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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ZAN FERRIS WHEEL | 일본 오사카 텐포잔 대관람차

One More Time

w. 블룸 (@BLoom0309)

씨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로 나 혼자 보내는 게 어딨어, 어? 몇 개월 전부터 계획했던 걸 이렇게 홀라당 취소해버리는 게 어딨냐구. 내가 지 없으면 못 올 줄 알고? 아주 그냥, 잘못했다고 싹싹 빌 줄 알았냐? 너, 사람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너 없이도 저기 뭐야, 유니버설? 그래, 거기랑. 세상에서 2번째로 높다는 텐... 텐.. 아무튼 텐뭐시기도 가가지구 싹 다 인스타에 올릴 거니까. 그 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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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여기 날씨는 왜 이렇게 좋냐, 기분 나쁘게.. 그리고, 

 

 

여기는 또 어디야..? •᷄ ɞ•᷅

 

 

 

 

 

 

 

 

 

 

 

[슈짐] One More Time W.Bloom

 

 

 

 

 

 

 

 

 

 

 

지민은 이번 여름방학에 애인과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부로 '전'애인이 되어버린 개새끼와. 방학이 되기 몇 개월 전부터 항공편이니 호텔이니 알아보고, 도쿄가 좋을지 오사카가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다, 유니버설인지 뭔지 하는 곳을 가보고 싶다는 개새끼 때문에 오사카로 결정한 것까지는 좋았었다. 

 

 

문제는... 떠나기 한 달 전쯤부터 시작된 그 새끼의 수상한 행동. 잦은 외박과, 연락 두절, 심지어 볼 때마다 늘어나는 모기 (그 개새끼의 말에 따르면) 에 물린 자국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상한 것들 투성인데,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아마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기대감 때문에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됐던 거 아닐까?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알고 있었는데, 그 개새끼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 정도는 불보듯 뻔했는데, 애써 모른 척한 거지. 그 기대감을 깨고 싶지 않아서. 그냥 여행갈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모른 척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될 거 같아서. 우리가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서 제 앞에서 당당하게 '이따 만날까? 몇 시? 내가 갈게.' 따위의 말을 속삭이는 개새끼의 휴대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와도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자기야, 나 과제 밀린 거 있어서 먼저 가볼게, 연락해.' 따위의 멍청한 말이나 지껄여댄 건데.

 

 

 

"우리 이제 그만하자."

 

"......"

 

"너도 알고 있었잖아, 나 다른 사람 생긴 거."

 

"......"

 

"이 정도 티냈으면 먼저 끝내자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독하더라, 너."

 

"......"

 

"뭐, 어찌 됐든 바로 전 날에 이런 얘기한 건 미안하다. 표 취소하려면 취소해. 위약금 같은 건 내가 물 테니까 내 번호로 계좌..."

 

"...갈 거야."

 

"뭐?"

 

"갈 거라고, 일본."

 

"하... 거길 가겠다고? 너 혼자?"

 

"어. 왜, 돈 돌려받고 싶어?"

 

"...아니, 필요없어. 그럼 이제 연락할 일 없겠네?"

 

"......"

 

"...건강해라, 조심히 잘 다녀오고."

 

 

 

이게, 지민이 청승맞게 한 자리가 빈 커플석을 타고 먼 타지까지 날아오게 된 스토리. 사실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고 있자니 괜히 비참해지는 마음에 조금 훌쩍거린 건 비밀이다. 

 

 

애초에 세워뒀던 계획이 조금이라도 더 싼 밤 비행기를 타고 가서 도착하면 바로 호텔로 들어가 쉬고,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스케줄이 시작되는 거라...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오사카 공항에 도착한 지민은 부랴부랴 택시부터 잡아탔다. 거기서부터 고난이 시작될 줄은 몰랐지만.

 

 

 

"어... 와타시... 와타시.. 가고 싶다가 일본어로 뭐지..?"

 

"どこに仕えてきて差し上げましょうか? (어디로 모셔다 드릴까요?)"

 

"네...? 저 여기.. 이 호텔로 가야 하는데요.."

 

"携帯を見せてください。(휴대폰 좀 보여주세요.)"

 

"이거..? 이거요? 휴대폰이요? 아, 휴대폰 보여달라고... 여, 여기요.."

