교에서 공식이 되었다. 사실상 연준이 하는 건 딱히 없었다. 의뢰인이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조금, 아주 조금 알려주는 정도. 남의 연애사에는 딱히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연준의 인생 모토였다. 본인이 불을 조금 붙여주면, 키우는 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고.

 

   최수빈에 대해서 알려줘. 지난 주, 문과반에서 한 인기하는 여학생이 찾아와서 최수빈에 대한 것을 알려달라며 찾아왔다. 최수빈. 우리 학교 최고의 인기남이자, 전설의 세화고 우유식빵남. -처음 이 별명을 들었을 때 연준은 미간을 찡그리며 무슨 그딴 별명이 다 있냐며 친구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등교할 때 식빵을 물고 등교한다나, 뭐라나. 참 별명도 단순하게 짓는다 싶었다. 이미지랑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매점 오천원 쿠폰을 주면서 말을 하는 그 여자애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작은 입술을 힘주어 꾹 깨물곤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손에 쥔 종이 조각이 힘을 받아 덜덜 떨렸다. 꽉 쥔 쿠폰을 단숨에 낚아챈 연준이 특유의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아는 그 최수빈 말하는 거지? 우유식빵남.”

 

“아…, 응.”

 

“걔를 매점 오천원으로 퉁치냐, 그렇게 힘든 애를. 나중에 생귤탱귤 한 번 더 사주는 걸로 해.”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의뢰인(대가를 받았으면 그 때부터 고객님이라는 연준의 신념이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동의는 하셨고.

 

 

“언제까지 주면 돼? 그런 거 상관없으면 내가 마음대로 정하고.”

 

“졸업 전 까지만 주면 돼. 그때까지 늦는 건 아니지?”

 

 

   연준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날 뭘로 보고. 졸업 전 까지면 굉장히 쉬운 계약이었다. 기간도 넉넉하겠다, 마음껏 관찰을 해볼까. 연준의 눈이 사냥 직전의 사자처럼 빛났다.

 

 

“오케이, 연락할게.”

 

작전 시작이다.

 

 

 

 

* * *

 

 

 

 

   행운인지 불행인지, 최수빈과 같은 반이라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왜 불행이냐고? 들키면 어떻게 되는 지 다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에게 들키지 않는 것. 이 일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약 들키는 날에는 뭐, 자칭타칭 큐피트도 그만둬야지.

 

   그래도 그만큼 많이 알아낼 수 있어서 다행인건가. 노트에 막무가내로 줄을 죽죽 긋던 연준의 시선이 칠판 앞에 서있는 수빈에게 향했다. 다정하게 웃으며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은 확실히 최고 인기남이 괜히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나가던 개미도 뽀뽀하겠네.”

 

 

   괜히 심술이 난 연준이 입을 삐죽 내밀며 작은 노트에 무언갈 열심히 끄적였다. 

 

최수빈은 다정한 박애주의자. 혹시 신께서 모범생이 누구냐 물으신다면 고개를 들어 최수빈을 보게 하라. 

 

   항상 목 끝까지 채운 와이셔츠 단추와 꽉 조인 넥타이, 마이까지 풀 착장인 교복. 게다가 모두에게 다정하기까지 하다니. 수빈의 그런 빈틈없는 모습에 연준은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여기에서 물러나는 호락호락한 최연준은 없다, 이거야. 비장하게 고개를 돌린 연준이 태현에게 말을 건넸다.

 

 

"야 최수빈 약점같은 거 아냐?"

 

"…약점?"

 

"아 약점 아니더라도, 그 비스무리한 것들. 아는 거 없냐?"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연준에 태현은 질색하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측은한 눈빛으로 연준을 쳐다보던 태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연준이, 많이 피곤하면 그냥 자. 선생님께 말씀은 따로 안 드릴게."

 

"뭐래. 어디 아프냐? 아 그래서 안다고 모른다고?"

 

"수빈이한테 열등감을 가져서 어쩌게. 죽었다 깨도 너는 쟤 못이겨."

 

 

   ...됐다. 너한테 물어서 뭘 하겠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연준이 몸의 방향을 원상태로 돌렸다. 최연준 피곤하면 그냥 엎어져 자. 연준은 걱정인건지, 조롱인건지 모를 태현의 말에 상큼하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주고선 책상 위에 맥없이 엎어졌다. 세상엔 도움이 되는 놈이 한 놈도 없다. 연준은 책상 표면을 손가락으로 소리나게 두드리며 시선을 수빈에게 옮겼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아까부터 마카롱 같은 눈을 접어가며 웃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습관적으로 노트를 꺼내 수빈에 대한 것들을 적어내려갔다. 

