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의 장소
BUSAN | 대한민국 부산
마지막 의뢰
w. 수도 (@Su_do_13)
본 내용은 모두 픽션이며 실제 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트리거 소재 (살해, 죽음)를 포함하고 있으며 껄끄러우신 분들께서는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늑대 인간. 보통 수명은 1000년에서 2000년이고 다치더라도 회복 속도가 빠르다. 힘은 보통 성인의 4배 정도이고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한다는 설정으로 판타지물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그렇기에 늑대 인간이라 하면 조금은 익숙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주위에는 늑대 인간이 살 거라고 믿지 않는다.
물론 요즘의 늑대 인간들은 보름달이 뜬다고 해서 다들 늑대로 변하지는 않고 자신이 변하고 싶을 때만 변하지만.
윤기는 늑대로 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늑대보다 사람일 때가 더 잘생겼다나 뭐라나. 아, 아직 윤기에 대해 설명을 안 했구나. 윤기는 늑대인간 중에서 세력이 가장 센 민씨 가문에 첫째로 태어났다. 외동이였기에 꽤나 애지중지 키워졌다.
어쨌든 윤기는 늑대로 살아가며 서열 경쟁을 하는 자연을 택하기보단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택했다. 늑대인간이 도시를 택하게 되면 의무적으로 직업을 정해야 하는 것은 의무이다. 보통의 인간보다 오래 살기에 사람들과 소통이 별로 없고 눈에 잘 띄지않는 것들 중에서 다양한 직업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윤기는 달랐다. 윤기의 선택은 킬러. 정확히 말하자면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당한 케이스였다. 킬러의 경우 보통 타고난 기질로 뽑게 되는데 민씨가문이 원래 킬러로 유명한 가문이였기에 윤기의 직업은 그렇게 킬러가 되었다.
그래서 윤기는 어렸을 때부터 킬러로 길들여 자라서 총 쏘는 방법, 호신술, 칼 쓰는 방법 등 윤기는 공부보단 몸 쓰는 일에 더욱 익숙해졌다. 그렇게 윤기는 1000년을 넘게 지겹도록 사람 죽이는 킬러일을 하며 살아왔다.
처음엔 역겨웠던 비릿한 피 냄새에 조금씩 익숙해져가며, 다양한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그러던 어느 날, 윤기는 킬러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사람을 죽이는 킬러 일에 지쳤고 그만 죽이고 싶기도 했지만, 이젠 돈도 어느정도 많이 벌었으니 쉬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그 즈음, 항상 외국에서 활동하던 윤기에게 대한민국 부산에서의 첫번째 의뢰이자 윤기의 삶에서 마지막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는 평소와 같이 윤기의 파트너이자 해커인 남준이 읊어주었다.
“D, 이번 타깃은 30대 중 후반의 부부고 거주지는 대한민국 부산. 사진은 여기. 이 일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네.”
“응, 이제 그냥 부산에서 조용히 살려고.”
“그래, 가끔 연락은 하자고.”
"그래야지.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고."
"집은?"
"아직. 그냥 부산에 구하려고."
"그럼 내가 구해줄게. 너 취향에 아주 잘 맞게."
"그래. 고맙다."
D. D는 윤기의 킬러 코드네임이고 풀 네임은 Agust D. 뭐 다들 줄여서 그냥 D라고 부른다. 굳이 D로 코드네임을 지정한 이유를 물어본다면 별 이유는 없었다. 윤기의 왈로는 영어 알파벳들 중에 D라는 철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뭐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윤기는 이번 타깃인 부부의 사진을 보고 누군가에게 원흉을 살 사람들처럼은 안 보인다며 의아해했지만 의뢰자에 대해 무엇도 궁금해하면 안되기에 남준에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음 날, 윤기는 바로 짐을 싸 그 부부의 집이 있는 부산으로 떠났다. 살해 날짜를 정하고 타깃의 동선을 체크하기위해. 며칠 동안 관찰을 한 결과 두 타깃의 직업은 둘 다 연구원이였고, 아침 9시에 나갔다가 밤 10시쯤 들어와서 잠만 자는 듯 했고 아이는 없이 단 둘이 사는 듯 보였다.
