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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

by. ​ZOY & 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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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합작.png

WRITING

*조선을 배경으로 한 글이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는 다른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나라가 흉흉했다. 지난 한 세기 안 되는 시간 동안 두 번의 왜란과 호란이 일어난 탓이었다. 그 이후 선대 왕과 지금의 왕이 전후 재건을 위해 노력했지만 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굶주림에 봉기를 자주 일으켰고 몇몇 사람들은 약탈을 일삼았다. 의금부(*조선의 사법기관)의 관원들은 쉴 날이 없었다.

 


왕의 걱정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전보다 나라가 좋아졌음은 확실한데 여전히 백성들은 힘들게 살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 생각하고 자격이 없다며 자신의 호위무사인 지민에게 털어놓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백성들은 먹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냐며 자주 어상을 거부하곤 했다. 무언가를 먹는 날이면 지민이 설득을 한 날이었다.

 

 

 


“전하, 무엇이라도 드셔야 힘이 나시고, 그래야 백성을 위해 힘쓸 수 있지 않으십니까? 벌써 나흘째이옵니다.”

 


“그래 알겠다. 과인이 몸져누우면 나라는 더욱 혼란해질 것이니…”

 


지민의 노력으로 어상을 거부하는 일은 없을 듯하였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비밀로 해달라 하여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어명을 거절하기도 어렵고, 퍽이나 난처했던 것이다.

 

 

 


“별운검 박지민에게 명한다. 사대문 안에 있는 마을에 내일부터 매일 술시 반각에 나가 자시에 돌아오거라. 백성의 것을 도둑질한 자와 수상한 자는 잘 관찰해 잘못을 저지르면 모두 의금부에 데려오고 백성들을 도와주는 게 운검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에 깊이 공감하오나 어찌 신이 자리를 비울 수 있겠습니까.”

 


“괜찮다면, 하겠는가?”

 

 

 


운검은 왕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듯하였다. 그렇다면 어명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선택권은 없었지만. 국왕은 백성들을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깊었다.

 

 

 

 

 

 

 


하루가 지나고 술시 반각이 되어 별운검 지민은 궁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가끔 왕이 행차할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첫날에는 다행히도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던 차, 한 초가집 앞에서 재빨리 뛰어가는, 도망가는 듯한 모양새를 보았다. 그 집 마당에서는 어린 소녀가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지민은 망설이지 않고 방금 뛰어갔던 이를 쫓아갔다. 뒤늦게 뛰어갔던 것치고 금방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지쳤는지 붙잡히자마자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하지만 쌀 포대는 꼭 끌어앉고 있었다. 짧은 정적이 흐른 후 그는 풀썩 주저앉아 지민에게 빌기 시작했다.

 

 

 


“나리, 제발 살려주십쇼. 평생 정직하게 살다 땅이고 집이고 다 잃어 집에 여섯 식구가 굶어죽게 생겼으니… 이거, 이거 돌려드리겠사옵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쇼, 살려만…”

 


“이만 돌아가시오. 이건 내가 갖다 드릴 테니. 다음부터는 의금부에 데려갈 터이니 명심하시오.”

 


“네, 감사하옵니다, 감사하옵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나리.”

 

 

 


그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지민이 나중에 다시 보니 도둑질을 범하지 않고도 잘 되어 식구들이랑 자알 살고 있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를 풀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민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보던 중이었다. 싸한 느낌이 들자마자 날렵하게 숨어 다니며 커다란 무언가를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곧이어 누군가를 찾는 듯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어둠에 흐릿했지만 선명하게 피가 온 곳에 묻혀있고 옷도 찢어진, 모습이 초췌한 사람을 보았다. 직감적으로 저 자를 해하고 그의 것을 빼앗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켜보던 것을 멈추고 곧장 다가섰지만 감각이 예민한 그가 지민의 팔에 붉은빛을 남겼고 다시 한 번 달빛과 같은 그것으로 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민은 국가 소속인 무반이었고, 그중에서도 왕을 호위하는 별운검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지민은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의금부로 보내졌다.

 


벌써 지민이 이 일을 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백성들의 생활, 그리고 도둑들 등 지민이 마을 돌며 본 것들을 왕에게 다음날 아침, 매번 보고 하였다.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말을 토대로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는 듯했다. 그래도 물건을 훔치는 자가 있는 것은 그대로이기에 지민은 계속 밖으로 나섰다.

 

 

 


“저기, 저기, 수상한 자가 있다!!”

 


“무슨 일이십니까?”

 


“꺄악!!!”

 


“혹시, 저를 말씀하시는 것이십니까?”

 


“그래 너, 이 밤중에 무얼 하는 거지?”

 


“진정하시오. 저는 그저 마을을 돌…”

 


“우리 마을을 어찌하려고?”

 


“마을을 돌며 수상한 자는 없는지 보려고 하는 것이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여기서 처음 보는 사람인 걸.”

 


“......궁에서 보내졌기 때문이죠.”

 


“실례했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신가요? 무반인 듯 하오신데 이렇게 큰 검을 들고 다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사옵니다. 너무 멋있으셔요.”

