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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HOLM |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의 기억

w. 청학 (@Chunghak413)

- 이 이야기는 모두 허구이며 글에 나오는 모든 것은 픽션에 맞춰진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2차 수정, 타 커플링으로 바꾸는 등은 절대 금합니다.
- 오타는 애교로 봐주세요!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닐고 있는 이 거리는.

"하, 이제야 여행 온 기분이 나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한 거리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학점이니, 취업이니, 학교 행사니, 여기저기 쫓아다니던 대학생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휴학계 쓰려고 하는데요..'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나만의 삶을 살지 못 했던 나에게 이때까지 수고했다며, 스스로에게 내리는 큰 선물을 받으려고 휴학계를 썼다. 갑작스러운 휴학 신청에 과동기들은 물론, 교수님들까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랑곳 않고 '어떻게하면 알차게 쉴 건가' 에 대한 궁리만 해온 나였다. 그러다 해외 여행을 가보는게 어떠냐는 사촌누나의 말에 '옳거니' 싶었던 나. 이래저래 검색해보던 나의 눈에 띈 곳이 바로 이 곳, 스웨덴이다.
스웨덴 중에서도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이자, 많은 섬이 있어서 북방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떨어진 나. 처음 가는 해외 여행이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촌누나와 부모님의 도움으로 컴퓨터 속 이미지에서만 보던 풍경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스웨덴에 떨어진지 이틀 째인 나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돌돌 돌려 먹고 나와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부른 배를 안고 잠시 산책하던 나. 그냥 걷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이 곳이 나는 그렇게도 마음에 들었다. 어딜봐도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것은 물론, 기품있어서 예쁜 건물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물이 흐르는 강, 화창한 날씨까지 더해져 모든게 완벽하다. 그런데 다만..

"여긴 진짜 일주일 잡고 와야겠네.."

뭔 볼거리가 이렇게 많아?! 완벽할 수록 볼거리도 많다. 기분 좋게 거리를 맴돌던 것도 잠시, 힘들다며 멈춰선 나는 인상을 구겼다. 그런데 하필 인상을 구기며 무심코 둘러보는 시선끝 풍경은 또 좋다. 그에 앓는소리를 내기도 잠시, 저멀리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크게 키우는 나다. 이 나라 사람들은 다 모델이야? 그냥 발길이 닿는 곳이 어디든 가고 있던 나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사람들 모두 키크고 적당히 마른데다, 얼굴이 핸섬하기까지 하다.

"으으, 불공평해.."

왜인지 모르게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아서 다리에 힘을 주고 당당하게 걸어가려는데, 저멀리 아까 저를 지나쳤던 사람들과는 달리 키가 작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생긴 것도 동양인이네?"

혹시 한국 사람이려나? 그 순간, 외국에서 만나는 조국 사람이 유독 더 반갑다는 말이 무슨 말일지 알 것만 같았다. 호기심에 그를 바라보는데, 때마침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나 그 많은 사람들 속 단 둘만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고. 그래서 오로지 서로를 바라보던 적이 있느냐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나와, 어딘가 많이 언짢은 듯 미간을 살짝 좁힌 그. 하지만 미간을 좁힌 와중에도 나의 눈동자만을 올곧게 바라보는 그였다. 그만을 바라보며 홀린 듯 발걸음을 뗀 나, 곧 용기내어 남자에게로 다가가 말을 붙였다.

"저기요."
그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당황스럽지 않은 듯 눈을 감았다가 뜨는 남자에 나는 싱긋 웃으며 물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그에 남자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의 반응에 왜인지 너무 반가웠다. 너무 반가웠던 나는 굳이 말해도 되지 않을 TMI(Too Much Information)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와, 정말요? 저도 한국인인데!"
"..그러세요."
"네!"

밝게 대답하는 나에 입꼬리를 싱긋 말아올린 그가 내 뒤쪽에다 눈을 두다 말고, 다시 나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관광오신 거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요."

그에 당황한 내가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다 말고 '아!' 하며, 들떠서 커진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여기 사세요?"
"네. 꽤나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라, 누가 관광객이고 누가 현지인인지 알 수 있어요."

남자의 말에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나. 그런 나를 보던 남자가 '아, 맞다' 라며 갑자기 한 손을 내게 내밀어보였다. 그에 지금 뭐하냐는 듯 멀뚱히 내밀어진 그의 손을 바라보자, 남자가 헛기침을 두어번 내뱉으며 내게 말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민윤기. 나이는 26이고.

"직업은..."

갑작스레 말을 멈추는 남자에 '민윤기' 라는 그의 이름을 몇 번 곱씹어보던 내가 의아하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아까와는 달리 씁쓸하게 웃어보이며 자신의 직업이 '평범한 회사원' 이라고 했다. 씁쓸해보이는 그의 표정이 마음 속 한 구석에 걸렸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나도 맞받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박지민이에요. 나이는 24이고, 대학생이에요."

나의 소개에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잠시 주변을 훑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의외의 말을 꺼낸다.

 

"딱히 가이드가 없으시면 제가 가이드해드릴까요?"
"..가이드요?"
"네, 아무래도 현지에 있는 사람이 소개해주는게 더 재미있고 흥미롭지 않을까요?"