아이가 없다면 죽이기엔 더욱 수월했다. 아이가 있다면 자신의 아이는 살려달라며 애원하기에 그 모습은 너무나 추해서 윤기는 그닥 아이 있는 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후로부터 며칠이 더 지났고 윤기는 타깃이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오기 때문에 먼저 집에 들어가 있다가 죽이기로 한 살해 계획을 실행했다. 집엔 보안장치가 별로 없어 들어가기엔 너무나 수월했고 윤기는 안방 침대에 앉아 타깃을 기다렸다.
시계 초침이 한 바퀴를 돌고, 분침이 반 바퀴를 돌고 있을 때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 소리에 윤기는 총을 장전했고 그 사람이 안방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딸칵’
안방으로 누군가 들어왔고 윤기는 그 사람의 이마에 총을 들이밀고는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윤기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안방에 들어온 사람은 타깃인 부부가 아닌 한 아이였기때문이었다.
꽤나 똘망똘망한 눈을 가지고 조그마한 9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신의 머리 앞에 들이밀어져있는게 무엇인지도 모르는지 윤기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조씨는 누구에여? 왜 다 까만 옷을 입구 이써요?”
“····.”
“아조씨 이상한 사람이에여····?”
“아니··· 애기야, 우리 숨바꼭질 할까? 아저씨가 술래할테니까 꼭꼭 숨어.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나오면 안돼.”
“우와! 조아여!!”
"하나, 두울, 세엣···"
아이는 신이 난 듯 환히 웃으며 뛰어 문 밖으로 사라졌다. 윤기는 숫자를 세다가 시야 밖으로 사라진 아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힘이 빠진 듯 침대에 털썩 누웠다.
보통 이 일은 목격자가 생기면 안되기에 아이를 죽였어야 했는데 윤기는 심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에 차마 아이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보자마자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으니까.
그렇다.
윤기는 이 어린 아이에게 각인이 된 것이였다. 처음 본 아이였는데.
이렇게 각인이 된 경우는 드물었기에 윤기도 의아했다. 과거에 인연이였지만 만나지 못 했을 경우 이렇게 첫 만남에 각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례를 들은 적은 있지만 이 아이는 너무 어렸다.
뭐 일단 각인이 되어버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의뢰만 끝내면 이 구질구질한 일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집중해서 빠르게, 한 번에 끝내야했다.
10시가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부부에 윤기는 총을 쥐고 있는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타깃인 부부가 집에 들어왔다. 남자가 먼저 안방으로 들어왔고 윤기는 머리에 총을 들이밀었다
“손 들어.”
“저, 저기·· 돈은 저기에 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하, 씨발. 나는 돈 말고 네 목숨이 필요한데.”
“아, 아 잘못했습니다. 목숨만은··살려주세요.”
“그냥 조용히 있으면 좋잖아. 안 그래?”
언제나 윤기가 타깃을 죽이러 들어오면 그 타깃들은 벌벌 떨며 돈은 저기에 있다며 목숨만은 살려달라 그런다. 윤기는 항상 듣는 이 말이 지겨웠다. 지 목숨이 중요하긴 한지 목숨만은 살려달라며 빌기에.
나는 너무 오래 살아서 지겨운데.
‘탕’
그 남자를 헤드샷으로 한 방에 날려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은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총에 소음기를 찼지만 총소리는 집 안으로 꽤나 크게 퍼졌기에 여자가 안방 안으로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물론 윤기는 그 마저도 귀찮았지만.
“꺄아아아악!!!”
“시끄러워.”
‘탕’
“흐··어어··으아아악!!”
“쉿, 조용히.”
“···흐··읍··”
다리에 총을 맞은 여자는 조용히 하라는 윤기의 말에 입을 틀어막곤 덜덜 떨며 눈물을 흘렸다. 윤기는 그 여자의 머리를 총구로 들어 눈을 마주치게한 후 말했다.
“아, 괜찮아. 얼른 네 남편 곁으로 보내줄테니까.”
‘탕’
여자의 심장을 뚫고 나간 총알은 바닥 깊숙이 박혔다. 여자도 기분 나쁜 비릿한 피냄새를 내며 죽었다.
이번 의뢰도 언제나 같은 결과로 끝이 났다.