 

 

 

지민은 온갖 손짓발짓을 다 해가며 어렵게 도착한 호텔에서도 또 한바탕 현란한 보디랭귀지를 뽐내고 나서야 겨우 체크인을 마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체크인한 방에 도착한 지민은 내내 짐짝처럼 끌고 다니던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던져둔 채 방 한가운데 놓여있는 킹사이즈 침대 위로 쓰러졌다. 

 

 

'여기 야경이 진짜 예쁘대. 내가 여기 잡으려고 오늘 하루 종일 어플만 보고 있었잖아.' 개새끼가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던 야경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별 감흥이 없었다. 걔가 보고 싶어한 거지 내가 보고 싶어했나. 여기도, 걔가 오고 싶어했지. 내일 갈 유니버설 어쩌구도. 내일 모레 가기로 했던 곳도. 다 그 새끼가 가고 싶어한 곳인데. 나는 그냥... 걔랑 여기 오고 싶었던 것뿐인데.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러니까, 나 사랑하는 사람이랑은 처음 와봐! 이런 처음이 아니라 진짜 처음. 지민의 '인생'에서 첫번째 해외여행. 해외는커녕 제주도도 안 가본 지민이 일본을 와봤을 리가. 여권도 한 달 전에 받은 새 건데. 그래서 더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너무 들떠서, 제 첫 해외여행을 이대로 망치기 싫어서. 그런데... 결국 망쳐버렸네, 네가.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슬금슬금 떠오르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던 지민이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제 볼을 두어 번 착착 두드렸다. 아니야 박지민, 우울해하지 말자. 걔 없이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가면 되지, 안 그래? 지금은 잘 먹을 수도 잘 놀 수도 없으니까 일단은... 잘 자자.

 

.

 

.

 

.

 

.

 

.

 

그리고 그 다음날, 지민의 전애인조차도 지민이 혼자 일본을 간다 했을 때 걱정 아닌 걱정(?)을 한 이유가 바로 여기서 드러났다. 다름이 아니라 지민은...

 

 

 

"이상하다... 분명 여기 앞이라고 했는데.."

 

 

 

엄청난 길치라는 것. 목적지인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서 이렇게 엉뚱한 곳만 골라 가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벌써 30분째 같은 자리만 뺑뺑 돌던 지민이 지나가는 현지인을 붙잡고 다시 한 번 현란한 보디랭귀지를 뽐낼 것인가, 아니면 오늘 하루가 걸리더라도 끝까지 혼자 찾아볼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 때,

 

 

 

"아... 스미마셍.. 유니버설? 유.. 유니버서르 스튜디오?"

 

"何ですって? (뭐라고요?)"

 

"하아... 됐습니다. 가던 길 가십쇼, 네. 스미마셍, 스미마셍.."

 

 

 

지민을 구원해줄 구세주가 나타났다. 데스티니- 지민의 머릿속에서 언젠가 티비에서 들었던 노래가 연속재생됐다. 비록 구세주라 하기에는 휴대폰을 들고 방황하는 꼴이 딱 2분 전 지민의 모습을 보는 듯했지만, 그래도, 말 안 통하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말이라도 통하는 바보(?)가 낫겠지, 그럼그럼. 정작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던 지민이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칼을 쓸어넘기더니 성큼성큼 걸어가려는 남자를 다급히 불러세웠다. 

 

 

 

"저기요!"

 

"...저요?"

 

"그럼 여기서 뒤 돌아볼 사람이 당신 말고 누가 있는데요."

 

"...뭡니까? 초면부터."

 

"아... 그, 다른 게 아니라 혹시 혼자 오셨으면... 같이 다니면 어떨까.. 해서요.."

 

"제가 왜요?"

 

"같이 다니면 좋잖아요, 한국인끼리! 말도 잘 통해서 답답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은 막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다닐 텐데 심심하지도 않구. 또, 또... 길.. 도 같이 찾을 수 있고!"

 

"......"

 

 

 

제 목소리를 못 들은 건지 아님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눈 앞에서 사라지려는 남자의 팔을 겨우 잡아 돌리자, 딱 봐도 '나 지금 기분 겁나 더러워요' 하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날카로운 얼굴에 살짝 움츠러들긴 했다. 오우 표정 한번 겁나 살벌하네... 멀리서 봤을 땐 민숭맨숭해 보였는데.. 그래도 이 먼 곳까지 와서 국제 미아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지민은 고민에 빠진 남자를 보며 회심의 일격을 던졌다. 

