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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 TAHOE | 미국 레이크 타호

Swan Lake

w. 내꽃나래(@myflower0613)

호수에 떠있는 연꽃잎과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은 한 사람은, 하얀 머리카락에 가녀린 팔과 몸을 가진, 사내도 아닌 여인도 아닌, 인간들이 말하는 신이란 존재. 

 

 

세상을 등지고 살던 소년은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곳이 있다. 혹시 오늘도 사슴 같은 그 사람이 오지 않을까 헛된 기대를 잔뜩 품은 채

 

 

 

 

*trigger warning: violence, murder, and death* 

 

 

 

 

 

 

***

 

 

1949년, 놀이터가 없어 호수 또는 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가득한 곳. 수많은 호수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가장 예쁜 호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아이가 그곳을 가고 싶어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절대 들어가지 않는 그곳의 이름은 레이크 타호. 

 

 

“나가!! 너 같은 건 꼴도 보기 싫어!!”

 

 

아침부터 울리는 싸움 소리에 놀람조차 없는 윤기가 읽던 책을 덮고 태연하게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허리에서 한 번 뚝, 목에서 3번 뚝, 이리저리 팔을 돌린 후 침대를 내려와 옷을 갈아입는다. 

 

 

“미쳤나 지금 누구 앞에서 소리를 쳐!!”

 

 

오늘은 2단계로 올라가는 그들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는 윤기다. 추우면 가볍게 걸칠 옷과 빵, 물, 집 열쇠를 집고 한숨을 쉬며 집을 나온다.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에 숨을 깊게 들이켜 하늘을 바라보는 이 순간만이 윤기에게 허락된 그만의 시간이었다. 

 

 

“윤기 오늘도 왔니?”

 

 

크고 아름다운 뿔이 머리에 달린 남자. 어여쁜 자태를 보이며 호수 옆에 놓여있는 큰 돌 위에 앉아 윤기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은 일찍 나왔어요”

“집에서 또 난리야?”

“난리 아닌 적이 없잖아요”

 

 

투덜거리는 15살 남자아이의 얘기를 가만히 앉아 들어주는 남자는 윤기의 세상이었다. 마음 또는 머리가 복잡하면 옆에 앉아서 윤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지민. 

 

 

“신이니까 그냥 다 없애버리면 안 돼요..?”

“난 사람을 죽이는 신이 아니야. 그냥 이 호수를 지키고 싶을 뿐인 존재지”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운 듯한 윤기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만 보던 신. 신이어서 그런 것일까, 지민의 감정은 단 하나도 읽을 수 없고 무표정이지만 무표정이 아닌 지민의 얼굴은 아름다우면서 소름 끼쳤다.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죽게 만들 수는 있어”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을 가진 지민의 손이 그의 목을 한 손으로 감쌌다. 그렇게 세게 잡은 것도 아니고, 숨쉬기 힘든 것도 아닌 악력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놀라야 하는 순간이지만 어째서인지 윤기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왜 안 뿌리쳐? 죽고 싶은 거야?”

“어차피 못 죽이잖아요”

        

윤기야, 혀끝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움찔한 윤기가 멍하니 있다 곧 정신을 차렸다. 얼떨떨한 그였지만 차가운 지민의 손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피가 흘러 뜨거운 자신의 목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얼마 안 남았어 윤기야”

 

 

가벼운 입을 맞추고, 자신이 지내고 있는 호수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돌, 푸른빛이 돌고 투명해서 단 하나의 오점도 없는 그 돌을 지민이 윤기에게 건네준다. 직접 손에 쥐여주고 그의 얼굴을 보듬어 주는 지민이 속삭인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

 

 

 

 

 

 

***

 

 

“이 미친놈아!! 애는 왜 때려!!”

 

 

뺨이 빨갛게 부어버린 윤기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어디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냐고 소리를 치며 손을 다시 들어 올린 아버지를 막아서는 어머니. 물건은 다 깨지고 자신이 아끼던 책도 찢어져 바닥에 내팽개쳐진 상황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시발..”

“뭐? 너 뭐라고 했어”

“시발이라고 했다. 왜 자식 새끼한테 욕 처먹으니까 기분이 좆같아? 꼴에 가장이랍시고??”