아, 약간 다른 것이 있다면 각인이 되어버려 목격자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래 원칙대로면 그 아이는 이미 죽었어야했다. 킬러를 본 목격자이기때문에. 윤기는 목격자의 나이, 성별 관계없이 모두 죽여야한다는 원칙을 어겨버렸다.
목격자인 아이가 살아있는 것을 알게된다면 아이는 다른 킬러의 손에 끔찍하게 죽을 것이다. 물론 아이가 죽기 직전에 윤기 자신이 먼저 죽을테지만. 그렇기에 절대 들켜서는 안됐다.
먼저 아이를 찾아 이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은 윤기는 아이를 천천히 부르며 찾았다.
“애기야, 어디 있니··· 얼른 나와··.”
윤기의 피 묻은 손과 총은 누가 보면 아이를 죽이기 위해 찾아가는 살인마처럼 보였다. 옆 방의 장롱을 열었더니 그 안에서 아이가 덜덜 떨고 있었다.
윤기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괜찮아. 아저씨랑 가자.”
“···아조씨, 무서워여.”
“괜찮다. 괜찮다.”
윤기는 피 묻은 손으로 아이를 안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 아이의 부모 피가 묻은 손으로 아이를 진정시킨다니 그 모습은 매우 모순적인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윤기의 손길에 어느새 진정되었고 지쳐 잠에 들었다. 윤기는 그런 아이를 안아들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부산의 밤바다가 잘 보이면서도 너무 시끌벅적하지 않은 정확하게 윤기의 취향인 집이었다.
“김남준, 이런 곳은 참 잘 찾아.”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히곤 윤기는 와인을 마시기 위해 안주와 술을 준비했다.
원래 윤기는 의뢰를 끝내고 집에 오면 혈흔과 같은 붉은 빛의 레드와인을 마시는데 약간의 의례같은 것이었다. 오늘은 저 아이때문에 조금 늦어진 것이지만. 의례를 안 할 수는 없었기에 준비했다.
투명한 와인잔에 천천히 차오르는 붉은 빛의 와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먼저 와인의 향을 맡았고 그 향만으로도 윤기는 조금씩 취해갔다. 윤기는 와인잔을 살짝 들고 허공에다 말을 걸었다.
“오늘도 저 영혼들을 잘 인도해주시길.”
죽여진 타깃들을 위한 의례였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여서 죽었을지도 있지만 누군가의 원수여서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윤기가 첫 타깃을 죽였을 때부터 했던 의례여서 이젠 하지 않으면 조금은 어색해질 정도였다. 윤기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고 목을 타고 내려오며 점점 뜨거워지는 와인이 느껴졌다. 한 모금 가득 와인을 다 마시며 의례는 끝이 났다.
윤기는 남은 와인을 마시며 남준에게 연락했다.
[나 사고 쳤다]
[각인 됐어. 그것도 목격자한테]
연락하기 무섭게 남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D! 각인이라니. 목격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몰라. 갑자기 각인 된거야.”
“그래서 못 죽였어?”
“어. 각인 됐는데 어떻게 죽이냐. 하··.”
“큰일 났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일단 데리고 살아야지.”
“···그러다 들키면.”
“안 들켜. 죽어도 안 들킬거니까.”
“후··· 일단 알겠어. 내가 나중에 갈게.”
그렇게 둘의 통화는 끝이 났고 윤기는 몸에 조금씩 도는 와인의 취기와 함께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윤기는 밖에서 나는 부스럭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더니 아이는배가 고팠는지 싱크대에 손을 낑낑 뻗고 있었다.
“배고파?”
“···녜에.”
“잠깐만 기다려봐.”
윤기는 아이에게 주기위해 그나마 잘하는 음식인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드는 사람 음식이었다. 그 아이는 배가 꽤나 고팠던 모양인지 숟가락을 들고 가만히 식탁에 앉아 윤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윤기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귀여운 면도 있네.
“자, 배고팠지. 얼른 먹어.”
“잘 머게씀니댜!”
윤기가 잘 동안 어디에서 무얼 한건지 얼굴엔 까만 때를 묻히고 숟가락으로 밥을 오물오물 퍼먹었다. 양 볼에 밥풀을 다 묻히면서. 그 밥풀을 윤기는 하나하나 떼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마이따!”