 

 

 


지민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양반집 딸이었다. 의심도 많았지만 왕실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 관련된 것이라면 귀가 얇아지곤 했다. 궁에서 왔다는 것도 말해서는 안 됐는데 이 검의 정체까지 알리면 큰 문제였다. 왕을 호위하는 별운검이 갖고 있는 운검이었다. 말한다면 왕의 호위무사라는 것을 알 테니, 대충 얼버무렸다. 그나저나 이 사람 지민을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었는데… 지민은 시간이 늦어질 거 같아 힘들게 변명을 하며 재빨리 빠져나왔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전하, 어젯밤 일을 전하러 왔사옵니다.”

 


“그래, 말해보거라.”

 

 

 


차분히, 하나씩, 그 특이했던 사람의 일을 제외하고 이야기하는데 안 그래도 뚫릴 듯 쳐다봐 부담스럽던 눈빛이 오늘와서 더 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지민이 왕인 윤기를 쳐다보면 안 그랬다는 듯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입꼬리는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눈빛은 감추지 못했었다. 지민이 느끼기에는 마치, 마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눈빛에서는 달라질 게 없었다. 다만 다른 것은 평평한 입에 더 깊어진 눈이었다.

 


지민이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니 윤기는 일어나 앞으로 걸어왔다. 엎어지면, 아니 조금만 휘청해도 닿을 거리였다.

 

 

 


“잘했다. 가거라.”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방금 가까웠던 그 순간, 전하의 심장 소리는 무척이나 컸다.

 

 

 

 


같은 날, 신하들이 모인 자리였다. 윤기 옆에는 역시 지민이 있었다.

 

 

 


“전하, 비를 다시 드실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신하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윤기는 특이하게도 첫 왕비를 맞은 이후 아무도 맞지 않더니 그녀가 일찍 죽은 후에도 몇 년간 그대로인 상태였다.

 

 

 

 

 

 

 

 

 

 


***

 

 

 


어쨌든 일이니까 이렇게 들떠있으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왜인지 모르게 신난 지민은 날아가듯 걸었다.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았고 기분이 좋기만 한 듯했다. 그러다 아는 사람을 마주친다.

 

 

 


“또 뵈옵네요. 신나는 일 있으십니까?”

 


“…못 본 척해 주시오.”


“하하하 부끄러우십니까? 이제 들어갈 때가 되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번에 봤던 양반이었다. 지민은 우스꽝스러운 느낌으로 걸었으니 민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태평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걷든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고,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었다. 이 시간에 밖에 나가는 걸 허락해줄 리가 없으니 몰래 나온 것일 거다.

 


민망하고도 웃겼던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더욱 들뜬 기분으로 걸었다. 하지만 순간 기분이 싹 나빠지더니 주변에 누군가 있다고 느껴졌다. 지민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러니 온통 검은 옷은 입은 자가 보였다. 밤이어 가뜩이나 안 보이기 마련이니 그는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하였다. 그렇게 얼굴까지 가렸으니 수상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사람보다도 민첩하여 붙잡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만 보인 것도 아니라 자주 보였다. 그 이후 그 마을을 중심으로 돌아다니었고 자주 보여 그를 잡으려고도 했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이 자에 대한 것을 왕에게도 알렸으나 계속 지켜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는지라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반복되는 실패에 지민이 머리를 조금 써냈다. 전처럼 바로 다가서는 것이 아닌 미행을 하다 수상한 행동을 한다 싶을 때 잡자는 계획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따라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듯 싶었다. 작전이 성공이라도 할 듯.

 


수상하다는 예상이 맞아들은 듯. 한 집 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들어가기 바로 직전,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잡자마자 몸을 돌려 칼을 댔다. 그들은 검으로 한참을 싸우다 결국 지민이 그의 검에 베여 힘이 빠졌다. 잠시 주춤한 사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허탈하게 돌아오고 해가 뜬 다음, 언제나 그랬듯 지민은 윤기를 찾아갔다.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제 그렇게 놓쳤으니 질책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제 다친 것이냐.”

 


“아닙니다.”

 


“다 보이는데 거짓을 말할 생각 말거라. 여기로 와 보아라.”

 

 

 


지민이 조심히 다가가니 윤기는 저번처럼은 아니지만 가까이 다가갔다.

 

 

 


“다친 곳은 괜찮느냐.”

 


“괜찮습니다.”

 


“상처를 보아도 되겠느냐.”

 


“네, 전하.”

 

 

 


상처는 제대로 치료되지도 못하고 대충 막아놓기만 하여 통증도 여전하였고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윤기는 약을 가져와 직접 발라주기 시작했다.

 

 

 


“전하? 신에게 무슨… 직접 하겠습니다.”

 


“지민아.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렇다. 하게 해다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한낱 신하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시고 이름을 부르시고, 어찌하여 그러시는 건지 전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죽을 각오로 한 말이었다. 지민은 자신이 지금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국왕의 행동과 말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건 왕과 신하와의 관계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마치 ‘정인’ 같은 느낌이라고.