 

 

그날 윤기는 죽기 바로 직전까지 맞았다. 얼굴은 너무 부어 2배가 되었고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피와 그 인간의 땀이 섞여 있는 것조차 너무 더러워 죽고 싶다 생각했다. 자신을 때린 새끼는 마지막까지 마시던 술병을 집어 던져 깨먹었다. 다 터진 윤기의 입안의 피는 멈춘 듯 멈추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이 아끼던 책을 주워 찢어진 종이를 맞는 페이지에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백조의 호수, 우연히 그가 연모하는 신이 호수에 살고 있었고, 그저 제목에 호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던 윤기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와 닮아 있었다. 저주에 걸린 오데트가 백조로 변해,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남자를 복수해주겠다고 나서는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 

 

 

저주였으면 했다. 이 빌어먹을 인생이, 부친에게 얻어맞아 입에 피고름이 차고 하루 밤낮을 눈물로 보내는 그의 불쌍한 어머니. 그저 이것이 오데트와 같이 누군가가 내린 저주였으면 했다. 동화를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에 찢어진 조각을 맞춰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돈도 없는데"

 

 

거실에서 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술 가져오라는 명령에 아무 힘 없는 어머니만 시다 받기를 할 뿐이었다. 

 

 

“짜증 나”

 

 

한 두 번이 아닌 듯한 윤기의 움직임. 책을 들고 자신의 방에 있는 창문을 열어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햄릿을 두 손에 꼭 안고 호수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호수 끝에 있는 가장 큰 바위. 그 위에 앉아 있던 아름다운 사람이 사슴처럼 동그란 눈으로 윤기를 바라본다. 

 

 

[가만있자, 사랑스러운 오데트로구나...]

 

 

        

“지민”

“응, 무슨 일이니 윤기야”

 

 

사슴의 모습이었던 지민이, 어느 순간 사람으로 변해 비어있는 자신이 옆자리를 손으로 치며 윤기를 불렀다. 이리와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목소리는 매혹적이었다. 인어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원해 빼앗어간 마녀처럼, 윤기가 지민의 어깨를 잡아 눕혔다. 

 

 

“ 당신이 그랬잖아, 죽이는 건 불가능 해도 누군가에게 죽게 만들 수는 있다고”

“그랬지”

“그럼 그 인간도 죽여줘요”

 

 

그 인간이면 네 아버지? 윤기가 자신이 가져온 책을 꺼내 들어 지민의 바로 코앞까지 가져갔다.

 

 

“죽기 싫어서 발버둥 치다가 결국 저주 때문에 처참하게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그 문장이 오늘따라 쉽게 나오는 윤기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간 고생한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불쌍한 우리 엄마, 자신 때문에 참으며 버텨온 것이 너무 죄송했다. 

 

 

“네가 원하면 그 사람이 완벽하게 죽을 수도 있어”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윤기야,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

 

 

대가를 지불하라는 듯한 지민의 말투에 갸우뚱한 윤기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돌을 꺼내 들었다. 

 

 

“이거 원하는 거 맞죠. 그때 준 거”

 

 

피식 웃으며 지민을 본 뒤, 손에 쥐고 있던 돌을 확인한 윤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푸른빛이 돌고 투명했던 작은 돌이 쥐고 있는 자신의 손바닥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이..이게 뭐야 이럴 리 없어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는데"

“윤기야, 정상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해?”

“네?”

“투명한 것? 푸른빛이 돌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한 것? 난 분명 아름다운 것을 갖고 오라고 했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윤기의 귀에는 지민의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가가 없으면 그 인간이 죽지 못한다는 생각만 가득해 지민이 뭐라고 이야기를 걸어도 얼굴 한 번 바라보지 않았다. 오직 까맣게 물들어 버린 돌만 그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그런 윤기가 답답한 나머지 지민이 두 손으로 그의 뺨을 잡았다. 자신만 바라보라고 눈빛으로 말해주는 지민. 오로지 그만 윤기의 눈동자에 차올랐을 때, 지민이 말을 이었다. 