“많이 먹어.”
“··아조씨는 안 머거여?”
“아, 응.”
순식간에 밥을 다 먹은 지민은 배를 통통 두드리며 윤기를 쳐다보고 히- 하며 웃었다. 그러곤 가만히 윤기를 응시했다. 그런 아이에 윤기는 아이의 이름을 물어본다.
“이름 알려줄래?”
“··· 모르는 사람한테눈 이름 알료주며는 안대는데.”
“아저씨가 밥도 줬잖아. 응? 알려주면 안될까?”
“·· 움··”
아이는 뜸을 들이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를 피했지만 윤기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물었고 결국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박지민이에여! 9살!”
“지민이구나.”
“아조씨 이름두 말해주면 안대여?”
“아저씨 이름은 민윤기야.”
"미뉸기··?··· 어려워. 구냥 아조씨라구 부를래여!"
박지민. 나와 각인이 된 아이의 이름이었다. 어딘가 익숙했고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올라왔다. 지민이와 나는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 일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
내가 지민이에게 첫 눈에 반해 인연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행복한 인연이 될지 불행한 인연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다른 킬러에게 들키지 않고 살았다. 그랬기에 우리는 행복한 인연인 줄만 알았다. 헤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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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나 흘러 어느새 둘이 처음 만난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민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윤기를 이름대신 항상 아저씨라 부르며 편하게 지냈다. 물론 윤기는 늙기는 커녕 지민이 클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지민은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고등학교에 다녔고 매일매일 야자까지 마친 후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오는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윤기도 아침에 일어나 지민을 학교에 보내고 가끔 하는 취미인 프로듀싱을 하며 하루를 보내다 지민이 야자를 마치고 집에 올 때만 방에서 나왔다.
그렇게 매일 매일을 함께 보내던 윤기와 지민의 생활이 하루만에 와장창 하고 깨져버렸다.
오랜만에 윤기의 집에 온 남준이 들고 온 소식 때문이었다. 남준이 윤기의 집에 온 이유는 요즘 지민의 곁에서 다른 늑대 인간의 냄새가 난다며 윤기가 남준에게 조사를 시켰던 것이었고 그 것과 관련되어 할 말이 있다며 윤기의 집을 찾은 것이었다.
남준이 들고 온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지민이 곁에 누군가 있는 거 맞아. 학교든 집 오는 길이든. 들킨 거 같은데."
“젠장. 아닐 수도 있잖아. 아니야. 아닐거야.”
“정말 확신할 수 있어?”
윤기는 자신없다는 표정으로 남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지민이가 알면 어떡하지.”
“뭘. 네가 걔 부모 죽인거?”
“···어. 지민이가 알고 상처받으면 어떡해."
"괜찮아. 아직은 모르잖아."
그 때였다.
윤기와 남준이 이야기를 나누던 방 문에 살짝 열린 틈 사이로 무언가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윤기는 설마··하며 문을 열었고 그 뒤엔 언제나 봐도 작고 소중한 지민이 서있었다. 언제 왔는지, 이 대화를 어디부터 들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차마 다그칠 수 없었다. 예쁜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지민의 모습 때문에.
지민은 윤기를 바라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겨우 떼서 말을 꺼냈다.
"아, 아저씨가 우리···엄마, 아빠 죽였어요? 난 아저씨 믿, 었는데"
지민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앞엔 어쩔 줄 몰라하는 손이 방황하고 있었다.
그 말과 목소리는 윤기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고 윤기는 지민의 말에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지민의 부모를 죽인게 자신이였으니까. 자의든 타의든 죽인건 맞았으니까.
윤기는 변명이라도 해보려했다.
단지 의뢰였다며.
악의는 없었다며.
하지만 입을 떼려 해도 말이 목구멍에서 막혀 나오지를 않았다.
"··왜 말을 못 해? 아저씨··· 얼른 아니라고 해줘."
"·····미안."
"아, 아흑·· 아저씨···흐윽."
윤기가 할 수 있는건 사과와 지민을 안고 토닥여 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를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그 의뢰를 거절 했다면 이 아이는, 지민은 자신의 부모와 행복하게 살았을테고 난 지민을 만나지 않았을텐데.