 

   웃을 때 눈이 마카롱 같음. 마카롱 맛있는데, 쟤는 마카롱 좋아하려나? 편식은 할까? 편식하면 나쁜어린이에요, 수빈어린이. 

 

   의미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준은 연신 낄낄댔다. 노트의 모퉁이에는 수빈을 똑닮은 토끼도 한 마리 그려주면서. 얕은 미소가 번져있는 연준의 얼굴 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졌다.

 

 

"연준아 뭐해?"

 

"형님은 바빠요~ 태현이는 닥치고 주무세요~"

 

 

   연준은 시선을 노트에 고정하고선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아까 나를 열등감 덩어리로 취급한 벌이다, 이 나쁜 새끼야.

 

 

"나 강태현 아닌데."

 

 

   그럼 누군데? 심드렁한 연준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창백하게 물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게,

 

 

"나 편식 안해."

 

 

   최수빈이 마카롱 같은 눈을 예쁘게 접어가며 웃었다.

 

 

 

 

* * *

 

 

 

 

   뭐가 잘못이었을까. 너무 많은 대가를 받고 정보를 팔아넘긴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 때까지 너무 많이 팔아넘겼던게 문제였을까. 애초에 이런 일을 시작한게 잘못이었나. 연준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하지 않은 이상, 신이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시여, 앞으로는 정말 잘 살테니까 제발 제 눈 앞에 멀뚱히 서있는 최수빈을 한 번만 잠재워 주소서. 마음속으로 그렇게 빌어봤지만 역시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던 수빈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을 했다.

 

 

"요즘 왜 이렇게 나를 많이 쳐다보나 했는데."

 

"...내가 언제. 그런 적 없거든."

 

"최연준 너 스토커야?"

 

 

   아니거든? 발끈하며 대답을 하는 연준에 수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맞구나, 스토커. 으득 소리가 나게 이를 깨문 연준이 수빈을 쏘아봤다.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지금 연준이 하는 일은 스토킹이 맞으니까. 아니, 정정한다. 정당한 대가를 받고 하는 정보수집이라고 해두자. 

 

 

"이런 거 적어서 뭐하려고?"

 

"다 쓸 데가 있으니까 이러지."

 

"어디에 쓰는데?"

 

"그걸 니가 알아서 뭐하게."

 

"이거 내 얘기잖아."

 

 

   스토킹 현장을 목격했는데, 이렇게 넘어가라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수빈이 연준을 쳐다봤다. 미간 사이를 좁힌 연준이 입을 달싹거렸다. 말하면 진짜 끝이다. 머릿 속에 사랑에 빠진 표정의 문과여신이 스쳐지나갔다. 마지막 고객인 줄 알았으면 생귤탱귤 두 개는 사달라고 할 걸. 눈을 질끈 감은 연준이 입을 떼려고 하던 그 때, 수빈이 먼저 선수를 쳤다.

 

 

"스토킹 말고."

 

"..."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물어봐."

 

"...뭐?"

 

 

   연준은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방금, 직접 정보를 캐라고 말한건가?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아니, 들킨 상황 자체가 처음인 연준으로선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직접 물어보라고? 왜?"

 

"내 얘기가 필요한 거라면 스토킹은 하지 말라고. 안 힘들어?"

 

"...힘들어."

 

 

   힘드니까 나한테 물어봐. 연락도 자주 하고. 수빈이 눈을 예쁘게 휘어가며 웃었다. 연준에게는 수빈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에게 그러는 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던 연준은 수빈의 제안에 냉큼 오케이를 외쳤다. 정보도 얻고, 큐피트 작전에 대해 들키지도 않는 최적의 방법이라며 연준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잘 한거야, 최연준. 잘했어. 

 

 

 

 

* * *

 

 

 

 

"연준아 나는 포도주스가 좋더라."

 

"아, 어쩌라고."

 

"그래도 콜라가 더 좋긴 해."

 

"알겠으니까 수빈아 나 화장실 좀 가면 안되냐?"