 

 

 

"저, 저 돈 많아요. 혹시 돈 부족하시면 제가..! 내드릴게요오.. 네?"

 

 

 

결국 박지민표 애교까지 나왔다. 말꼬리 늘이기. 물론 통할 가능성이 있는(지민을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나 애교였겠지만. 어쨌든 메인은 애교가 아니라, '돈'이었다. 돈.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넘어올 수밖에 없을걸?

 

 

 

"...가죠."

 

"네..? 어디를.."

 

"어차피 그 쪽도 유니버설 가는 거 아니에요? 저희 둘이 있어봤자 못 찾을 거 같으니까, 택시 타고 가자고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한참을 고민하다 먼저 앞장서 걷는 남자의 등짝을 바라보며 속으로 예쓰!를 외치던 지민이 '아, 빨리 와요.' 저를 재촉하는 짜증섞인 목소리에 헐레벌떡 달려가 남자의 옆에 섰다. 생각보다 화가 많으신 분이네.. 뭐, 그래도 계속 보니까 쪼끔 내 스타일인 거 같기도 하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 유니버설 가는 거."

 

"뭐.. 아까 보니까 같은 곳만 뺑뺑 도시던데 말 다 했죠. 택시 왔다, 먼저 타요."

 

"아... 감사합니다. 저, 그럼 택시비는.."

 

"그 쪽이 내야죠."

 

"...네?"

 

"그 쪽이 내주신다면서요. 제가 돈이 별로 없어서."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이 싫어 아무 말이나 늘어놓던 지민의 입이 꾹 다물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 모든 게 다 언짢아 보이던 남자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턱을 괸 채 창 밖을 내다보며 자꾸 피식거렸다. 아까 내 스타일이라고 했던 거 취소. 아니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어?! •᷄ ɞ•᷅

 

 

 

 

 

 

 

 

 

 

 

"이런 게 정말 재밌습니까?"

 

"그럼요, 여기까지 왔는데 있는 거 다 타보고 가야죠. 아, 저거 타고 나서 한 번 더 탈까요?"

 

"아... 아뇨, 아뇨. 사양할게요. 속이 좀 안 좋아서.."

 

"윤기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보기보다 겁이 많으시네요."

 

"...저거 타러 가시죠."

 

 

 

바로 코 앞이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도착해 윤기 몫의 티켓까지 끊어준 지민은 보기 드문 저기압 상태였다. 2년 사귄 애인과 오기로 했던 여행을 헤어진 다음날 와서도 긍정적이던 지민이 저기압 상태라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걷잡을 수 없는 하이 텐션이 된 지민이다. 놀이 기구가 재밌어서? 아니,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주제에 또 자존심은 겁나 세가지구 당치도 않는 고집부리는 윤기가 재밌어서. 좀... 귀여운 거 같기도 하구..

 

 

 

"저기 앉아서 좀 쉴까요?"

 

"왜요, 저거 타고 싶다면서요."

 

"됐어요, 저도 힘들어서 쉬고 싶어요. 목도 좀 마르고."

 

"...가서 앉아있어요. 음료수 사올게요."

 

"오- 윤기 씨가 사는 거예요?"

 

"저 음료수도 못 사줄 정도로 거지 아닙니다."

 

"아니, 지금까지는 다 얻어드시길래."

 

"장난 좀 쳐본 거죠... 나중에 따로 다 갚을 거예요."

 

"알았어요 알았어, 저는 레모네이드 같은 걸로 부탁드려요. 없으면 아무거나..."

 

 

 

이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스레 콧등을 찡긋해 보이던 지민이 습관처럼 레모네이드를 찾았다. 그냥 평소에 즐겨 마시는 음료였다. 카페인이 들어간 건 별로 안 땡기고, 다른 과일 음료는 너무 달기만 하고. 딱, 적당히 달달하다 물릴 때쯤 혀 끝을 감싸는 상큼함이 좋아서. 그러자,

 

 

 

"...네?"