 

 

“아름다운 건 말이야, 정상적인게 아니야, 특별한 것이지. 지금 당장이라도 저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돌을 하나 꺼내봐. 몇 번을 해도 똑같은 돌이 나올 거야. 흔해빠진 그런 돌은 아름답지 않아”

 

 

지민은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던 돌을 자신의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집어 들었다. 까만 구슬과 비슷한 돌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눈동자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돌은 바라보던 둘의 눈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건 아름다운 돌이야 윤기야”

“하지만 그건-”

“까맣게 물들어서, 더욱더 아름다운 거야. 너의 욕망을 집어삼킨 유일한 돌인데, 얼마나 아름답니?”

 

 

가벼운 키스를 해준다. 이 호수의 신이라 그런지 차갑기만 한 지민의 몸과 입술에, 윤기는 더 없이 차분해져 갔다. 돌을 보고 당황했던 그의 표정도, 자신의 부친이 죽었으면 한다는 그의 표정은 아무런 느낌이 없는 시체처럼 보였다. 

 

 

“오늘 밤이야”

 

 

오늘 밤 다 끝날 거라는 말만 남긴 채 지민이 윤기의 입술 앞에 돌을 가져다 댔다. 입을 벌리라는 시늉에 반항도 하지 않고 입을 살짝 벌린 그의 입안에 돌을 넣었다. 쉽게 넘어가 깜짝 놀란 윤기지만 돌이 몸 안에 들어간 순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지민을 만나 행복했던 감정도, 그를 눕혀 키스 하고 몸을 섞고 싶다는 생각도, 그냥 거기서 다 끝이 났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부친이 죽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

 

 

지민은 종종 윤기가 백조의 호수를 읽는 모습을 봤다. 그게 뭐가 재밌냐는 듯한 말투로 책을 뺏어 놀리며 웃었었다. 이미 결말을 아는 그였기에 윤기에게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준다는 둥 만다는 둥 놀렸지만, 그럴 때마다 윤기는 짜증을 내며 그러지마라고 책을 덮었다. 그랬었다. 

 

 

호수를 나온 윤기는 몰래 나온 창문을 통해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대 저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옆집 부부는, 뭔가 피하는 사람들처럼 걸음걸이가 빨랐다. 

 

 

“여보, 저 사람 말려야 하는 거 아니예요?”

“냅둬 괜히 말려들지말고”

“아니 옆집 저 남편 오늘은 더 심하잖아요. 죽으면 어떡해?”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저 사람들의 옆집은 윤기의 집밖에 없다. 저 사람들의 말은 들어서 그런 것일까, 윤기의 발걸음이 빨라지다 아예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반복하면서. 

 

 

        “어머니!!!!”

 

 

        평소 같으면 창문으로 들어갔을 윤기가 오늘만큼은 정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피범벅인 바닥, 진동하는 술 냄새, 울다 지쳐 정신을 잃기 직전인 어머니와 이제 막 들어온 그를 역겨운 눈으로 바라보는 부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술을 가져오라는 말을 반복하며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그의 부친.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다 가만히 서 있는 윤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굴러다니던 술병 하나를 집어 들어 그의 얼굴 가까이 던졌다. 파삭 깨지는 병은 벽에 맞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윤기의 얼굴을 피했지만, 깨진 파편은 피하지 못한 채 볼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이성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속에 무언가가 올라와 토할 것만 같았다. 자신이 빨간 피를 토하지 않으면, 그의 부친이 그 빨간 피를 토하게 만들고 싶었다. 죽은 듯이 엎드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발로 툭툭 치며 윤기에게 시비를 거는 그의 아버지. 아버지라는 역겨운 인간. 

 

 

“네 애미 닮아서 그렇게 뒈질 놈이 된 거 아니야, 밤낮 할 것 없이 밖이나 쳐 돌아다니는 새끼가”

“발 치워"

“어디서 명령 질이야”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은 부친이 아무죄 없이 엎드려있는 사람을 발로 찼다. 그 이상하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눈에 차오르는 눈물과 죄책감이 그의 정신을 뒤덮었다. 가빠지는 숨, 점점 빠르게 뛰는 심장과 혼자 흐르는 식은땀.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눈물에 번져 형태는 보이지 잘 않지만,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

 

 

그 술병을 보자 한 순간에 윤기는 차분해졌다. 빠르게 뛰던 심장도, 가빠졌던 그의 숨도, 혼자 흐르던 식은땀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저 보통사람과 똑같았다. 