 

 

   아 미안. 세상 무해한 얼굴로 웃으며 자신의 손을 놓아주는 수빈을 째려본 연준은 주먹을 꾹 쥐며 수빈에게서 등을 돌렸다. 화를 내서 뭐하겠니, 참자 최연준. 참아.

 

   자신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한 수빈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는지 수빈은 시도때도 없이 연준을 찾았다. 밥을 먹다가도, 수업이 막 끝난 쉬는시간에도,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수빈은 연준을 붙잡았다. 그런 수빈을 이상하게 여긴 건 연준 혼자가 아니었다. 

 

 

"너 최수빈 약점 잡았냐?"

 

"갑자기 무슨 약점이야."

 

"저번에 나한테 물어봤잖아, 최수빈 약점 아냐고."

 

 

   심각한 표정을 한 태현이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무슨 약점 타령이람. 심드렁한 표정으로 태현을 보던 연준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혹시 이 예쁜 녀석이,

 

 

"뭐야, 약점 알아냈어?"

 

"알겠냐고. 니가 잡은 것도 아니면 최수빈은 왜 저러는 건데?"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고. 한숨을 폭 내쉰 연준의 시선이 자연스레 수빈을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 연준의 미간이 자연스레 구겨졌다. 와중에 웃는 모습은 진짜 예뻤다. 최수빈의 미소에 점수를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10점이 아닐까. 얄미우니까 10점 만점에 8점 정도로 해두자. 

 

   저를 빤히 바라보는 연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수빈은 문득 연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마주친 시선에 당황한 연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깜짝이야, 왜 갑자기 돌아보고 난리야. 혹시 계속 보고 있던 거 들켰나. 초조함에 입술을 꾹 깨문 연준을 빤히 쳐다보던 수빈이 조용히 입모양으로 연준에게 말을 건넸다. 뭐라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연준이 입을 뻐끔대며 수빈에게 말했다. 그러자 보조개가 패이도록 웃으며 자신의 입을 두어번 톡톡 친 수빈이 소리를 냈다.

 

 

"입술, 상처난다고."

 

 

   아. 바보같은 추임새를 내뱉은 연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런 말을 굳이, 입술을 그렇게 보여주면서 했어야 하는 거냐고. 급하게 손부채질을 하는 연준을 한심하게 쳐다본 태현이 제 친구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오늘 좀 덥지 않냐? 완전 여름이네."

 

"실내 에어컨 온도가 18도야 연준아. 먹을 게 없어서 더위를 먹니?"

 

 

   평소와 같이 태현과 장난을 치며 환하게 웃는 연준의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수빈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쁘구나, 라고 생각하며.

 

 

 

 

* * *

 

 

 

 

   시간이 흘러 수빈과 많이 가까워진 연준은 본격적으로 수빈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연준은 수빈에게 좋아하는 영화, 음식, 또는 장소에 대해 물었고 수빈은 연준의 질문에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성실히 대답했다. 연준을 보며 생글생글 웃던 수빈이 갑자기 연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상형 같은 건 안물어봐?"

 

 

   환하게 웃던 연준의 얼굴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최수빈에 대해 알아가는 건 단순히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연준은 잊고 있었던 사실을 슬그머니 떠올렸다. 애써 입꼬리를 올린 연준이 펜을 똑바로 고쳐잡았다. 그래 최연준. 까먹지 말고 할 일만 하자.

 

 

“그래서. 이상형이 뭔데?"

 

"음.. 웃는 게 예쁜 사람."

 

 

   누구를 생각하며 대답을 한 건지, 수빈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지며 양 쪽 볼에 예쁘게 자리한 보조개가 기분 좋게 모습을 드러냈다. 수빈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연준의 가슴이 괜히 간질거렸다.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낯선 감각에 연준은 놀란 나머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게 뭐야, 완전 아저씨같아."

 

"그러는 너는? 이상형이 뭔데?"

 

 

   ...이상형이라. 18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상형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때까지 그런 질문들에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대는 것이 다였던 연준은 진지하게 물어오는 수빈의 눈빛에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내 생각이 무엇이냐 묻는 듯한 표정. 입을 달싹이던 연준이 귀를 붉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웃는 게 예쁜 사람."

 

"뭐야, 나보고는 아저씨 같다고 그랬으면서."