 

 

 

눈에 띄게 움찔거리며 되묻는 윤기 때문에 저가 더 깜짝 놀란 지민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네? 왜요?"

 

"아... 아뇨, 아니에요. 얼른 사올게요." 

 

 

 

그런 지민을 빤히 쳐다보던 윤기가 고개를 내젓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왠지 모르게 허둥거리는 듯한 윤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지민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 사람은 또 왜 저러지...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나갔나..?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은 거 같더니... 앞으로는 저런 무서운 거 태우면 안 되겠네.. •᷄ ɞ•᷅

 

 

 

 

 

 

 

 

 

 

 

"윤기 씨는 이제 어디 갈 계획이었어요?"

 

"저 신사이바시 한 번 가봤다가.."

 

"어? 저돈데."

 

"저녁은 간단하게 꼬치나 먹고.."

 

"어? 저돈데."

 

"밤에는 텐포잔인가..? 그, 관람차 타러 가려고 했죠."

 

"어? 저돈데."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조금? 근데 진짜예요. 한국인들이 블로그니 뭐니 인터넷 검색해보고 와서 가는 데가 뭐 얼마나 다르겠어요? 다 거기서 거기지."

 

"그래서 지금, 같이 가자는 거죠?"

 

"흐흥- 네. 보기보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윤기가 사온 레모네이드를 홀짝거리던 지민이 눈을 살풋 접어 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에 잠시 멈칫하던 윤기도 이내 피식, 웃어 보이며 손을 뻗어 지민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매만진다.

 

 

 

"여기, 나뭇잎 붙어 있어서요."

 

"아... 감사해요."

 

"뭘요. 다 드셨으면 이만 일어날까요? 이제 슬슬 이동해야 할 거 같은데."

 

"음.. 가기 전에 저거 한 번만 더 타면 안 돼요?"

 

"저거... 뭐..요..?"

 

"저기 저, 위에 달린 거요."

 

"그, 그래요 그러면..."

 

"...장난이에요, 장난. 윤기 씨는 장난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이제 장난도 못 치겠네요."

 

"하아... 진짜.. 저 좀 그만 놀려요 지민 씨.. 심장 떨어질 거 같아요.."

 

"으음... 윤기 씨 하는 거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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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지민 씨."

 

"네?"

 

"저랑 왜 같이 다니시는 거예요? 저 말수도 별로 없고...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도 아닌데.."

 

"음... 그거야 당연히.."

 

"......"

 

"같은 한국인이니까?"

 

"...정말 그게 다예요?"

 

"네, 윤기 씨도 알잖아요. 윤기 씨 재미 없는 거."

 

"......"

 

"...이것도 장난인 거 알죠? 당연히 윤기 씨가 편하고 좋으니까 같이 다니자구 하는 거죠. 저 어색한 거 싫어해요."

 

"...솔직히 방금 껀 좀 상처 받았어요."

 

"미안해요, 윤기 씨 얼굴에 다 드러나는 게 귀여워서. 이젠 진짜 안 놀릴게요, 약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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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씨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하나 사요, 제가 사줄게요."

 

"됐어요, 지금까지 많이 받았는데요 뭐."

 

"어? 지금까지 받은 건 다 돌려주시기로 했잖아요. 제 돈 쓰려면 지금밖에 없을 텐데?"

 

"...저 비싼 거 사도 돼요?"

 

"당연하죠."

 

"すみません。ここで一番高い服が... (실례합니다, 여기서 제일 비싼 옷이...)"

 

"아, 그건 반칙이죠. 반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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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고프다, 우리 슬슬 저녁 먹을 때 되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뭐 먹을까요 우리. 지민 씨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사케 한 잔해야죠."

 

"...지민 씨 술 셉니까?"

 

"좀 먹어요. 윤기 씨는요?"

 

"저도 적당히 먹어요."

 

"그럼 됐네요. 갑시다, 술 마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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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서 혼자라도 왔어요. 그 개새, 아니, 전애인 때문에 제 첫 해외여행을 망치는 건 좀... 아쉽잖아요."

 

"그렇죠."

 

"그나저나 윤기 씨는, 어쩌다가 혼자 오게 된 거예요? 원래부터 혼자 오려고 했어요?"

 

"...저도, 원래는 애인이랑 오려고 했었어요."

 

"아..."