그랬다면 각인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인연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지금 이렇게 지민이 우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지도 않았을텐데.
그렇게 지민은 윤기의 품에서 울다 지쳐 잠에 들었고 윤기도 그의 곁에서 조그마한 손을 꼬옥 붙잡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창문 틈 사이로 조금씩 새어들어오는 따뜻한 아침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윤기는 일어났다. 일어났더니 그의 앞에 있어야할 지민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어젯밤 손을 꼬옥 붙잡고 잠에 들었는데 그새 어디를 간 건지.
윤기는 지민이 집 어딘가에 있기를 바랬다. 언제나처럼 아저씨! 하며 반겨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 나온 윤기를 반기는 건 집 안의 차가운 공기였다. 그 어느 곳에도 지민은 없었다. 집을 나간 것이었다.
윤기도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아팠다. 윤기의 심장은 원인을 모른 채 저릿하게 아파왔고 눈에선 뭔지 모를 투명한 액체가 흘렀다.
윤기는 그냥 각인이 되어있어서, 지민이와 멀리 떨어져있게 되어서 그런 줄 알았다.
이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조용하던 윤기의 핸드폰이 오랜만에 울렸다. 발신자는 표시제한이었다.
[얘야?]
[귀엽네]
[제목 없음]
이상한 문자와 함께 온 건 지민의 사진이었다. 손과 발이 묶여 바닥에 내팽개쳐 있었다. 의식은 없는 듯 보였다.
윤기는 순간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으로 집 벽을 쳤고 벽은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씨발!!”
그리곤 자신의 곁을 떠난 지민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 아이를 원망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지켜야했다. 각인된 아이였기에. 그 아이가 죽기 전에 자신에겐 큰 고통이 따른다며 핑계를 대었다.
사실은 지민을 좋아하는 건데, 사랑하는 건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몰라서 그랬다.
‘띠롱’
두 통의 문자가 더 왔다.
[구하고 싶으면 오던가]
[부산에 킬러 아지트 알잖아?]
윤기는 오랫동안 쓰지 않아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총기들과 총탄을 꺼냈고 옷은 언제나 그렇듯 피가 튀어도 보이지 않을 검정색 옷을 입었다. 나이프와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해서 회복력이 빨라지는 약물도 챙기곤 길을 나섰다. 지민을 구하기 위해.
그 곳으로 향하는 길은 약간은 긴장되었고 무서웠다. 그렇게 킬러떼와 싸우는 건 처음이었기에. 지민을 보지 못 한 채, 지키지 못한 채로 죽을까 두려웠다.
어느새 아지트에 도착했고 익숙한 부산항 화물창고였다. 이 곳도 원래 윤기가 일하던 곳이였으니까. 킬러일을 때려치기 전까진.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익숙해 지지 않고 소름 끼쳤으며 킬러들의 아지트인만큼 여릿하게 역겨운 피 비린내가 났다. 이 곳에선 킬러들을 죽이거나 지민이처럼 목격자를 죽였다.
한 때 윤기도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만큼은 지키러 왔다.
킬러들 중엔 늑대 인간도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 윤기가 가장 강했기에.
총을 장전하고 천천히 들어갈수록 익숙한 곳이었고 익숙한 얼굴들이 꽤나 보였다. 그들 사이엔 지민이도 있었지만. 바닥에 쓰러져있는 지민의 상태는 그냥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다. 얼굴은 상처로 가득했고 손 발은 묶여있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눈은 지민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윤기는 가슴이 시큰했다.
슬펐고 아팠고 지민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살아있음에, 이렇게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 아저씨···.”
“이런, D. 진짜로 왔네?”
“크크킄 지 애라도 찾으러 왔나보지.”
“좋은 말로 할 때 지민이 이리 데려와.”
“D, 얜 목격자야. 잊었어? 목격자는 나이, 성별 상관없이 죽인다.”
“아니, 그러니까 지민이 데려와.”
“싫다면?”
킬러들의 무리 중 한 남자가 지민의 손을 짓밟았고 지민은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다. 그에 윤기는 다시금 심장에 고통을 느꼈다. 꽤나 아팠다. 이 고통을 지민은 윤기가 오기 전부터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보단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저씨 도, 망가요.”
