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의 장소
MYKONOS | 그리스 미코노스
End, And!
w. 이플 (@ipeul1508)
볼빨간 사춘기 - seattle alone
(들으면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냥 헤어질까, 우리. ”
“ 형은 여전히 헤어지잔 소리가 쉽게 나오죠? ”
“ 왜 그러냐, 좀. ”
“ 그래요. 이제 우리 그만해요. ”
나도 지긋지긋하니까. 지민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박차고 나왔다. 민윤기 개새끼.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들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뛰다시피 집에 도착한 지민은 현관문을 닫자마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주저앉음과 동시에 아까부터 참았던 눈물이 자꾸만 흐르자 지민은 체념 한 채 눈을 감았고, 흘러내리는 눈물들을 굳이 닦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우리는, 오늘부로 이 지긋함의 연속인 연애를 끝냈다.
[슈짐] End, And!
언제 잠이 든 건지, 기절을 했던 건지 그대로 현관문에 기대어 있던 지민은 천천히 눈을 뜬 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피려 손에 깍지를 끼는 순간 무언가 불편한 느낌에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면 여전히 예쁘게 빛나는 커플링이 보였다.
“ 하, 진짜. ”
뭐같네. 커플링을 빼낸 지민이 그대로 던지려다 한숨을 쉬고는 신발장 위에 올려두었다. 여전히 빛나는 그 자태에 지민은 괜히 심술이 났다. ...상황파악도 못 하고. 대답 할 리 없는 사물에게 화풀이 한 지민은 제대로 자지 못 해 잠을 청하러 침실로 기어가듯 걸어갔다. 우선 이별의 슬픔은 자고 난 뒤에 생각하자. 전 날 많이 울었던 탓인지, 지민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
“ 다 챙겼나? ”
윤기와 지민이 이별한 지 어엿 반년이 지났을 때였다. 미루고 미뤘던 배낭여행을 이제야 계획하고 준비한 지민은 차근차근 짐들을 챙기며 필요한 지식들을 공부했다. 지민이 갈 곳은 그리스의 미코노스이다. 윤기와 연애 하며 딱 한 번 갔던 곳 이었는데, 그렇다고 윤기 때문에 장소를 정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미코노스의 그 풍경들과 느긋한 풍차들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어서 말이다. 몇 번이고 빠진 짐이 없는지 확인 한 지민은 여권을 챙겨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그 곳에 가면 내가 너를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
*
*
*
길었던 비행을 마치고 미코노스에 도착한 지민은 마찬가지로 택시를 잡아 타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미코노스의 중심 쪽에 위치해있었으며, 현지의 가정집과 별 다른게 없는 곳이었다. 미코노스는 흔히 산토리니라 부르는 곳과 매우 유사한 곳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지민은 그 자리에서 한바퀴 돌며 오랜만에 보게 된 미코노스의 풍경을 눈으로 꼼꼼히 담았다.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지민이 숙소로 들어가 차근 차근 짐을 풀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윤기에 지민은 그때마다 고개를 힘차게 저으며 윤기의 생각을 떨쳐냈다. 창으로 본 하늘의 색깔이 점점 어둑해지자 지민은 짐을 멀리 밀어두고 잠부터 청했다. 시차에 적응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테니 말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지민이 이 곳에 온지 한달이 지났다. 현실감 없는 배경에,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들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시간속에 지민은 꽤나 빠르게 적응했다. 어쩌면, 그 아픈 시간들 속에서 도망쳐 나온 것 일수도 있다. 평소와 다름 없이 지민이 장을 본 뒤 교회들이 몰려 있는 골목을 지나던 중이었다.
" Ελάτε οποτεδήποτε. (언제든 오세요.) "
익숙한 소리에 멈칫한 지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말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능숙하게 그리스어를 구사하며 사람들에게 교회로 놀러오라며 인사하는 윤기가 있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목소리 하나에 그 모든 다짐이 무너져 내렸다. 몸에 힘이 풀린 지민은 그대로 장바구니를 손에서 놓쳤다. 제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 뒤로 위치한 윤기에게만 오롯이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골목에서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간 순간.
" ... ... "
그렇게 둘은 헤어진지 반년 하고도 두달이 넘었을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을 갔었던 미코노스에서말이다. 눈이 마주친 둘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서로의 눈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 둘이 미코노스에 온 목적이 같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쳐다보다가 행인이 윤기에게 말을 걸어와 윤기는 행인에게 대꾸를 해주었고, 지민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장바구니를 들고 급하게 숙소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 ...들어줄게요. "
" ... ... "
언제 얘기를 끝낸 것인지 어느새 제 옆에 와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윤기에 지민은 괜찮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말을 하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그저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말도 오가지 않는 둘 사이에는 어색함만이 공존했다.
" ...여기에요. "
" 아... 네. "
숙소 앞에 멈춰 서 겨우 말을 꺼낸 지민이 윤기에게서 장바구니를 돌려받았다. 잠깐 스친 윤기의 손은 여전히 온기가 가득했다. ...그럼. 무의식적으로 윤기의 손을 쳐다보고 있던 지민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목례를 한 지민은 멀어져가는 윤기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손을 잡고 다시 이 거리를 걷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지운 지민은 숙소로 들어갔다. 어쩌면 둘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