제가 지민 씨라면 그럴 것 같은데. 그에 나는 잠시 온몸을 굳혔지만, 곧 그것을 훌훌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윤기 씨가 그렇게 얘기하니 꽤나 흥미로워졌어요."

현지인이 가이드해주는 관광에 대해서요. 나의 말에 윤기 씨가 입꼬리를 한껏 말아올려,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던 나는 심장 한 켠이 간지러운, 또 한 편으로는 몽글몽글해서 당장이라도 두둥실 떠오를 것만 같은 걸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윤기 씨의 얼굴을 보는데, 윤기 씨가 나의 손목을 잡고선 특유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가시죠."

그 목소리가 유독 귓가를 울리는 건 기분탓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가시죠' 라는 말이 뇌리 속에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윤기 씨와 함께 나란히 보는 스웨덴의 스톡홀름. 아까 보았던 아기자기하고도 색감이 예쁜 집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과, 그 앞에 유연하게 흐르고 있는 강이 있는 거리를 걸으며 간 곳은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이었다.
시립도서관 내부에 들어간 나는 놀랄 새도 없이 입이 딱 벌어지는 걸 느꼈다. 영화 해리포터에서나 나올 법한 규모의 도서관이었다. 돔 형태로 되어있어서 위에는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게 했고, 실내 내부가 굉장히 넓었다.

 

"우와.."

내부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만 내뱉는 나를 보던 윤기 씨도 내부를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얼굴을 나에게로 가까이한다. 어어, 너무 가까워지는데?! 놀라서 목을 뒤로 빼는 나를 보며 싱긋 웃은 윤기 씨가 고개를 틀어, 귓속말을 해온다.

 

"이 주변에 유명한 카라멜 집이 있는데. 가보실래요?"
"아아..."

네, 그래요. 우물쭈물 대답하는 나의 대답을 용케 들은 건지, 얼굴을 저멀리 하는 윤기 씨였다. 와, 사람 놀라게 갑자기 그러면 반칙이지. 깊은 숨을 허공에 내뱉으며 윤기 씨를 따라 도서관에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윤기 씨가 몸을 틀어 나를 마주했다.

 

"..왜요?"

갑자기 왜 이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데, 윤기 씨가 또 한 번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나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소근소근 작게 얘기하는 말.

"얼굴 빨개졌어요."

..아. 왜인지 얼굴이 더 화끈거린다. 무언가 들킨 것마냥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붉게 달아오르는 나의 얼굴을 즈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던 윤기 씨가 나의 옆에 서서, 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감싸고는 여기에서 유명하다던 카라멜 집으로 향한다. 그 와중에도 나는 빨리 뛰는 심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선 땅만 보며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서 도착한 카라멜 집은 꽤나 아기자기 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카라멜들은 모두 선물하기 좋게 포장이 되어있었고, 고심 끝에 결정한 카라멜들 중 하나를 입에 쏙 넣은 나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달콤함에 눈을 키웠다. 그런 나를 보던 윤기 씨가 물었다.

"맛있어요?"

그에 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진짜 맛있어요!!"

그런 나의 반응에 윤기 씨도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행이네요' 라고 했다. 방금 전까지 강렬한 달콤함을 뽐내며 입 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던 카라멜 탓인지, 나와 윤기 씨 사이의 분위기에서 단내를 맡을 수 있었던 나다.
그 이후에 박물관도 가보고, 로젠달 가든이라는 카페도 간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강가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윤기 씨와 했던 대화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잠시 여기 앉아서 쉬었다 갈까요?"
"좋아요!"

나란히 앉아서 햇빛을 받아 보석을 뿌려놓은 것 같은 강을 바라보던 나와 윤기 씨. 그렇게 정적이 꽤나 흘렀을까, 윤기 씨가 나에게 물었다.

"지민 씨는 왜 이곳으로 여행왔어요?"
"음..."

눈알을 도르륵 굴리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저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어요. 맨날 학점, 취업, 인간관계 등등.."
"..."
"온통 스트레스 받는 것들 투성이었거든요."

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어보이는 나를, 윤기 씨는 계속해서 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정적이 우리 둘 사이에 내려앉았을 때, 윤기 씨가 정적을 깨고 나왔다.

"그래도 멋있네요."
"..뭐가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이 먼 곳까지 온 거 말이에요."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텐데.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부끄럽고 머쓱해져서 피식 웃어보였다. 내가 웃는 걸 보니, 윤기 씨도 마냥 웃긴 것인지 덩달아 웃어보였다. 그러다 몇 분 뒤에 윤기 씨가 꺼낸 이야기.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 말에 나는 무엇이 문제냐는 것 마냥, 어깨를 으쓱이머 가볍게 얘기했다.

"그럼 들어가요."
"..못 들어가요."
"왜요?"

나의 되물음에 윤기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그 말에 나는 아마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찌푸렸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반응에 윤기 씨가 푸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나는 지금 웃음이 나오냐며, 재밌냐고 쏘아붙이자 눈꼬리에 눈물 방울을 매단 채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 씨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나서야, 윤기 씨가 겨우 입을 뗐다.