“너 쟤가 얼마나 무서운 앤줄 모르지.”
“그러게. 도망가라니. 허, 저 자식은 절대 도망 안 가.”
“내가 보여줄까?”
이번엔 여자 킬러가 지민의 머리칼을 붙잡더니 입에 총구를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윤기는 바로 총을 조준했다.
“건들지 마. 내꺼.”
“닥쳐. 지민아, 쏴줄까?”
“···자모태써여. 흐윽··."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지. 안 그래?”
‘탕’
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죽는 줄만 알고. 하지만 여자가 총을 쏘기 전 윤기가 먼저 그 여자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지민은 슬쩍 눈을 떴고 순식간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버린, 죽어버린 여자에 기겁하며 뒤로 기어갔다. 그 모습을 본 윤기는 지민에게 소리쳤다.
“눈 감아!!!”
자신의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지민은 윤기의 말에 따랐다. 눈을 꼬옥 감아 앞이 보이지 않게 했다. 손이 묶여있던 탓에 소리는 적나라하게 전부 들렸지만.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모두 사라지곤 윤기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윤기의 목소리에 지민은 눈을 떴고 얼굴과 손에 피를 묻힌채 지민의 앞에 서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꾹 참고 있던 울음이 펑하고 터져나왔다.
우는 지민을 윤기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토닥여주었다. 어렸을 때 지민의 부모가 죽었을 때처럼, 윤기는 몸에 피를 묻히고 있었고 지민은 윤기의 품에는 여전히 작았다. 지민이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윤기는 자신의 허리 춤에 차고 있던 칼 한자루를 꺼내 지민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곤 칼을 손에 쥐어주었다.
"지민아, 미안해. 이런 고생 시켜서. 이거 들고 무조건 뛰어서 사람 많은 곳으로 아, 아니다. 병원으로 가서 김남준한테 연락해. 번호 알지?"
지민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윤기가 주는 칼을 손에 꼬옥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윽··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이따가 너 치료 다 받으면 그 때쯤 갈게. 얼른 일어나. 시간 없어."
주저앉아 울고있는 지민을 부축해서 일으키는 윤기다. 지민은 계속 눈물을 닦으며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다리로 억지로 서서 윤기를 바라봤다.
"아저씨."
"응."
여느때와는 다른 지민의 표정이였다. 언제나 장난끼 넘치고 귀엽던 얼굴이 아닌 진지해보였다.
"나··· 아저씨 좋아해요."
쿵. 쿵. 쿵.
윤기의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다. 단지, 고장이 난 줄 알았다. 어디가 아픈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였다. 사랑이라는 감정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자신도 지민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지민에게도 미안했다.
"그러니까, 아저씨··· 흐윽, 살아서 돌아와줘요."
"···응."
'쪽'
윤기의 입술에 지민의 작고 통통한 입술이 순간 닿았다가 때어졌다. 윤기는 예상치도 못 했던 지민의 행동에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확 깨버렸지만.
"어이, D! 사랑놀이라도 하나 봐"
쯧, 이 킬러 판에서 가장 악명 높은 K, 김서준 이었다. K는 타고난 기질로 킬러가 되었다기보단 자신의 복수를 위해 노력으로 킬러가 된 아이였다. 그랬기에 더더욱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사람을 죽일 때 그의 눈빛은 살벌했다.
지민이 저 킬러에게 붙잡히면 끝장이었다. 윤기의 눈 앞에서 끔찍하고 잔인하게 죽여버릴게 뻔했기에 지민의 등을 떠밀었다.
"지민아, 얼른 가. 그리고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다."
"···아저,씨?"
"미안, 나도 지금 알아서. 그러니까 우리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중에 살아돌아가서 하자."
지민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윤기도 자신을 좋아한다니. 그것도 갑자기 이렇게 고백이라니. 가지 않으려는 지민을 윤기는 억지로 떠밀어 보냈다. 겨우겨우 지민을 내보냈고 그와 거의 동시에 총소리가 났다.
'탕'
"윽··."
윤기의 다리에 총을 쏜 것이었다. 다행히 지민이 보지 못했기에 괜찮았다. 그 악명 높던 킬러, K는 윤기의 총 한 방에 머리를 맞고 죽었다.