 

 

   최연준 내로남불 개쩔어.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소리를 내어 웃는 수빈의 얼굴이 연준의 눈에 가득 들어찼다. 이러면 안되는 건데. 수빈의 웃는 모습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수빈아, 내 이상형은 웃는 게 예쁜 사람이니까 그렇게 예쁘게 웃지 말아줘. 홧홧하게 달아오른 연준의 귀는 식을 생각이 없었다. 창 밖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의 시작이었다.

 

 

 

 

* * *

 

 

 

 

"이 날씨에 체육은 죽으라는 거 아니냐."

 

 

   머리 위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미간을 있는 힘껏 찡그린 태현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체육선생님을 째려봤다. 한 쪽에서는 대략 6명의 남학생들이 신나서 농구를 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가장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농구를 했을 연준이 제 옆에 앉아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태현은 제 옆에서 심각한 표정을 한 연준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농구 안 해? 농구 좋아하잖아."

 

"지금 농구가 중요한 게 아냐."

 

 

   연준의 아리송한 대답에 있는 힘도 다 빠져버린 태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뭐가 중요한데."

 

"아 몰라. 아무튼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뭐라는 거야, 미친 놈이."

 

 

   확실히 연준은 지금 농구를 할 상황이 되지 않았다. 연준의 신경은 오로지 농구대 옆 그늘에 앉아있는 저 허여멀건한 밀가루 반죽 같이 생긴(연준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수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최수빈이 이상하다. 수빈이 갑자기 저에게 가깝게 다가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입술을 뜯으며 수빈을 노려보던 연준은 가만히 한숨을 폭 쉬고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요즘 들어 수빈은 이런 시시콜콜한 내용의 문자를 자주 보내왔다. '내일 밥 맛없는데 매점가자' 라거나, '내일 과제 했어? 안했으면 보여줄게.' 라거나. 그 뿐 만이 아니었다. 수빈은 연준이 물어보는 모든 것에 대해 '너는?' 이라는 추가 질문을 해댔다. 너는 어떤 걸 좋아해? 너는 뭘 싫어하는데? 연준은 수빈이 대답하는 방법을 까먹은 건지 진지하게 의심했다. 그런 수빈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긴 연준은 온종일 수빈에 대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때마침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에 연준은 빠르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라는 알림이 떠있는 화면이 연준의 눈에 들어왔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연준이 휴대폰 잠금을 풀고 내용을 확인했다.

 

 

* 최수빈  [연준아] 오후 8:47

            [내일 비온대. 장마 시작인가봐.] 오후 8:47

            [우산 까먹지 말고] 오후 8:47

 

 

   아 진짜... 입을 삐죽 내민 연준이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침대에 던졌다. 무슨 일로, 어떤 이유로 수빈이 저에게 이러는지 연준은 알 수가 없었다. 한없이 답답해지는 기분에 연준은 미간 사이를 찡그렸다. 이런 저를 보면 최수빈은 주름 생긴다고 하겠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 최수빈  [답장은 됐으니까 읽기라도 해라 좀] 오후 9:13

            [나는 말했다 비온다고] 오후 9:13

 

 

   아무 의미 없는 수빈의 문자에 연준은 답장을 썼다가 지우기만을 반복했다.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반응을 해야 최수빈이 활짝 웃을지 따위를 고민하며 연준은 머리를 싸맸다. 수빈의 환한 미소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답장을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던 두 엄지손가락에 열기가 몰렸다. 항상 최수빈에 관련된 일에 이렇게 뜨거워지면, 내가 꼭..

 

 

"... 최수빈을 좋아하는 것 같잖아."

 

 

   입 밖으로 내뱉으니 더 낯간지러웠다. 좋아한다니, 내가 최수빈을? 말도 안 돼.

 

   간밤의 일을 떠올리며 멍을 때리고 있던 연준은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화들짝 놀라 다시 더운 여름날의 햇빛 아래로 돌아왔다. 파란 캔이 연준의 옆에 놓여있었다. 뭐야, 누구지. 음료의 주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수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많이 덥네."

 

 

   제 옆에서 음료수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수빈에 놀란 연준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수빈을 쳐다봤다. 저를 향하는 수빈의 시선에 볼에 잔잔하게 남아있던 차가운 감각이 아이러니하게도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여름이라서 그렇다는 말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수빈과 나눴던 대화가 떠돌았다. 내 이상형은... 웃는 게 예쁜 사람이야. 저를 보며 활짝 웃는 수빈을 보며 깨달았다. 

 

   그렇구나. 좋아하게 된 거구나, 내가 너를.