"아, 농담이에요."
"..이제 와서요?"

얄미워서 노려보는 나를 그저 웃으며 바라보던 윤기 씨가 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꽤나 자상한 어투로 말했다.

 

"미안해요."
"..."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말해줄게요."

지민 씨니까. 그에 마음 속 무언가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걸 느끼며 시선을 바닥에다 꽂았다. 그런 나의 턱을, 머리 위에 올려두었던 손으로 살짝 쥐고선 자신을 보게 만든 윤기 씨가 곧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열정적이게 입맞춤을 하는 것도 아닌, 잠시 입술을 데고 있었던 것 뿐인데 심장이 미치도록 뛰어오른다. 그렇게 잠깐의 입맞춤을 한 우리. 윤기 씨가 입술을 떼고 나와 눈을 맞추었다. 부끄러워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내가 곧 윤기 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어보였다. 그에 윤기 씨도 덩달아 웃었었지, 아마.
그렇게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하던 우리. 그런 우리에게 헤어짐이라는 것이 성큼 다가온 건,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후였다.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윤기 씨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양손으로 나의 어깨를 잡는다. 표정이 너무나도 안 좋아보여, 조심스레 윤기 씨를 불렀다.

"..윤기 씨."
"..지민 씨."

이제 가요. 그 말이 섭섭하면서도, 왜인지 정말 가야할 것만 같아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나란히 걸어서 도착한 길은 오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던, 사람이 많이 다니던 그 길이었다. 그 길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던 우리. 왠지 직감적으로 이게 마지막일 것이라는 걸 느낀 나는 불안한 듯 물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

그에 윤기 씨는 살짝 웃어보이지만, 어딘가 많이 아프기도, 슬퍼보이기도 한 그런 웃음이었다. 그러고 내뱉는 한 마디는.

 

"글쎄요."

하지만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사람들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

 

얼마 후,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으로 치면 하루 전에 은근 장문인 편지 하나가 우리 집으로 도착했다. 보낸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한 통의 편지를 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내었다.

 

To. 지민 씨에게.
한국에는 잘 도착하셨나요? 그날 이후, 저같은 건 잊고 잘 살고 계신가요?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제 마음이 무척이나 아릴 것입니다. 저는 지민 씨가 저 같은 건 하루 빨리 잊어버리고 행복만 했으면 좋겠거든요.
지민 씨, 사실 저는 회사원이 아니예요. 보스에게 지령을 받고 타겟을 찾아 몰래 암살하는 요원입니다. 그렇게도 잔인한 직업을 지민 씨에게는 차마 소개할 수 없더군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해서 돌아다니다, 헤어질 때까지. 제가 계속 주위를 둘러보았을 겁니다. 사실 타겟을 죽이려다 갑작스레 불쑥 나타난 지민 씨에, 저는 의도치 않게 타겟을 암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처음에는 임무를 실패했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지민 씨의 특유의 귀여움도 있고, 한국인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있었고, 타겟을 관찰하는데 혼자 돌아다니면 타겟이 눈치챌 것 같아서 일부러 관광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었지만 지민 씨와 함께 있고 나니, 나중에는 왜 지민 씨가 제 앞에 이제서야 나타났나 싶더군요.
어렸을 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했었어요. 그리고 곧 아버지가 사망하시고 저는 홀로 남겨졌었죠. 그런 저를 아버지의 친구이자, 현 조직보스이신 분께서 거두셨어요. 거둔 후, 스웨덴에서 세력을 키우던 동시에 저는 유명 요원으로 자라게 되었죠. 하지만 요근래에 저의 삶을 찾고 싶어지더군요. 언제까지나 사람을 죽여야하는 제가 싫었어요. 그런데 저와 같이 자신의 삶을 찾으려, 모든 걸 잊고 여행 온 지민 씨가 자신의 이상과도, 자신의 꿈과도 같았어요. 아마 이때 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렇게 저도 잠시 모든 걸 잊고, 지민 씨와 여행온 셈 치고 돌아다니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강가에서 같은 조직 요원이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철수할 것을 손짓하더군요. 그 길로 지민 씨가 위험해질까봐 다급하게 지민 씨를 두고 뛰쳐나왔네요, 제가. 미안합니다.
보스에게 혼나는 내내 머릿속에는 온통 지민 씨가 가득 차있어서 혼나는 줄 알았는데, 혹시 아셨나요? 모르셨다면 꼭 알아주세요. 제가 그만큼 지민 씨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저는 편지를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편지가 지민 씨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니 다음 편지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죄송하지만 하지 말아주세요.
그럼 이 편지를 받는 그 날도,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만 하길, 지민 씨가 걷는 그 길이 어디든 꽃길이 깔려있기를 바라며.
FROM. 민윤기

 

그리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나는 며칠 후,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전화 내용은 윤기 씨가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며칠 내내 울고불며 끼니도 걸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발신번호 표시제한이 어디에서, 누가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국제 전화라는 것이었을 뿐.

©2019 RENDEZVOUS COLLAB by. @EPILOGUE_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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