 

"그런데... 떠나기 일주일 전에 통보하더라고요. 네가 정말 날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벽에 대고 얘기하는 거 같았대요."

 

"......"

 

"그래서 저도 그냥... 혼자 와버렸어요. 전애인 때문에 여행을 망치는 건 좀.. 아쉽잖아요, 그죠?"

 

"그, 그렇죠."

 

"......"

 

"......"

 

"......"

 

"...저.. 윤기 씨, 우리.. 짠이나 할까요? 기분도 꿀꿀한데, 차인 사람들끼리."

 

"...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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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어? 나아... 텐뭐시기 그거 타러, 가야 되는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무슨 관람차예요. 내일 가요, 내일."

 

"우웅... 내일은 윤기 씨가 없잖아요.."

 

"...내일도 같이 있어줄게요, 아까 번호 받은 거 있죠? 내일 일어나면 전화해요, 그러니까 오늘은,"

 

"히, 근데 오늘 가고 싶어요. 지금 갈래요 나."

 

"하아..."

 

 

 

사케 한 잔이 한 병이 되고,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세 병이 되고. 지민이 좀 먹는다는 말도, 윤기가 적당히 먹는 말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지민이 윤기가 한 잔 마실 때 저 혼자 두 잔, 세 잔 연달아 마신 게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이 되었을 뿐. 

 

 

얼굴이 빨개진 것 빼곤 비교적 멀쩡한 윤기와 다르게 이유없이 흐흐 웃으며 살짝 비틀대던 지민은 술버릇인지 뭔지, 자꾸만 윤기의 팔을 잡아끌며 안겨들려고 했다. 덕분에 윤기 혼자 힘들어서 끙끙 앓았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술에 취해 힘 하나 없이 축 늘어져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무거워진 지민을 겨우 택시에 태우고 텐포잔으로 가는 길. 

 

 

 

"으응... 윤기 씨..."

 

"네."

 

"윤기 씨이.."

 

"...하아.."

 

 

 

비스듬하게 꺾인 머리통이 자꾸 택시 창문을 쾅쾅 박아대길래 제 어깨 쪽으로 기대여 놨더니 이번에는 그 단풍잎 같이 조그만 손이 허리께를 파고든다. 순간 흡, 아랫배에 힘을 바짝 준 채 헛숨을 들이킨 윤기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제 옆구리를 더듬는 지민의 손을 떼어내려 해도, 술 취한 성인 남자의 악력이란 윤기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어서. 그래서, 그냥 놔뒀다. 어쩔 수 없잖아. 어찌저찌 떼어내도 다시 만지면 말짱도루묵인걸. 그러다 또 한 번 깊은 한숨 푸욱. 하... 민윤기 성격 많이 죽었다 진짜.. 

 

 

솔직히, 술에 취할 대로 취한 사람의 주정 따위 못 들은 척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근데 난 왜...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 사람을 그 곳에 데려가려 하는 건지.

 

 

뻣뻣한 정자세로 앉아서 앞만 바라보던 윤기가 슬쩍 고개를 틀어 제 어깨에 얹혀 있는 작은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제 어깨에 눌려 볼록 튀어나온 볼과, 분홍빛이 도는 입술. 남자치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얀 피부와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오렌지 향. 그리고... 그녀가 즐겨 마시던 음료를 좋아하는 사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민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인상이 더럽다면 더러웠지 절대 먼저 말 걸기 쉬운 상은 아닌 제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아무렇지 않게 합행을 제안하고. 또...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이상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일주일 전, 제 휴대폰 너머로 담담하게 들려오던 그녀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네가 정말 나를 좋아한 적이 있긴 하니..? 윤기야... 나 이제 너무 힘들어, 지쳐. 지쳐서 못 하겠어. 너랑 같이 있으면... 더 외로워져.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야. 미안.. 우리 이제... 그만하자.'

 

 

무슨 꿈을 꾸는지 그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리는 지민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윤기가 주춤주춤 손을 들어, 말랑해 보이는 지민의 볼을 살살 쓸어본다.

 

 

불그스름한 홍조가 오른 지민의 볼은 보이는 것만큼이나 부드럽고... 무척이나 따듯했다.

 

.

 

.

 

.

 

.

 

.

 

"왜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아뇨... 그냥.."