 

 

 

 

* * * 

 

 

 

 

   환상의 체육시간 이후, 연준은 수빈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최수빈이 눈치채지 않았냐고? 설마, 그 최수빈이 눈치채지 못했을까. 제 딴에는 티가 나지 않을 것이라며 뿌듯해하는 연준의 기분을 망칠 수 없었던 수빈은 애써 연준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연준아,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전 날 밤 비가 올 거라는 수빈의 문자 내용은 거짓이 아니었던 건지 분명 점심시간까지는 맑았던 하늘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최수빈 말 듣기 싫어서 우산 안 챙겼는데, 괜찮겠지? 애써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은 연준은 옆에 있던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야 강태현. 우산 있냐?"

 

"없는데."

 

"오늘 비 온다는데 그것도 안 챙겨와?"

 

 

   이건 또 무슨 신종 시비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태현은 연준을 보며 미간 사이를 찌푸렸다. 비 오는 걸 알았으면 니가 챙겨오면 되잖아.. 그리고.

 

 

"나한테 우산은 없지만, 정휴닝은 있다."

 

"야.. 그럼 나는?"

 

"알 바? 최수빈한테 물어보던가."

 

 

   그건 절대 싫어! 최수빈은 안 돼. 다짜고짜 소리를 빽 지르는 연준에 질린 표정의 태현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비를 맞고 가. 맞는다고 안 죽어."

 

 

   됐다. 니한테 무슨 말을 하냐. 씩씩대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 연준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친구농사가 망해도 확실히 폭삭 망한 것 같다. 비오는 날 우산 하나 같이 쓰고 갈 친구가 없다니. 인생의 쓴 맛을 이렇게 이른 나이에 알고 싶지 않았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연준을 의문스럽게 보던 수빈이 저를 피하던 연준의 사정은 무시하고 연준에게 다가갔다. 사정이 뭔 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별로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는 연준을 위해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온갖 생각을 다 하며 연준의 앞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고개를 치켜든 연준과 눈이 마주쳐 당황한 수빈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연준아. 나 방금 콜라 사왔어."

 

"...어쩌라고."

 

 

   개망했다.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그냥 날씨 얘기나 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하며 연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망신이야. 고개를 픽 돌리는 연준에 수빈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슨 얘기를 해야 계속 대화가 진행될까. 곰곰히 생각하던 수빈은 좋은 생각이 난건지 연준을 급하게 불렀다. 야, 최연준. 

 

 

"너 이제 나 관찰 안 해?"

 

 

   수빈의 야심찬 한 마디에 연준은 애써 들었던 고개를 다시 책상에 처박았다. 그 관찰, 이제 필요 없어. 수첩은 애초에 저번주부터 들고다니지도 않았다. 수첩의 내용을 찬찬히 확인할 때마다 최수빈의 모습이,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져서. 수첩을 들고 있는 손에 열이 올라 감히 들고 있을 수도 없어서. 더이상 수빈을 똑바로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응. 이제 안 해."

 

 

   창 밖에는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 * *

 

 

 

 

"아직 많이 오네."

 

 

   설마 하교할 때까지 내리겠냐며 안심하던 연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는 여전히 쏟아졌다. 휴닝의 팔을 잡고 먼저 간다던 태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장난 일 거라고 생각도 안했지만, 그래도 진짜 버리고 갈 줄은 몰랐는데. 툴툴거리며 하늘을 빤히 쳐다보던 연준이 자연스레 수빈을 생각했다. 어제 비 온다고 해줬는데, 괜히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냥 얌전히 우산이나 가져올 걸 그랬나.

 

   장맛비의 꿉꿉한 습기가 연준의 온 몸을 감쌌다. 그래, 잠깐 여름 감기나 앓지 뭐. 심호흡을 두어번 하고 빗속으로 뛰어든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뒤에서 제 발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산을 까먹은 게 나 혼자가 아니구나, 라며 동질감을 느꼈을 땐 더이상 연준의 머리 위에서 비가 떨어지지 않았다. 

 

 

"...비 온다고 했잖아."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입술을 꾹 깨문 연준이 뒤로 돌아봤다. 이제껏 본 적 없는 표정을 한 수빈이 교복도 다 갈아입지 못한 채로 우산을 들고 서있었다. 나한테 왜이래. 수빈의 의중을 알 수 없는 연준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이 와중에도 좋은 건 좋다는 건지 연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귀에 가득 찼다. 수빈을 한 번 째려본 연준이 입을 열었다.

