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의 장소
EIFFEL TOWER |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그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의 장소, 파리
w. 적월 (@red_moon0930)
프랑스 파리에 에펠탑 앞에 한 청년이 혼자 서있다.
-동빈아, 우리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잖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늘 꼭 만나기로 했잖아. 근데 네가 없다...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주마등 스쳐 가듯 지나간다. 너와 함께 밥 먹던 순간, 너와 거리를 걸으며 수다를 떨었던 순간, 너와 몸을 맞대며 함께 사랑을 나누던 순간. 더는 너의 행복한 웃음을 보고 너의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너의 체취를 느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동빈아…흐윽…내가 조금만 빨리 달려갔더라도...
*
-윤기 형!
-동빈아, 뛰지 말고 천천히 와.
-형한테 빨리 가고 싶으니까 뛸래요. 히히
-알겠어. 빨리 와.
-네!
빵빵
-동빈아!!!!!!
끼이익
퍽
-동빈아!!!!!!!!
나는 바로 동빈이한테 달려갔다.
-동빈아…흑
-형…나 너무 아파...
-동빈아…형이 미안해...
-근데 나 내일까지는 살아야 하는데…내일 우리 2주년이잖아…만약 나 죽으면 형 좋은 사람이랑 이쁜 사랑해야돼...
그 말과 동시에 구급차가 왔다. 구급차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동빈이를 구급차에 태우고 나도 구급차에 탔다. 구급차에 타고 있는 동빈이를 보니 다 내 탓인 것 같았다.
*
동빈이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랐다. 동빈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술실에서 의사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분의 머리에 충격이 커서…사망하셨습니다.
-네...? 거짓말이죠..?
-죄송합니다.
-동빈아…흐윽, 우리 내일 2주년인데...
의사의 말을 듣고 난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바로 다음 날이 동빈이와 내가 사귄 지 2주년인 날이었다.
-동빈아…우리 내일 에펠탑까지 따로 가서 꼭 만나기로 했잖아...
*
-동빈아, 형이 미안해…더 잘해줄걸..
오늘 에펠탑이 정말 아름답다. 너랑 같이 있었으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네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네가 없는 세상을 나 혼자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인생은 너였어서 네가 없는 세상을 못 살 것 같아. 형이 많이 사랑해.
*
한 남자가 에펠탑 앞을 쓸쓸히 지나가고 있다. 정말 슬픈 표정으로.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듯한 표정으로. 나는 오늘 그를 처음 봤지만 가서 달래주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괜찮으세요..?
-네..?
-아, 한국분 맞으시구나..
-무슨 일로...
-아까부터 표정이 엄청 어두우시길래요. 에펠탑이 바로 앞에 있는데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눈에 띄었어요.
-아...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뇨.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네. 괜찮으시다면 다음에 또 만나요. 여기 제 번호에요.
이게 내가 그를 만나게 된 계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은 어이없는 만남이지만 이 만남으로 인해서 우리 둘의 사이가 좁혀졌다. 이후로 우리는 가끔 만났다. 그러면서 이름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윤기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여기서 살았었고 윤기 씨는 얼마 전에 여기에 여행을 왔다. 그래서 윤기 씨는 여기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잘 모르는 곳에 관해서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그때마다 직접 가주거나 알려줬다. 윤기 씨는 주로 밤에 야경이 좋은 곳을 찾아갔다.
*
윤기 씨를 만나고 1년이 지났다. 그는 1년 전에 이곳을 떠났었다. 그의 얼굴을 못 본 지 1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일주일 정도 만에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그를 달래주고 싶었던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그가 떠나고 나는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은 한국으로 다시 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새겼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사랑 때문인데 왜 다시 상처를 받으러 가냐. 하지만 그가 너무나 보고 싶다.
*
-지민 씨 만난 지 벌써 1년 정도 지났네…나중에 가봐야 하나..? 나중에 선물도 드릴 겸 가봐야겠네...
한국에 1년 전에 돌아왔다. 원래 동빈이와 2주년 기념으로 일주일 동안 갔는데...아, 또 동빈이 생각해버렸다…근데 왜 눈물이 나지 않는 걸까..?
-왜지...? 이제 놔줬나 보네..
동빈아, 네 말대로 좋은 사람이랑 새로운 사랑을 해볼까 해. 동빈아, 이제 보내줄게. 많이 사랑했어.
-...지민씨한테 가야겠다. 비행기가...
딱 맞춰서 내일 비행기가 있었다.
-오, 내일 비행기 있네. 그럼 지금 예매하고 짐 싸야겠네.
*
-자, 이제 가보자. 프랑스 파리로. 근데 지민 씨가 안 계시면 어떡하냐..
뚜르르 덜컥
'여보세요?'
-정국아, 근데 파리에 가도 지민 씨가 있을까..?
'나야 모르지. 그래도 일단은 가봐.'
-응. 나 갔다 올게.
'조심하십셔~'
-그래. ㅋㅋㅋ
-제발 지민 씨 있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지민 씨한테 빚진 게 있으니까 갚을 겸...아, 이제 진짜 가야겠네.