타고난 실력은 노력이 어찌 이길 수 없었다.
윤기는 악착같이 버텼다. 총에 맞아도, 칼에 찔려도, 살아서 나가 지민을 보기 위해 싸웠다. 윤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들로 가득했고 윤기의 몸과 손엔 자신의 혈흔인지 다른 사람의 혈흔인지 모를 붉은 색의 피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역시 킬러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윤기는 지쳐갔고 챙겨온 총알도 다 떨어져 한 발만이 남았다. 결국 윤기는 킬러 무리에 포위되었다.
"D, 항복해."
"···."
"그 총 내려놔."
"···거슬리게 하지마."
"허, 말하는 뽄새보소."
"차라리 날 죽여. 새끼들아! 그 얘는 그냥 놔두고."
"천하의 D가, 민윤기가 신경쓰는 애라서 신경 안 쓰긴 힘든데."
"···닥쳐."
'탕'
윤기의 마지막 총알이 정확하게 머리를 맞췄고 윤기의 심리를 긁던 킬러는 사방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윤기는 그 총알이 마지막 총알이란 걸 알았기에 주저 앉아 가만히 총알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굳이 힘을 빼가며 늑대로 변하지는 않았다.
늑대로 변해도 죽는 건 똑같을테니까.
"탕. 탕. 탕. 타다탕···"
역시. 예상과 같이 총성은 끊이지 않고 들렸고 언제 맞아도 아픈 총알은 윤기의 살을 뚫고 나갔다. 윤기의 몸은 총알을 그대로 받아내며 몸에 구멍을 뚫었고 원래 붉은 빛으로 가득하던 옷이 더욱 진한 붉은 빛, 붉다못해 검은 빛을 바뀌었다.
윤기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갔다. 아무리 늑대 인간이라도 수많은 총을 한꺼번에 맞는다면 회복은 어려웠으니까.
윤기는 쿵소리를 내며 차디찬 바닥으로 쓰러졌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지민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 눈에선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고 윤기는 점점 내려오는 눈꺼풀에 눈을 감았다.
지민아, 이런 못난 나를 만나서 네가 고생이 많았어. 난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몰라서 널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 그래도 재미없던 내 인생에 네가 들어와줘서, 이렇게 사랑의 감정이라도 알고 죽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 우리 다음 생엔 평범하게 사람으로 만나 연인으로, 부부로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지민아, 아저씨가 많이 미안하고 또 사랑해. 난 언제나 사랑할 거고 널 기억할 거야. 그리고 살아 돌아가겠다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그렇게 윤기의 몸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하지만 지민을 향한 마음만큼은, 그 심장만큼은 뜨겁게 뛰고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지민을 사랑했다.
마지막 의뢰였다.
부산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의뢰.
그 의뢰 덕분에 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그 사랑의 감정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인연인 줄 알았지만 우린 불행한 인연이었다.
이번 생에는 불행한 인연으로 만났으니 다음 생은 행복한 인연으로 만나길.
만나서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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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도입니다! 제 첫 합작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네여.. 일주일? 이주? 안에 파바박 쓴 거라서 아무래도 급전개와 재미없음을 포함하고 있거든요. 진짜 이 글을 끝까지 다 보신 분들 눈 멀쩡하실지 모르겠네요…그래도 제가 보고 싶던 늑대인간 킬러물 써서 쪼꼬미 뿌듯하고 마감 기간에 맞춰내는게 너무 기특하네여. 근데 사실 합작 주제는 나라이고 제 주제는 부산인데 늑대인간이랑 킬러라는게 너무 튀어올라서 부산이라는 주제가 약간 묻혀버린 느낌…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를 박겠습니다. 아, 맞다. 이 말을 까먹을 뻔했어요. 제 글 보지마시고 다른 존잘님들 글 봐주세요. 저 빼고 다 존잘이시니까요. 음.. 이만 줄일까요! 피드백은 언제나 사랑이고 저에게 힘이 됩니다아!! 에스크, 오픈채팅, 뎀 등.. 다양한 방법 있으니까 찾아와주세요! 이번 대규모 합작 참여하신 존잘님들 모두 수고하셨고 특히 총대님! 제일 수고 많으셨어요!! 그럼 전 이만 존잘샌드를 당하러 사라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