 

 

생각도 하지 않은 윤기다. 본능이라고 하면 본능이고, 충동적이라고 하면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술병을 들고 부친의 머리를 내려치는 순간, 윤기는 단 한순간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처음으로 놀라 두려워하는 부친의 눈빛. 

그 순간 그는 희열을 느꼈다. 

 

 

        내려치는 것도 부족한 윤기가 깨져 반이 날아간 술병으로 그의 배를 찔렀다. 피가 그의 손에 묻고, 힘세던 그의 부친이 힘없이 자신을 밀어내려는 모습이 우스웠다. 이렇게 쉬웠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평화로워질 수 있었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너 미쳤어!!!!!”

 

 

        계속 찌르는 것을 반복하던 윤기를 밀어낸 어머니가 그를 미친놈처럼 바라봤다. 어머니, 저 새끼는 어머니를 죽이려던 사람이라고, 그런 당신을 난 구해준 것뿐이라고. 

 

 

        “네 아버지야!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고 했어도 네 아버지라고”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아버지..? 하루가 멀다고 술 마시고 때리고 죽고 싶은 날을 보내게 만든 저 새끼가 아버지라고?”

 

 

        피 묻은 윤기의 손에서 병을 빼앗아 던져버린 그녀가 그것도 모자라 윤기의 뺨을 때렸다. 분명 한 명만 사라지면, 한 명만 죽으면 이 지옥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고, 걱정 더는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저 사람은 네 아버지이기 전에 내 남편이라고! 맞아 죽어도 남편이라고!”

        “맞아 죽어도…? 그럴 거면 혼자 뒤져!!!”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충격을 먹었는지 빨갛게 충혈된 눈이 커진 그의 어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한 번 감정이 터진 윤기가 그것을 주체할 수 없는지 더 세게 나가기 시작했다. 남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가 날 정도로 주먹으로 벽을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흥건한 부친의 피를 보고 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인생이, 이런 세상이 지겨워졌다. 

 

 

 

 

 

 

***

 

 

달빛이 그려진 호수에 발을 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사람. 사내도 아니고 여인도 아닌,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한 사람이 윤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고, 윤기가 아니면 들리지 않을 발소리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무숲 사이에서 들려왔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그가 기다리던 사람이 걸어왔다. 

 

 

“윤기야”

 

 

조금 편하지 않니?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마치 빨갛게 물든 윤기가 낯설지 않다는 듯이, 지민이 두 팔을 벌려 그를 맞이했다. 백조의 호수의 결말을 아는지, 마지막에 저주가 풀리지 않자 결국 죽음을 선택한 왕자와 오데트를 아는지. 그 둘이 죽고 나서 겨우 힘을 잃은 로트바르트도 죽었다는 것을. 

 

 

“결국은 죽음이야 윤기야”

        “그럼.. 이젠 내가 죽어야 끝나요?”

        

        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는 얼굴을 잃지 않고, 벌린 두 팔도 내리지 않은 체 윤기만 바라보는 것이 끝이었다. 마치 그 팔에 들어가는 순간 또 저주가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품 안에 들어가면 또 죽는 것처럼. 마치 저주를 건 로트바르트는, 처음부터 그의 부친이 아닌 지민이었던 것처럼. 

 

 

        “좆같네요. 내 인생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지민의 품에 안긴 윤기는 편안하지만 괴로운 얼굴로 깊은 잠에 들었다. 호수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고, 단 한 번도 나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소문을 갖고 있는 레이크 타호. 윤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한 부부가 피범벅인 시체로 발견 되었지만, 사라진 그의 아들이 용의자로 올랐지만. 그의 행방도, 그의 시체도 찾지 못하여, 일가족 살인 사건은 허무하게 마무리 되었다. 

 

 

        호수에 떠있는 연꽃잎과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은 한 사람은, 하얀 머리카락에 가녀린 팔과 몸을 가진, 사내도 아닌 여인도 아닌, 인간들이 말하는 신이란 존재. 사람의 발걸음은 들리지 않는 호수지만. 어두운 나무숲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가만있자, 또 다른 오데트로구나...]

 

 

 

 

 

 

 

 

 

#랑데뷰합작 

 

 

 

 

 

 

 

 

[thank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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