 

"그럼요? 왜 그러고 있어요, 주인 잃은 강아지마냥. 추워요?"

 

"아니, 그게 아니라.."

 

"......"

 

"...여기서 이런 말하면 진짜 이상해질 거 아는데,"

 

"뭔데요?"

 

"...아, 아니에요. 안 할래요. 저 너무 취한 거 같아요."

 

"뭐예요,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안 놀릴게요, 말해봐요."

 

 

 

기껏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텐포잔까지 겨우 데려와 태워놨더니... 보라는 경치는 안 보고 자꾸 제 눈치를 보며 어딘가 불편한 듯 낑낑거리길래, 화장실 가고 싶어요? 짓궂게 웃으며 장난을 건네봐도 고개만 도리도리. 추운가 싶어서 옷을 벗어주려 해도 도리도리. 그렇게 한참을 밀당하듯 침묵을 유지하다 웅얼거리며 한다는 말이,

 

 

 

"키스...하고 싶어요, 지금 여기서."

 

 

 

이렇게 당돌하고 깜찍한 말일 줄은 몰랐지. 턱을 괸 채 바깥을 바라보던 윤기의 시선이 지민에게로 꽂힌다. 그 진득하고 까만 눈동자를 용기내어 마주치던 지민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눈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가슴팍으로, 가슴팍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바닥으로. 결국 고개를 푹 숙여버린 지민이 입술을 꾹 깨물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읍.."

 

"......"

 

 

 

두 사람이 타고 있던 관람차가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그와 함께 지민의 입술을 덮은 윤기의 입술. 깜짝 놀라 동그래진 지민의 눈을 제 손으로 감겨주고, 술 기운으로 뜨끈한 볼을 지나, 매끄러운 턱 밑을 살살 간지럽히며 혀를 내어 그 상태 그대로 굳어있는 입술을 할짝이자 눈에 띄게 움찔거리는 지민. 괜찮다는 듯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잡아 제 목에 둘러주면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아, 막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술을 벌려낸다.

 

 

맞물린 입술이 뜨거웠다. 아니, 입술뿐만 아니라 그냥 그 사람과 닿아 있는 모든 숨결이, 모든 살갗이 데일듯 뜨거웠다. 윤기의 목을 감싸안은 팔에서 심장이 쿵, 쿵 뛰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또 윤기가 잡고 있는 허리며 볼이며... 그냥 온몸이 전기라도 통한 것마냥 찌르르 울려 미칠 것 같았다. 제 볼을 소중하게 쓰다듬는 손길도, 제 이마를 간지럽히는 검은 머리칼도, 코 끝을 스치는 시원한 향도, 그냥, 그의 모든 게 좋아서. 정말 딱,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던 키스였다.

 

 

 

"하아... 흐.."

 

"...뭐가 그렇게 웃겨요?"

 

 

 

 서로의 혀를 옭아매며 끈적한 듯 장난스럽게 나누던 키스가 끝나갈 때쯤, 푸스스 새어나오는 웃음에 지민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떨어진 윤기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지민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의 다정한 손길에 얌전히 제 입술을 맡긴 지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저어보일 뿐이었다.

 

 

 정신없이 서로를 탐하는 와중에도 혹시나 무게 중심이 기울어질까 봐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인 채로 입술만 부비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둘 다 겁은 많아가지구..

 

 

 

"아니, 그냥... 여기까지 와놓고 뭐가 그렇게 무섭나 싶어서요."

 

"......"

 

 

 

솔직히 지민이나 윤기나, 몇 년 사귄 애인과 헤어진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처음 만난 사람과 하루 만에 입술을 부빌 만큼 대담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니, 못 됐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래도... 이미 벌어질 일은 벌어졌다. 이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키스까지 찐-하게 나눠놓고는 이대로 모른 척 빠이빠이 하자구? 싫어, 난 그렇게 안 해. 아니, 못 해! 

 

 

...근데 이 사람은 내가 먼저 잡지 않으면.. 진짜로 도망가 버릴 거 같은데.. 윤기 씨... 보기보다 훨씬, 훠얼씬!

 

 

겁쟁이니까.. •᷄ ɞ•᷅

 

 

 

"윤기 씨."

 

"네."

 

"우리... 다시 한 번 해볼래요?"