 

 

"...너 나한테 왜 그러는데?"

 

"뭐?"

 

"너 나 좋아하냐?"

 

 

   말했다. 저질렀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물어본 건 왜일까.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그냥, 대답이 듣고 싶어서. 혹시 너도 나를 좋아할까봐. 조금이라도 있는 확률에 도박을 했다. 연준은 품이 조금 남는 바짓자락을 꼭 쥐고는 수빈을 쳐다봤다. 당황한 듯이 흔들리는 수빈의 눈동자가 연준을 향했다. 나는 최수빈을 좋아한다. 그러면 너는? 너는 나를 좋아해? 입을 달싹이며 머뭇거리던 수빈이 입을 열었다.

 

 

"...비 맞고 가면 감기걸려. 우산 쓰고 가."

 

"야 최수빈. 대답이나 해."

 

"나는 집이 가까워서 맞고 가도 되니까,"

 

 

   대답하기 힘들다는 듯 연신 말을 피하는 수빈의 태도가 연준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뜻인가. 잔잔했던 마음에 먼저 돌을 던진 건 너면서. 이렇게 비를 내리게 해서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한 건 최수빈, 너였으면서. 말끔했던 바짓단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울컥한 연준의 감정이 격해졌다. 씨발, 좆같아.

 

 

"내가 비 맞고 가는 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나 좋아해?"

 

"좋아한다고 하면."

 

 

   제 감정에만 신경쓰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수빈의 얼굴이 연준의 눈에 가득 들어찼다. 울기 직전의 축축한 표정에 연준의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입술을 꾹 깨문 수빈이 말을 이었다.

 

 

"...좋아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게이새끼라고 욕할거야?"

 

"...야. 최수빈."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연준은 제 바짓단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수빈의 팔을 잡았다. 지금 잡지 않으면, 어디론가 도망쳐버릴 것 같아서. 두려움에 떠는 수빈이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연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연준아,

 

 

"좋아해."

 

"..."

 

"그런데, 니가 싫다고 하면 그만둘게."

 

 

   애써 입꼬리를 당겨 웃은 수빈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기는 그거면 된다며, 연준이 만족하는 선택이 자신의 선택이라며. 수빈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목소리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수빈이 제게 쥐여줬던 우산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내팽겨친 연준이 수빈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가, 최선의 대답이 그것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해 하지마. 죄지었냐?"

 

"..."

 

"그리고. 고백도 다시 해."

 

 

   푹 젖은 수빈의 얼굴이 연준을 쳐다봤다. 자신이 방금 뭔가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수빈의 시선은 연준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 대형견같은 수빈에 참아왔던 웃음을 터뜨린 연준이 수빈의 얼굴을 문질렀다.

 

 

"니가 무슨 인소 남주냐? 비 맞으면서 처량하게 고백하게."

 

"받아 주는거야?"

 

"알겠으니까. 고백은 다시 해."

 

 

   저보다 조금은 작은 연준을 꼭 끌어안은 수빈은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고마워.. 장미 백송이 준비해서 고백할게. 아 싫어 그러면 진짜 안 받아줘. 따위의 의미없는 대화에도 둘은 뭐가 그리 즐거운 지 연신 낄낄대며 웃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져내리는 비를 맞으며, 둘은 서로를 그렇게 꼭 끌어안았다.

 

 

"...감기 걸리겠다."

 

"그러게."

 

 

   귀에 오르는 열이 감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의 앞에 있는 서로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연준과 수빈에게는 그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그런데 그 여자애는 어떡할거야?"

 

"돈 돌려줬어. 저번주에."

 

"...저번 주부터 나한테 이렇게 할 생각이었던 거야? 응큼해 최연준."

 

 

   다 젖은 머리로 서로를 향해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 누구보다도 빛났다. 더운 여름날의 공기가 둘을 감쌌다. 우산으로 미처 다 막지 못한 빗방울들이 옷에 스며들었다. 연준은 이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도 있을 것이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도 있을 것이다. 더워서 지쳐 쓰러질 때도 있을 것이고 비에 젖어 무거워진 옷에 움직일 수 없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날이더라도, 최수빈만 있으면 된다고, 최연준만 있으면 된다고 둘은 생각했다.

 

 

   둘의 여름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fin.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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