정국이와 통화하고 나니 벌써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
1년 전 그 비행기를 탔다. 1년 만에 타는 비행기는 어색했다. 비행기는 이륙하고 있었고 귀가 먹먹해졌다. 귀가 먹먹한 느낌이 또 어색했다. 귀가 먹먹해지는 것이 괜찮아지자 비행기는 곧장 가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의 조합은 너무 아름다웠다. 1년 전 그때도 이렇게 아름다웠는데.
*
파리에 다시 왔다. 올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사람을 보러 여기까지 오다니...
-뭐, 덕분에 여행이나 하고 가지. 근데 지민 씨는 어디 계시려나...
전에 지민 씨와 함께 갔던 곳을 둘러보다가 에펠탑 앞에 서게 됐다. 그때 멀리서 보이는 익숙한 형체. 지민 씨 같았다.
-지민 씨?
-...?
-Ah, désolé. J'ai confondu avec quelqu'un d'autre.(아,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이랑 헷갈렸네요.)
-Ça va aller. Mais êtes-vous coréen ?(괜찮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신가요?)
-Oui.(네.)
-Quelqu'un le cherche ? Je connais les personnes qui vivent ici depuis longtemps.(찾으시는 분 있으신가요? 제가 여기 오래 살아서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Ah, je cherche quelqu'un qui s'appelle Park▁Jimin.(아, 박지민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Ah, Jimin! ils seront là en ce moment. (아, 지민! 지금 여기로 오고 있을 것입니다.)
-Comment le savez-vous ?(어떻게 알죠?)
-Je viens souvent ici à cette heure-ci.(이 시간에 여기 자주 옵니다.)
-Ok. Merci.(그렇군요. 감사합니다.)
-Il est là.(아, 저기 오네요.)
-Oui. Merci.(그렇네요. 감사합니다.)
-지민 씨, 오랜만이에요.
-윤기 씨..?
-네.
-윤기 씨가 왜 여기 있어요?? 한국에 있어야 하지 않아요??
-지민 씨랑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그럼 들어갈까요?
-그러죠.
나는 지민 씨를 따라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그 카페는 사람이 많지만, 생각보다 조용했다. 지민 씨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윤기 씨, 무슨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 전에 우리 호칭 한 번만 정리해요. 지민 씨는 너무 딱딱하니까..
-그럼 윤기형이라고 부를게요. 빨리 얘기해줘요!
-ㅋㅋㅋ 알겠어요.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덕분에 나 동빈이 잊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2년 동안 연애하셨지 않아요..?
-네. 맞아요.
-그런데 이렇게..아니, 아니에요.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요. 저도 신기해요. 이렇게 빨리 잊은 게.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거 때문에 동빈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아...역시 괜한 말을...
-진짜 괜찮아요.
-알겠어요..그런데 하고 싶은 말이 그게 끝이에요?
-아, 네.
-네..? 그거 말하러 여기까지 왔다고요??
-그러네요. 일단 먼저 든 생각이 너한테 와야겠다여서...
-아...그리고 말 놔도 괜찮아요.
-알겠어.
그때 맞춘 듯 진동벨이 울렸다.
-내가 가지러 갈게.
-고마워요.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 쓰지만 시원해서 좋다. 생각을 정리하면 나는 동빈이를 완전히 놓은 것 같다. 동빈이 말대로 새로운 시작을 찾아야 한다. 아직 어리니까. 어리다는 건 핑계 같지만 새로운 사랑을 찾고 싶다. 동빈이를 잊고 싶다. 과연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새로운 사랑이 돼줄 수 있을까?
-아까 하고 싶은 말이 진짜 끝이냐고 했잖아.
-네.
-끝 아니야. 나, 너랑 새로운 사랑을 해보고 싶어. 비록 너랑 알게 된 지 꽤 됐지만 만난 날은 얼마 안 되니까..
-...
-아, 미안. 혹시 기분 나빴어..?
-나 진짜 좋아해요?
-응. 나는 너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내가 생각보다 너를 많이 좋아하나 봐. 그리고 꽤 좋아했나 봐.
-나, 형이 작년에 여기서 떠나고 일주일 뒤에 내가 형 좋아하는 거 알았어요.
-..나 오래 좋아해 줘서 고마워.
-우리 그럼 사귀는 거에요..?
-응. 우리 사귀어.
-저 그리고 사실 한국 가려고 했다가..여기 온 것도 사랑 때문이라서 형한테 가기 무서워졌어요. 여기 오기 전에 버림받아서..형도 날 버릴까 봐...무서웠어요. 그래서 여기 계속 있었어요. 여기 있기를 잘한 것 같아요.
-고마워..
-저야말로 고마워요..사랑해요...
-나도...사랑해.
앞으로 나의 미래는 너와 나만으로 가득 채워질 거야. 물론 아픔도, 슬픔도 있을 거지만 행복이 더 가득하기를 바라.
내 사랑의 마지막과 시작의 장소 '프랑스 파리 에펠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