 

"......"

 

"나도 싫어요. 지겨워요, 사랑 같은 거. 근데.."

 

"......"

 

"당신이랑은 다시 해보고 싶어요, 그 지겨운 거."

 

"......"

 

 

 

저질렀다, 저질러버렸다. 박지민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술만 조금 덜 취했어도, 아니, 아니. 방금 나눈 키스가 조금만 덜 좋았어도... 이렇게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두 눈까지 질끈 감은 채 윤기의 대답을 기다리던 지민이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을 슬쩍 들어올렸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쳐오는 짙은 눈빛에 흠칫 놀라 바로 고개를 푹 떨궈버렸지만. 뭐야, 뭐야... 눈 뜨자마자 마주칠 정도면 계속 보고 있었던 거면서.. 왜 대답을 안 해주는 거야, 헷갈리게.. 싫으면 싫다고 바로 말하면 되지, 자꾸 기대하게 되잖아.. •᷄ ɞ•᷅

 

 

 

"뭐... 싫으면 말고요."

 

 

 

지민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윤기와,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지민. 그 어색하고도 불편한 관계 속에서 아까는 쪼끄맣게 보이던 건물들이 훌쩍 가까워지자, 지민은 퉁명스러운 한 마디를 툭 던지고는 내릴 준비를 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디 가요."

 

"내려야죠, 다 왔는데."

 

 

 

몇 번이고 옷매무새만 다듬던 지민이 점점 다가오는 하차장에 체념하곤 몸을 일으키려 하는 그 때, 불쑥 튀어나온 하얗고 다부진 손이 지민의 팔을 다급히 붙잡았다.

 

 

 

"...한 번 더 타요. 아직.."

 

"......"

 

"안 들었잖아요, 내 대답."

 

 

 

친절하게도 문까지 열어주며 내리라고 손짓하는 직원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윤기는 '저희 한 번만 더 탈게요, 원 모어 타임. 플리즈 원 모어 타임, 오케이?' 온갖 손짓발짓을 다 해가면서 기어코 둘이 타고 있던 관람차 문을 다시 닫았다. 그 모습이 꼭 어젯밤 체크인을 하던 제 모습 같아 작게 키득거리던 지민은 윤기와 눈을 마주치자 아닌 척 시치미를 뚝 떼곤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어차피 늦은 시간이라 대기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 다행이지, 이게 무슨 민폐야.. 정신 차려 박지민, 너 아직 화났다... 화난 거다.. •᷄ ɞ•᷅

 

 

 

"그래서, 뭔데요? 그 쪽 대답은."

 

"...꼭 말로 해야 압니까?"

 

 

 

기껏 내리려는 사람 잡아놓고는 정상이 가까워지도록 아무 말도 없는 윤기에 답답해진 지민이 또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자 창 밖만 쳐다보던 윤기가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리고,

 

 

 

"하, 말도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무슨 독심술사도 아니ㄱ.."

 

 

 

제 말에 그 동그란 눈을 치켜뜬 채 툴툴대는 지민의 입술을 또 한 번 제 입술로 덮어버린다. 만난 지 하루 만에 나누는 두 번째 키스.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난 지민이 입술을 꾸욱 다물고 있자, 애가 타는지 주인잃은 강아지마냥 낑낑거리고 난리도 아니다. 처음 키스하기 전 지민의 모습처럼. 아, 지민 씨.. 입술 좀 열어줘요, 네? 지민 씨..

 

 

흥, 그러니까. 이렇게 홀라당 넘어올 거면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긴 왜 부렸대? 바보같이... •᷄ ɞ•᷅

 

 

 

"다신 안 그럴 거죠?"

 

"네? 뭐를.."

 

"아, 진짜 답답하게. 나 기다리게 하고, 쓸데없는 고집부리고. 또 그럴 거냐구요."

 

"아, 아뇨... 안 그럴게요."

 

"흐음... 진짜죠?"

 

"그럼요."

 

"...됐어요 그럼, 이리 와요."

 

"네?"

 

"키스, 다시 안 할 거예요? 그러고 끝이에요?"

 

"...아, 지민 씨 진짜..."

 

"왜요, 싫어요? 싫으면 말고요."

 

"아뇨... 좋아요, 너무 좋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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