 

 

 


“......덧나지 않게 약 바르는 거 잊지 말고, 또 상처 나지 않게 하고...... 그리고 조심하겠다. 미안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

 

 

 


화창한 날씨였기에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해 윤기는 산책을 나섰다. 물론 지민도 함께였다.

 

 

 


“일은 힘들진 않느냐.”

 


“네.”

 


“쉬지는 못할 망정 괜히 일을 시킨 것 같아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오늘은 밤은 쉬고 내게 와다오.”

 

 

 


윤기와 지민은 벗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벗이라기에 거리감이 있었지만 윤기에게는 어느 사람보다도 가까웠고 지민에게는 왕임에도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 쉽게 아니다 싶은 걸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지민이 다쳐서 왔던 이후로 거리가 멀어졌다. 윤기는 당겼고 지민은 밀었다. 멀어졌다는 것은 미는 힘이 더 셌다는 것인데, 누가 봐도 윤기가 이길 것 같은 싸움에 지민이 이기게 된 것이다. 지민이 센 것이 아닌 사랑 앞에서는 누구든지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윤기는 잘 알고 있었다.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해 얻지 못한 민심과 대를 잇지 못할 거라고 쑥덕이는 소리들.

 


그리고 비꼬는 것인지 걱정인지 이제는 분간도 할 수 없는 왕비를 맞으라는 이야기. 신하들과 함께 있는 자리면 빠짐없이 나오는 주제였다. 어느 왕이 사랑하는 자와 혼인을 했겠는가 이것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과 했어도 자신도 겪은 일이었으니. 하지만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앞에 있었다.

 

 

 


“부탁할 것이 있다. 과인이 운검을 지민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해줄 수 없는가.”

 


“전하. 저번에도 말했 듯…”

 


“알고 있다. 그리고 운검의 마음도 이해하고 있다.”

 


“허나 신은 너무 허물 없이 지내게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랬다. 솔직하게는 윤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랐다. 좋았으니까, 그래서 더 밀어냈다. 정말 전하를 사랑하게 될 것만 같아서.

 

 

 

 


요즘 복잡한 머리를 알기라도 했는지 지민이 잡으려 했던 이후로 하던 짓을 그만둔 것이었는지 계속 보이던 수상한 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그만큼 더 시끄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민은 윤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을 되풀이해봐도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사랑.

 


윤기는 고민 많은 지민을 알아차렸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대답뿐이었다. 요 근래 어색하긴 했어도 여전히 둘이 있을 때면 밝은 느낌이었는데 최근 며칠은 영 아니었다.

 

 

 

 

 

 

 

 

 

 

 

 

 

 

 

 

 


***

 

 

 


칠흑 같은 어둠에 달만이 빛났다. 그리고 운검(雲劍)도 달빛과 같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밤에 다니는 것은 당연하고 쉬워진 일이 되어버렸고 흑 속에서 흑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길 바랐지만 언젠가는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 말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정면승부였다. 지민이 먼저 검을 휘두르니 그도 검을 꺼내어 막아낸다.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달빛의 소리만이 들려왔다. 서로 지쳤음에도 지겨운 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끝은 난다.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고 얇은 천이 칼에 스쳤다.

 


“전하?”

 

 

 


서로 당황해 얼어붙어있었다. 그리고 고요했다. 지민은 윤기가 왜 자신에게 그런 임무를 주었는지 알 것 같았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고 궁에 없다는 걸 눈치채지 않게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이유에 관한 상상을 하다 못 본 체하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다음날 지민은 윤기를 볼 일이 없었다. 윤기가 다른 운검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가끔 아플 때 말곤 매번 지민을 부르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의아해했다. 심지어 지민은 멀쩡히 일을 하고 있단 말이다. 그래서 실수라도 한 거 아닐까 저마다 추측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더라도 윤기의 어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지민은 술시 반각이 되자 밖으로 나갔다.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누가 붙잡아서 보니 윤기였다.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손을 놓았다. 그러고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았기에 잘못한 것은 아나 오해라면 오해랄까. 어떤 연유로 그리하였는지는 말하고 싶어 붙잡게 되었네. 전쟁이 끝나고 나라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살기 힘들어져 갖은 노력을 해보았지. 나라는 차차 안정을 찾아갔지만 운검도 알 듯 백성들은 여전히 굶주림에 빠져있지 않나?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직접 음식을 나누어주자는 생각이었네. 내가 백성들을 위해 쌀을 나누어주자 했을 때 반대로 무산되어 직접 하게 된 것이야. 말 못 한 것은 미안하다. 아무도 몰래 나가야 했기에 운검에게 임무를 주고 나갔다. 운검이 과인의 침소를 지키고 있으니 물러가있으라 하면서.”

 


“송구하옵니다. 신은 그것도 모르고 전하를 오해하고 있었으니… 죽이시든 관직에서 내리시든 할 말이 없습니다.”

 


“괜찮다.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지민은 눈에 눈물이 고이는 듯 했는데 윤기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 입을 계속 달싹이더니,

 

 

 


“나랑 혼인해주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민아, 내가 너를 연모한다.”


“......”


“그래서 너와 혼인하고 싶다.”

 

 

 


달이 은은하게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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